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최고 흥행영화는 神만이 아는 나라

지금까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알려진 바'로는 지난해 화제를 몰고왔던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모두 이 영화가 전국 583만명을 동원해 그 이전해 '쉬리'(전국 580만명)의 기록을 깼다고 믿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그랬고, 언론도 그랬고, 정부까지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축하행사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그 확신이 이제는 '알려진 바'로 바뀌었고, 어쩌면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증빙자료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침묵하던, "어차피기록이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오히려 '쉬리' 의 기록 때문에 부담스러웠다"며 '공동경비구역 JSA' 의 기록을 인정하던 강제규필름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 강제규 필름은 영화인회의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분석자료를 근거로 아직도 한국최고흥행작은 '쉬리'라고 밝혔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583만명은 지방 단매(지방극장에 일정액을 받고 필름을 파는 것)대금까지 입장객으로 합산한 것이며, 직배기준으로 보면 536만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쉬리'의 580만명은 직배만을 계산한 것이며 만약 지방 단매 대금까지 합칠 경우 620만여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강제규필름은 뒤늦게 이의를 제기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객관성 있는 흥행기록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공하고, 향후 국내 영화사의 자사 영화 개봉 때 그 마케팅 방법 일환으로 타사 영화흥행기록을 사용할 경우 정당한 타사 영화기록에 대한 요청과 확인이 있어야 하며, 영화흥행기록의 객관적이고 타당한 조건제시와 함께 그 기록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존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공동경비구역 JSA'가 '쉬리'를, 지금 상영중인 '친구'가 '공동경비구역 JSA'와 기록을 비교할 때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료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정확히 기록을 관리하는 체제나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아직 우리에게는 흥행기록을 정확히 산출하는 어떤 장치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극장이나 제작사가 집계한 숫자를 그대로 믿거나 영화사매출액, 문예진흥기금을 근거로 간접 유추할 뿐이다.

미국처럼 박스오피스가 있으면 이런 해프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장치가 없다. 정부가 2년 전부터 추진하려는 극장입장권통합전산망도 이런저런 이유와 사정으로 지지부진 하다.

'공동경비구역 JSA' 와 '쉬리'의 때늦은 최고흥행기록 논쟁도 어쩌면 개봉 30일만에 전국 500만명을 돌파하며 식을 줄 모르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친구'의 새로운 기록에 의해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제나 이렇게 주먹구구식 통계에 의존해야 할까.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 30%를 넘는 세계 몇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 영화산업에 돈이 몰리고, 유능한 인재들이 영화에 몰리는 나라.

그러나 정확한 영화흥행은 '신(神)'만이 아는 나라, 영화정책과 제작과 마케팅에 기본이 되는 정확한 통계가 없으며, 세계 최고 수준, 최고의 보급율을 자랑하는 첨단 컴퓨터 정보시스템을 갖고 있으면서도 극장관객수는 전화로 물어봐야 하는 나라.

'공동경비구역 JSA'와 '쉬리'의 최다 관객 논란은 우리가 '타이타닉'을 침몰시킬수 있는 영화를 만든 나라라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창피한 우리 영화계의 한 단면이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0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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