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비상] 흙먼지만 풀풀… 봄가뭄에 목탄다

<르포> 봄가뭄에 목타는 경기북부 농촌

한국에서 봄가뭄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어느 해고 닥칠 수 있는 봄가뭄이지만 대책은 여전히 하늘만 쳐다보는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 연천군에 들어서자 들판에서 흙먼지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트랙터 로터리가 일으키는 흙먼지였다. 바짝 마른 논바닥 흙은 회전하는 로터리에 닿기 무섭게 먼지처럼 흩어져 경기도 북부지역의 봄가뭄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연천군청 인근 채소밭에는 임시로 설치한 스프링클러가 물을 내뿜고 있었다. 연천군청에 따르면 연천지역은 5월2일 현재 51일째 비가 오지 않았다. 올들어 4월23일까지 연천군의 강수량은 72mm. 평년대비 63%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 겨울 눈이 유난히 많이 내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뭄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두달간 비 한방울 구경 못했어요"

연천군 군남면 삼거리. 습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산기슭 밭에서 농민 세 사람이 소주에 김치로 새참을 먹고 있었다. 율무를 심던 중이었다.

농민 이동환(64)씨는 "비를 기다리다 못해 이제 율무를 심고 있다"며 "예년이면 벌써 땅 위로 싹이 올라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밭 한구석에는 양수기가 소형 관정에서 물을 퍼올리고 있었다.

율무를 심는 방식이 특이했다. 농약살포용 소형 펌프와 호스를 이용해 물을 쏘아 밭에 일일이 구멍을 낸 다음, 이 구멍에 율무를 하나씩 심는 방법이었다. 관정의 물이 밭 전체에 뿌릴 정도로 충분하지 않아 고안한 방법이다.

이씨의 부인 송창영(60)씨는 "율무를 이렇게 심어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관정의 물도 작년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목장을 하는 주재명(42)씨는 밭 3,000평에 사료작물을 심었지만 싹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다. 주씨는 "이러다 농사 결단나는 것 아니냐"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4월 말 내린 비로 호남, 제주 지역은 해갈이 됐지만 경기, 강원, 영남지역은 갈수록 목이 탄다.

임진강과 한탄강, 차탄천에서 물을 끌어 쓸 수 있어 비교적 사정이 좋다는 연천군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피해를 본 것은 주로 오이, 마늘, 콩, 감자, 율무 등 밭작물이다.

연천군청 산업경제과에 따르면 밭작물은 아직 파종조차 못한 곳이 적지 않다. 파종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수확에 지장을 받게 된다.

군남면 선곡리의 이성춘(44)씨는 논 600평에 오이를 심을 계획이지만 허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묘종은 이미 다 컸는데 옮겨 심을 땅에 물기가 없어 문제다. 한나절동안 양수기로 농수로에서 물을 펐지만 논의 30%도 적시지 못했다. 농수로로 물을 대주는 지역 양수장이 이틀에 한 번밖에 가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오이를 심어도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새로 만든 댐(4월5일발전소 1, 2호댐)에서 물을 안 내려주면 큰일이다. 계속 가물면 농사 망친다."


밭작물 아직 파종도 못해

연천군청이라고 별 대책이 나올 리 없다. 군청 관계자는 "밭작물은 비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논은 70~80%가 수리ㆍ양수시설을 갖추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연천군에는 양수장 21개와 농업용 소형관정 3,229개가 있다.

하지만 5월에도 계속 비가 오지 않으면 양수장은 물론, 관정의 물도 마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모내기 시작은 5월10일께부터. 군청 관계자는 "모내기철까지 비가 100mm는 와줘야 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08 18:31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