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정치세력' 등장 가능성 있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변화를 외면한다면 국민은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불가피하게 제3의 정치세력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국민 가운데 3분의 2가 지지 정당이 없다고 하는데, 두 당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은 무리이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은 4월 18일 춘천에서 열린 경희대 언론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제3의 정치세력론'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반기를 든 김 의원 뿐만 아니라 여야의 일부 의원들도 "내년 대선 전에 기존의 여야 구도를 뛰어넘는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할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기존 여야 3당이 아닌 새로운 정당이 태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다.

여권도 야권도 아닌 '제3의 섹터'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이 가시화할 경우 내년 대선 결과에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과연 내년 대선전에 제3 정치세력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제3세력론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실현 가능성 없는 시나리오로 치부됐으나 최근 여야의 개혁성향 중진 인사들과 시민단체 간부 등을 아우르는 '화해전진포럼'(가칭) 이 추진되는 것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선 '개혁 신당'의 출현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또 여야의 개혁성향 소장파 의원들이 구성한 '정치개혁의원모임'도 이 포럼과 함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모색할 수 있다.


재야주도 개혁신당 출현 가능성 거론

우선 '화해전진포럼'은 시민단체가 주도하고 여야의 개혁 중진들이 참여하는 3자 연대 형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여야의 중진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정계개편' 시도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주체가 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 김근태 정대철 김원기 최고위원,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 김덕룡 손학규 의원, 민국당 김상현 전 최고위원, 함세웅 신부,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등은 4월 30일 낮 포럼 창립 준비을 위한 오찬 모임을 갖는다.

이들은 여야 의원 30여명을 포함, 50여명이 참여하는 포럼을 만들어 개헌론과 대우차 사태 등 정국 이슈를 공론화하는 모임을 만들 생각이다.

다만 한나라당 중진들은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주류의 사시(斜視)를 의식, 참여 의지에서 편차를 보이고 있다. 김덕룡 의원은 적극적이고, 이부영 의원은 조건부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으며, 손학규 의원은 신중히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여야 중진들은 '정치개혁의원 모임'에 소속된 소장파 의원들을 대거 포럼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미 민주당의 이호웅 정장선 이종걸 의원과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 등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이다.

민주당의 재야출신 3선의원인 장영달 의원은 "화해전진포럼을 몇몇 중진들이 주도할 것이 아니라 범민주세력이 참여하는 민주개혁연대회의를 구성하자"고 주장하면서 화해 전진포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함께 여야의 개혁 성향 초ㆍ재선 의원 20여명은 개혁 법안 처리와 정치개혁 등을 위해 지난 3월 '정치개혁의원모임'(정개모)을 구성 했다. 여기에는 민주당 김성호 김태홍 정범구 이호웅 장성민 정장선 이재정 송영길 임종석 이종걸 최용규 이창복 박인상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김원웅 서상섭 안영근 김홍신 김영춘 김부겸 오세훈 조정무 김용학 손태인 심규철 의원 등이 가세했다. 정개모소속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화해전진포럼에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부정적 의견이 다소 우세하다.

따라서 정개모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포럼'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초 재선의원들 "자주 모이다 보면." 여운

두 갈래 모임은 모두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기치로 내건 단체는 아니다. 하지만 이 모임에 참여하는 여당 의원들 중 대다수는 "자주 의견을 나누고 연대를 강화하다 보면 내년에 새로운 정당 구성을 모색 해볼 수도 있을 것"며 독자세력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독자세력화를 모색할 수도 있지만 안되더라도 야당 분열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야당 의원 중에는 제3세력론과 거리를 두는 시각이 많다. 이부영 부총재는 "여야의 당리당략적 입장을 떠나 국민적 입장에서 현안을 공론화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시민단체의 취지에 공감하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며 '독자적 세력화론'과 선을 그었다.

야당 의원 중에도 "지금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 잘되면 소장ㆍ개혁파들 끼리 본격적 연대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대중적 기반이 약한데다 여야 지도부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게 될 것이므로 정당 형태의 제3세력이 출현하기가 쉽지 않다.

또 우리 정치 현실상 뚜렷한 구심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세력화하기 쉬운데 이들 개혁 성향 인사들의 복안이 대부분 다르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특히 대선국면에서 누구를 대선 후보를 내세울 것이냐에 대해 합의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년 봄이나 여름에 있을 여야의 대선 후보 경선을 거치며 당내 갈등이 증폭될 경우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세력이 연대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가령 한나라당 박근혜 김덕룡 의원 등이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할 경우 탈당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에서도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대권주자들이 당을 떠날 수도 있다. 여야에서 이탈한 세력이 손잡아 '신당'을 추진하고 김영삼 전대통령이 이들을 간접 지원할 경우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할 수있다.

자민련이 보수세력을 대거 끌어들여 당을 환골탈태시키고 독자적 대선 후보를 내서 제3의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자민련은 현재 공동여당의 한 축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손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길도 검토할 수 있다.


대선 앞두고 '제3의 후보' 나올 수도

화해전진포럼이나 정치개혁의원 모임이 내년에 제3의 정치세력으로 발전할 지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내년 대선에서 상당한 변수가 되는'제3의 후보'가 나올 개연성이 있다는 전망이 적지않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선거가 부활된 뒤 13~15대 대선을 거치며 항상 제3후보군의 득표 합계가 20%선을 넘었다는 점은 제3의 대선 후보 배출의 토양 이 되고 있다.

'1노 3김 후보'가 출마했던 13대 대선에서는 3~4위 의 득표 합계가 32%를 넘었고, 14대 대선에서는 3위인 국민당 정주영 후보와 4위인 신정당 박찬종 후보의 합계가 22% 가량이었다.

15대 대선 때도 3위인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19.2%)와 민주노동당 권영길후보의 득표 합계가 20%를 넘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 대선에서는 지역주의가 극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제3 후보가 설 자리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상당수 관계자들은 "여도 야도 아닌 유권자들이 항상 20% 이상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같은 유권자층을 겨냥한 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광덕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04/25 14:55


김광덕 정치부 kd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