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IT 전사 테헤란 밸리 공습

세계최대 IT 인제 배출국, 한국 진출 눈에 띄게 증가

흔히 인도 하면 '은둔과 명상의 나라'라는 신비감과 '가난과 무기력, 카스트 신분제도와 종교 분쟁국'이라는 후진국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정보통신 분야에서 인도는 세계 최대의 IT 인력의 보고(寶庫)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핵심 인력 중 상당수가 인도인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야후의 마케팅담당 최고 책임자였던 아닐 싱(42)을 비롯해 시스코,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거대 IT 기업의 핵심 부서에는 예외없이 인도인들이 포진돼 있다.

지난해 닷컴 열풍으로 국내에도 IT 인력 부족 현상이 빚어지면서 인도 IT 엔지니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뛰어난 기술력 갖춘 '귀하신 몸'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A벤처회사의 이선재(42ㆍ가명) 사장은 지난해부터 회사 직원인 자야 쿠마르(28)씨와 함께 산다. 이 사장이 직원을 자신의 집에 모신(?)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뛰어난 업무 능력 때문.

지난해 헤드헌터 업체를 통해 입사한 인도인 쿠마르씨는 이 회사가 주력하는 컴포넌트 개발 프로젝트에 핵심 역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도인이 얼마나 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회사 주요 인물이 됐다. 중책에 비해 대우가 낮은 편이어서 이 사장은 지난달 쿠마르씨를 개발 팀장으로 승진 발령까지 냈다.

그간 높은 보수를 주겠다고 설득해도 고급 인력을 구할 수 없었던 이 사장에게 쿠마르 팀장은 보배와도 같다.

이 사장은 "쿠마르 팀장의 실력은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뒤 1~2년간 실무 경력을 거친 전문가 수준"이라며 "아마도 카이스트 출신 인재들은 우리 같은 소규모 벤처회사에는 억대 연봉을 준다고 해도 오지 않을 텐데 쿠마르 팀장이 그 역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고 흡족해 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 추가로 인도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인도 IT 인력이 국내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국내 IT 산업이 지난 2년간 괄4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기업마다 IT 인력을 구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올들어서도 닷컴 기업이 위축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인터넷 닷컴 기업의 홈페이지에는 사원 모집 공고가 사라질 날이 없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IT 업체들은 쓸만한 인재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인사 담당자들은 "정규 대학이나 사설 학원을 거친 IT 인력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실무에 곧바로 투입할 만한 실력을 갖춘 인재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한다.

이 같은 심각한 구인난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그 최적지로 인도가 부상했다.

국내 IT 기업들이 인도 인력에 애착을 갖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인도 출신 IT 인력은 기술력에서 국내 인력을 앞선다. 현재 MS의 핫메일 등 거대 IT 기업들이 시중에 선보인 소프트웨어의 상당수가 인도인들의 작품이다.

예로부터 인도인들은 수학과 천문학에 능했는데 그런 재능이 IT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인도인들은 영국의 지배를 받은 덕(?)에 인터넷의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영어는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국내 인력이 기술적으로는 인도인에 어느 정도 필적 하지만 영어라는 벽에 부딪혀 종종 한계를 드러낸다. 이런 장점 때문에 인도인들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어느 국가나 인종 보다 각광을 받았다.


인도는 세계2위의 소프트웨어 개발국

IT 심장부인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하는 인도인들이 늘면서 자연히 인도의 IT 산업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인구 10억의 빈국중의 하나지만 IT 분야에 있어서만은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개발 국가이다.

기존의 오프라인 산업의 인프라는 허술 하지만 최첨단 산업인 IT 분야에 있어서만은 기형적으로 발달했다. 그래서 요즘 IT업계에서는 '인도는 20세기가 없이 곧바로 21세기로 간 나라'라고 칭한다.

국내 대표적인 IT업체인 유니텔은 지난달 인도 현지 삼성 지사를 통해 3명의 인도 컴퓨터 전문가를 채용한데 이어 이달 2명을 추가로 보강했다.

이들 인도인들은 유니텔 빌링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TCP/IP 및 웹 어플리케이션과 자바(JAVA)를 활용한 기술 개발, ICI 개발,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언어와 생활 습관 차로 약간 고전했으나 지금은 동료 직원들과 팀을 이뤄 고난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인도 현지의 IT 회사에서 1~2년 정도 근무했던 경력자들이지만 급여는 국내 대졸 출신 동등 직급 사원의 70% 수준이다. 회사에서는 급여 외에 별도로 전세 아파트를 얻어 주고 있다.

