[사이언스 카페(53)] 얼굴의 진화

길쭉, 둥글, 네모, 세모. 형태는 다르지만 모든 동물은 얼굴 또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보고 하는 주요 감각기관이 있는 신체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얼굴. 이 얼굴에는 그 동물의 성과 나이, 그리고 종족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특성이 나타난다.

이 지구상에 60억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똑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완전히 닮지는 안았다. 이렇듯 모두가 어딘가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얼굴은 자연의 이름표"다. 주민등록증에 얼굴 사진이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런 만큼 생물이 진화하면서 그 얼굴은 어떤 과정의 변화를 겪어왔는지 알아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진화상으로 보면, 얼굴의 시작은 입에서 비롯되었다. 5억년 전에 활유어라는 동물이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빈 통처럼 생겼는데, 한쪽 끝은 열려서 원시적인 입이 되었다. 이 입을 통해서 물을 빨아들이고 음식찌꺼기를 뱉어내곤 했다.

물론 이 입은 그 이전의 어떤 것보다도 더 효과적인 음식 섭취의 수단이었다. 열린 입으로 부지런히 음식물을 받아들이지만 여전해 놓치는 음식물이 많았다. 눈이 없어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에 등장한 것이 눈이다. 동물이 움직이고 스스로 전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좋은 먹이를 찾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원시적인 얼굴에 눈이 독립된 감각기관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먹는 순간에 숨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불편함은 여전했다. 얼굴에 코가 나타난 이유다.

코는 약 4억5,000만년 전 최초의 물고기가 진화하면서 등장했다. 사캄밥시스(Sacambapsis)라는 이 물고기는 10Cm 길이로 보호비늘로 덮여 있었다.

이 물고기는 박스 같은 입이 있고 그 위쪽에 2개의 작은 콧구멍이 있었다. 이 물고기는 물 속의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먹는 동안에도 계속 숨을 쉴 수 있었다.

다음으로 얼굴은 턱을 가지기에 이른다. 4억3,000만년 전 아캔토디안(Acanthodian)이라는 턱을 가진 물고기가 나타나게 된다. 당연히 그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입을 다물 수도 없었고, 음식이 흘러내리거나 도망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물고기는 씹을 수가 있게 되면서 생활양식이 이전에 비하여 완전히 달라졌다. 필터링(filtering)이라는 수동적인 음식물 섭취에서 음식을 기다렸다가 입을 움직여서 먹고 한번 잡은 먹이는 입 속에서 안전하게 요리할 수 있는 능동적인 포식자가 된 것이다.

그 이후 생물이 육지생물로 발달 진화하면서 소리 정보의 습득을 위해서 귀가 발달하게 된다.

이렇게 진화의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은 점차 다양한 조절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얼굴의 근육기능도 다양해지고 섬세해졌다. 사람의 경우 입은 작아지고 턱 근육의 크기도 축소되었다. 다른 얼굴 근육도 작아져서 조절하기가 더 쉬워졌다.

전체 얼굴의 활동성은 커졌다. 진화의 첨단에 있는 21세기의 우리 사람은 얼굴을 통해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동물보다도 독보적이다. 그래서 사람이 얼굴로 지을 수 있는 표정(또는 표현)은 무려 1만가지 이상이나 된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1/04/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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