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금융시장, '무늬만' 안정세

외국의 한 금융기관은 최근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경제를 '게으른 가장'에 비유했다. 비가 와서 지붕이 새는 것을 본 아내가 남편에게 지붕 수리를 요구했으나 날씨가 맑아지자 남편은 이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가 폭풍우를 만나 아예 집을 망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고 비꼰 것이다.

최초의 비는 1997~1998년의 환란을, 햇살은 1999~2000년의 반짝 경기회복을, 폭풍우는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과 일본발(發) 동시 불황의 검은 먹구름을 각각 비유하고 있다.

환란 이후 잠깐 찾아온 경기회복기에 지붕을 고쳤어야 했으나(구조조정), 먹구름이 가시고 잠깐 햇볕이 비치자 이를 소홀히 한 채 샴페인을 터뜨린 것이다.


성장.물가.구조조정 3마리 토끼잡기 물거품 위기

한국경제의 어두운 현주소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들이 잇따라 공개돼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성장의 견인차인 수출과 수입이 3월 들어 동반 감소한 것이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앞날을 불안케 하고 있다. 향후 성장 잠재력을 가늠하는 설비투자도 뚝 떨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주 올해 경제전망치를 대폭 낮춰 잡았다. 수출 부진과 내수경기 침체로 성장률이 5%대에서 4%대로 떨어지고, 물가와 실업률도 4%대로 악화하는 이른바 '트리플 4%대'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론 미국의 정보기술(IT)과 인터넷 산업의 실적 악화에 따른 신경제의 지속적인 추락,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본의 복합불황 등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다.

이같은 국내외 악재로 인해 2/4분기는 커녕 하반기에도 경기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 경제의 침체가 가속화하면 3%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4월26일 발표하는 한국경제 수정 전망치도 KDI처럼 성장률을 하향 조정할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해 기대할 게 못된다.

성장, 물가, 구조조정 등 세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중대 기로를 맞고 있는 것이다. 토끼 한마리라도 놓칠 경우 칼날 위에 서 있는 우리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경제팀의 절묘한 정책조합(폴리시믹스)이 중요한 시점이다.

물론 악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발 훈풍'으로 국내 금융시장은 최근 외형상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다. '세계 경제대통령'인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깜짝 선물(지난주의 금리 추가 인하)'로 나스닥이 다소 상승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증시의 2중대'인 국내 증시도 덩달아 단기 랠리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급등하던 환율도 진정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나마 위안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변한 게 없다.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나는 현대사태(현대전자, 현대건설 정상화문제)는 채권단의 내부 갈등으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GM과의 매각협상이 본격화하고 있는 대우차 문제도 노ㆍ정간 힘겨루기가 불거져 나와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발 훈풍, 상승무드 점치긴 일러

미국 경제는 그린스펀 효과로 투자 심리가 다소 호전되기 시작하면서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빛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신경제의 추락과 기업들의 실적 악화 우려감 등으로 본격적인 상승무드를 점치기는 시기상조라는 게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세계 증시는 27일 미국의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잠정치 발표와 5월 4일 공개되는 4월 미국의 고용동향이 부정적일 경우 또 한차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동반 불황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재계는 설상가상으로 국세청의 부의 변칙이동에 대한 과세로 숨을 죽인 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보의 변칙증여에 대해 국세청이 세금(600억~700억원대)을 추징하기로 방침을 세우면서 재벌 2~3세들의 부의 변칙세습이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을 벤치마킹해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 사채(BW) 등을 이용해 2~3세들에게 부를 물려온 재벌들의 목이 뻣뻣해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주에 뚜껑이 열릴 중국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사업자 선정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주가가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주초에 발표된 삼성전자의 1/4분기 실적이 예상 밖으로 좋은 것으로 나타나 반도체 관련주가에도 한가닥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이의춘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4/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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