이 회사 박형근 대리는 "본래는 부족한 국내 IT 고급 인력을 보강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사내 기업 문화도 글로벌화 하는 뜻하지 않은 부가 효과까지 얻고 있다"며 "장차 미국이나 동남아 진출을 모색하려는 회사 입장에서 볼 때도 외국 인력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명문 방갈로르대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는 사티야 카말 나얀(24)씨는 "한국은 IT 분야의 인프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있지만 소프트웨어에 있어서는 인도에 약간 뒤져 있다"며 "한국 IT 인력의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있지만 그를 받쳐줄 만한 영어 실력이 따르지 않아 세계 시장 진출에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수천년간 은둔하던 인도가 IT 산업의 슈퍼 파워로 성장한 데는 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큰 몫을 했다. 인도에는 카스트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있어 하층 계급이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

하지만 IT 산업은 이런 신분ㆍ계급의 틀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역할을 했다. 명문대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 실력을 인정 받으면 현지 다국적 기업이나 미국 실리콘 밸리로 진출할 수 있다.

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보수와 신분 보장은 그들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그래서 중ㆍ하류층 인도인들에게 IT 산업은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 주는 엘도라도'다.


매년 6마여명의 엔지니어 배출

인도 정부의 교육 투자도 한 몫을 했다. 인도에서는 매년 3,000여개 교육기관을 통해 6만여명의 IT 엔지니어가 배출된다.

인도 주한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인도 방갈로르에 있는 IT 전문 명문 대학에 입학하려면 수천대 1의 경쟁률을 거쳐야 한다. 입학해서도 철저한 학사 과정과 기업의 필요에 맞춘 엄격한 교육 과정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며 "인도에 세계 최고의 IT 기업은 없지만 최고의 교육기관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도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20%를 점유, 미국 다음 가는 IT 강국이다. IT분야의 최고 기술 보유 기업에게 부여하는 세이캄5(SEI-CAMM5) 등급을 받은 전세계 50여개 기업 중 29개가 인도회사다.

세계 1,000대 기업 중 200여개 기업이 인도인이 개발한 소프트 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 전체 기술 인력의 30%가 인도인이다. 그래서 '인도인이 없으면 미국 실리콘 밸리도 안 돌아간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미국 IT 산업에서 인도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하지만 지난해말부터 미국 닷컴 열기가 급격히 식으면서 인도 등 외국 출신 IT 인력들이 실직 위기에 처해 있다. 동시에 실리콘 밸리내 IT 인력에 대한 대우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해도 월 5,000달러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2,0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자연히 후발국인 한국이나 일본, 유럽이 인도인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정부도 최근 IT업계의 인력난에 공감하고 2005년까지 총 5,000억원을 투자해 20만명의 IT전문 인력을 집중 양성키로 했다. 그 보완책으로 정부는 인도 불가리아 러시아 등의 해외 인력을 들여오기로 하고 까다롭던 외국 인력 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 했다.

그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로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1월 15일부터 '골든 카드제'를 전격 시행했다. '골든카드제'란 외국 인력에 대한 취업 비자 발급을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제도로 외국 근로자들도 비자 없이 입국해 사후에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또한 기존의 고용주 책임제도를 폐지해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고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 200여명의 IT인력 활동

중소기업청도 이달부터 외국 전문인력도입 지원제도를 실시한다. 지원 대상 업체로 선정된 기업은 한 명의 외국 IT 기술자에 대해 왕복 항공료와 월 120만원씩 6개월간 체제비를 지원 받는다.

또 관련 기술습득 지원 차원에서 해당 기업의 한국인 전문 인력 중 한 사람에 대해 3개월간 외국 연수 비용과 왕복 항공료를 추가 지원한다.

현재 이 지원 제도에는 총 152개 업체가 신청하는 성황을 이뤘다. 현재 국내에는 약 200여명의 인도 IT 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인도 IT인력 전문 헤드헌팅 업체인 (주)텔레IMC의 김명희 사장(38)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정한 스펙이 없이 그때 그때 수정해가면서 일하는 데 반해 인도 IT 전문가들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대규모 프로젝트를 장기간에 걸쳐 개발할 수 있는 체계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인도 IT 인력을 단지 임금이 싸다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큰 오산이다.

임금면에서 보면 아직도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비록 후진국이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그들의 전문화되고 특화된 기술력"이라고 지적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5/09 14:25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