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만 굴리면 대박 '홀인원'

고가 골프장 회원권 신종 재테크로 부상

서울 강남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최모(45)씨는 매일 아침 인터넷으로 골프장 회원권 시세를 조회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최 사장은 열렬한 증권 마니아였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하루 수천만원까지 주식 투자를 했던 큰 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증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주식에서 손을 뗐다. 그 대신 한 후배의 권유로 골프장 회원권 거래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IMF 한파가 가시기 시작한 1999년 여름 최 사장은 모 기업이 부도나 회원권 가격이 급락한 S골프장 회원권을 구좌당 1억원씩에 10구좌를 사들였다.

나중에 이 골프장 회원들이 법원 경매로 골프장을 인수하면서 구좌당 5,000만원이 추가 소요돼 최 사장은 세금과 명의개서료, 인수 비용 등을 포함해 총 16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경기 회복과 함께 회원권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가을 이 골프장 회원권은 구좌당 2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최 사장은 후배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직접 사용할 1 구좌만 남기고 9구좌를 22억원에 팔았다.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봤던 그는 이 투자로 1년만에 현금 6억원을 고스란히 챙기면서 2억5,000만원짜리 회원권까지 갖게 된 것이다. 재미를 본 최 사장은 최근 마땅한 투자처가 없자 매일 인터넷에 들어가 회원권에 투자할 기회만 엿보고 있다.


투기 부추긴 '부킹보장'초고가 회원권

골프장 회원권이 신종 재테크의 수단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고가 골프장 회원권 투자로 짭짤한 수입을 올린 성공담이 서울 강남 졸부들 사이에 퍼지면서 골프장 회원권 거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불과한 회원권이 재테크의 하나로 급부상한 것은 IMF라는 특수 상황때문. IMF체제가 본격화한 1998년 잇단 기업 도산과 구조조정으로 회사 보유분 법인 회원권들이 한꺼번에 매물로 나오면서 회원권 가격은 사상 유례없는 폭락세를 보였다.

50% 이상 가격이 떨어진 것은 일반적이었고, 경영이 부실한 곳은 최고 시가의 80% 이상 내려간 회원권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초 경기 회복과 함께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회원권 가격은 지난해 여름 IMF전 보다 더 상승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올해 들어서도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골프장 회원권이 소리 소문 없이 신종 재테크 수단으로 부상한 것은 극심한 '부킹 전쟁'의 덕분이기도 하다. IMF 한때 주춤했던 국내 골프 동호인 수가 경기 회복과 함께 늘어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300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피크 시즌인 지난해 가을 골프장 부킹은 가히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000만원 정도의 중가 회원권을 가진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 주말 부킹을 하기도 힘들 정도.

당시 '회원권 가격이 1억원이면 월 1회, 2억원 이상이면 월 2회 부킹 보장'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회원권만 갖고 있으면 부킹이 됐던 2~3년전과 비교하면 상황이 크게 나빠진 것이다.

주말 부킹난이 심각해지자 신규 골프장들은 특별 부킹 혜택을 보장해주는 2억~4억원대의 초고가 회원권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고가 회원권의 등장은 회원권 투기 행위를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부킹난이 날로 심각해지면서 일부 회원권 거래소나 부킹 중개 대행업소에서는 70만~150만원을 받고 주말 부킹권 매매를 대행하기도 했다.


회원권 부익부 빈익빈, 중저가는 찬밥

여기에 국내 경기 상황도 한몫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증시는 폭락장세를 거듭하고, 부동산 시장은 장기 침체 국면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남아 도는 자금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

여기에 금융권 금리 하락으로 실제 저축 예금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당기 부동 자금 일부가 골프장 회원권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여파로 요즘 투기 성향이 짙은 2억원대 이상의 초고가 회원권 가격은 치솟고, 중저가 회원권 가격은 추락하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회원권거래소인 레저시대 홍태호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주말 부킹 보장 횟수나, 투자 가치가 있는 회원권은 오르고 중저가 회원권은 하락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속칭 '황제주'라고 일컫는 몇몇 초고가 골프장 회원권은 매물이 나오지 않아 돈을 주고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지난해 신규 개장해 회원을 모집한 비전힐스(4억2,500만원), 파인크리크(3억원), 서원밸리(2억5,000만원), 그린힐(2억3,000만원), 리츠칼튼(2억1,000만원) 등은 대부분 2억원이 넘는 초고가로 분양했다.

불과 2~3년전만 해도 고가 회원권이라야 1억원 내외였던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 오른 것이다. 지금도 저가 회원권들은 1,000만원대에도 거래되고 있다.

