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5월의 태백산

명산(名山)에는 저마다의 향기가 있다. 꽃냄새, 나무냄새, 물냄새, 돌냄새..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에서 동서 연봉을 호령하는 태백산(1,560m)이 풍기는 냄새는 독특하다.

은은한 제향(祭香)이다.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영정을 모신 단군성전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낙동강의 시발점인 황지연못이 태백산 자락에 있다.

그래서 태백산은 우리 토착신앙의 성지로 꼽힌다. 지금은 산 아래로 모두 자리를 옮겼지만 굿을 하는 당집이 곳곳에 있다. 평일에도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은데 등산객보다 무속인이나 '도를 닦는' 백발노인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태백산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겨울. 설화가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좋은 계절이 바로 5월이다. 산 정상의 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철쭉이 피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요원의 불길처럼 피어나는 철쭉의 향연은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5월을 맞아 가족이 함께 오른다면 멋진 '추억 만들기'가 될 듯하다.

1,500m가 넘는 산을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오르냐고? 태백산은 높지만 실제로 오르는 높이는 700여m에 불과하다. 등산로가 잘 닦여있고 가파르지 않다.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태백산에 오르는 코스는 크게 3 가지. 유일사 코스, 백단사 코스, 당골 코스 등이다.

유일사로 올라 정상과 문수봉을 둘러보고 당골광장으로 내려오는 길이 일반적이다. 약 11㎞, 5~6시간이면 족하다.

입구에서 유일사에 이르는 약 1.5㎞는 평탄하다. 자동차도 다닌다. 태백산 자락에는 모두 5곳에 절이 있는데 유일사와 9부 능선의 망경사가 유명하다. 유일사는 깊은 계곡을 비집고 터를 잡았다. 물건을 삭도로 운반할 정도로 주변의 절벽이 험하다.

계곡 사이로 오롯하게 비치는 절집이 운치가 있다.

유일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험한 편. 태백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주목단지가 이어진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 사이로 꼬불꼬불 길이 이어져 있다. 가지를 뒤튼 주목의 생김생김에 넋을 잃다 보면 어느새 장군봉.

천제단 등을 돌아보며 넓은 정상의 광장에서 숨을 돌린 후 계단을 탄다. 5분 가량 내려가면 단종비각이 있고 곧 망경사가 보인다. 망경사에는 한반도 10대 샘물의 하나로 꼽히는 용정(龍井)이 있다. 땅속 물길로 바다 용왕과 연결이 된다는 샘물이다.

다시 방향을 틀어 능선의 소로를 따라 30분 정도를 가면 문수봉이다. 문수봉의 정상은 커다란 바위로 뒤덮여 있다. 멀리서 보면 흰색으로 보인다.

태백이란 이름이 바로 문수봉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사람들이 돌을 쪼아 탑을 쌓아 놓았다. 산정상의 세찬 바람 속에서 맞닥뜨리는 돌탑. 묘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내려오는 길은 당골계곡이다. 오랜 가뭄으로 고지대의 물은 돌 밑으로 흐른다. 물길은 볼 수 없고 물소리만 들린다. 낮아질수록 바깥으로 스며 나온 물이 제법 줄기를 이룬다.

길은 계곡물을 따라 나 있다. 반짝이는 신록과 함께 듣는 맑은 물소리. 짧은 산행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산행만으로 끝이 아니다. 당골광장 직전에 단군성전이 있다. 기품있고 소박하게 지어놓은 성전 안에 단군의 영정을 모셨다. 앞마당의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이 시원하다. 아이들과 함께 샘물을 마시며 민족의 시조를 찾아뵙는 일. 즐거움과 함께 의미도 클 듯하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4/2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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