회원권 분양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골프 인구가 최근 3~4년 사이 급증하면서 소위 부유층 골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차별적 서비스를 원하는 이런 부유층 골퍼들의 수요에 맞춰 초고가 회원권이 등장하게 됐고, 이것이 초고가 회원권 투자 붐이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고가 회원권에 대한 투자 열기가 높아가면서 고위 정치권을 낀 회원권 사기극까지 등장했다.

서울지검 특수3부는 3월 31일 고액 회원권 분양 사기 행각을 한 이모(36)씨 등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모광고대행사 대표인 이씨는 1999년말 서울 도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명문 골프장인 레이크사이드CC 회원권이 '돈 주고도 사기 힘들다'는 소문을 듣고 '추가 회원권을 분양받게 해준다'고 속여 사기 행각을 벌였다.

이씨는 2억3,000만원에 분양된 이 골프장 회원권이 4억3,000만원까지 치솟자 기업체 사장, 의사 등 부유층에게 1억원에서 최고 4억5,000만원까지 가짜 회원권을 팔아 총 22억3,000만원을 챙겼다.

이씨는 피해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회원관리실의 장모(58) 전실장의 도움으로 골프장 명의 입회 확인서와 분양대금 입금 확인서까지 위조해 나눠 주었다. 골프장 내부 임원과 짜고 유령 회원권을 팔아 분양 대금을 가로 챈 전형적인 사기극이었다.

이씨는 사기 혐의로, 골프장 장 전실장과 이씨의 사기극을 도와준 모회원권거래소 김모(39), 최모(36) 대표는 배임 수재 및 횡령 등의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빗나간 투기열풍, 사기극으로 이어져

이와 함께 서울지검 강력부도 같은 날 법정 발행 한도의 3배수에 가까운 회원권을 불법 분양한 여주CC 관리ㆍ운영회사 (주)IGM의 김모(49)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횡령죄 등을 적용, 구속 기소했다.

또 김씨로부터 활동비 명목으로 2년여간 각각 1억3,000만원과 4,000만원의 뇌물을 상납받은 (주)IGM 대주주인 모 재단법인 이사장 이모씨와 같은 재단 서모 D대 대학원장도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1995년 인가받은 여주CC 입회보증금(1구좌 300만원)이 모두 팔려 분양이 마감됐는데도 구좌당 600~800만원씩에 1,000구좌를 불법적으로 추가 매도해 총 78억8,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김씨로부터 불법 회원권을 구입한 피해자들은 회원권의 자산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 것은 물론 회원 급증으로 골프장 이용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골프장 회원권은 해당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일종의 '이용권' 개념에 불과하다.

따라서 서울, 한양이나 신원 CC 처럼 주주 회원제가 아닌 골프장 회원들은 해당 골프장이 부도가 나거나 소유주가 바뀌었을 경우 법적으로 완벽한 권리를 보장받기 힘들다. 그래서 고가 회원권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위험이 큰 투기나 다름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골프는 스포츠 중에서 유일하게 심판 없이 벌어지는 신사적인 경기다. 현재 국내 골프 동호인 인구는 300만명, 연간 내장객 수는 1,000만명(2000년 기준)을 넘어섰다. 단일 종목으로는 축구에 이어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중 스포츠가 됐다.

그럼에도 아직 국내에서 골프는 일반인들에게 '귀족, 사치 스포츠'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다. 특별 소비세 등 각종 세제 상으로도 불이익을 받고 있다. 골프계 인사들은 최근의 투기 열풍으로 '골프가 또 다시 여론 재판의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연히 밝혀진 분양 사기극

1,000여명의 피해자를 낸 여주CC(경기도 여주 소재) 불법 회원권 분양 사기 사건은 2년전에 사망한 이 골프장의 전 소유주 타살 의혹 수사를 하다 우연히 밝혀진 것이어서 골프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골프장 문제가 세간의 입이 오르내리게 된 것은 IMF가 한창이던 1999년 이 골프장의 소유주였던 서모(당시 66세) 회장이 사망한 직후부터.

당시 경찰은 서씨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서씨의 유족들이 "골프장 경영권을 노린 타살"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수사를 하게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뜻밖에 불법 분양 사기 행각을 적발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검찰은 자살 수사 과정에서 서 회장과 오랜 친분을 가졌던 이모씨가 골프장 지분의 60%를 보유한 장학재단 이사장이라는 사실을 포착하면서 비리의 단초를 잡았다.

검찰은 이후 이씨가 장학재단을 통해 골프장 대표이사 해임 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주)IGM 대표 김씨로부터 2년간 1억3,000만원의 뇌물을 받아낸 사실을 알아냈다.

검찰은 이어 상납에 쓰인 돈이 1995년 김씨가 1,178명에게 비인가 회원권을 팔아 착복한 78억여원 중의 일부라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냄으로써 분양 사기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4/25 19:19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