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가족풍속도-독신] 자유를 택한 화려한 싱글

외로움은 잠시, 주위의 편견과 관심이 오히려 불편

"난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놀아. 아 외롭다. 나 단순하게 살았어. 맛있으면 마셔."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한 음료 광고의 카피다.

'잘 나가는' 노총각임을 자신의 이미지로 내세우는 가수 이현우가 내뱉는 이 대사는 자유와 외로움이라는 독신의 특성을 강조해 혼자 살기를 꿈꾸는 불특정 다수의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굳이 이현우의 대사가 아니더라도 독신의 가장 큰 매력이 자유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독신자들 스스로는 물론이고 독신을 부러워하는 기혼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자유다. 가족으로부터의 자유, 관습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자기로부터의 자유.

그것은 원하는 일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다는 것인 동시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뜻한다.

주선미(가명ㆍ35ㆍ프리랜서)씨 역시 그런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독신 중 하나다. 대학 때부터 혼자 살고 있는 그는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싶어지면 무작정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선다.

'글발'을 받을 때는 먹는 것도 잊은 채 밤을 새고 일하지만 일이 내키지 않을 때는 며칠씩 빈둥거린다. 그는 "불규칙하기는 하지만 내 마음대로 내 일정을 짜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이 생활이 좋다"고 말한다.


"같이 사나 혼자 사나 똑같은 것"

5년 전 이혼하고 독신인 정유진(가명ㆍ33ㆍ컨설턴트)씨도 마찬가지. 그는 13평짜리 원룸에서 혼자 산다.

이혼 후 잠깐 부모와 함께 살아 보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함께 산다는 게 여러모로 불편해서 아예 따로 집을 얻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만큼 일이 많다.

날마다 피곤에 절어 돌아오는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바로 침대에 쓰러져도 되는 지금의 독신 생활이 일과 결혼 생활을 병행하며 살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다고 한다. "밥은 먹고 싶으면 먹고 빨래는 도저히 안될 때까지 미루었다가 한번에 해요.

시장도 한 달에 한번 정도 가서 이것저것 왕창 사다 높지요. 그래도 신경 쓸 사람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어 정말 편해요." 독신들에게 자유는 곧 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독신의 자유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독신이 누리는 자유에는 외로움이 동반되기 마련인 탓이다.

특히 독신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 외로움이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 없고, 챙겨줄 사람도 없고, 같이 놀 사람도 없다면 얼마나 심심하고 허전할까 싶은 것이다.

이에 대한 독신들의 생각은 어떨까. "물론 심심하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죠. 한번은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혼자서 지켜보고 있자니 공연히 눈물이 핑 돌기도 했으니까요." 주선미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그는 곧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다고 항상 심심한 건 아니예요. 전 혼자서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춤 추는 것 빼고는 다 합니다.

또 저 같은 경우는 오히려 혼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일종의 공백 상태를 좋아하는 편이죠." 또 다른 독신인 김철용(가명ㆍ38ㆍ공무원)씨는 "솔직히 일하랴, 공부하랴 바빠서 심심할 틈이 별로 없습니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합니다.

그 외에는 내 시간 전부를 나를 위해 투자하는 셈이니 어찌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덜 허전하다고 볼 수도 있구요"라고 말한다. 여럿이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기 마련이고 남들과의 관계로 인해 자기 자신을 채우지 못해 허전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혼자 사는 것이나 여럿이 사는 것이 별반 다를 것도 없다는 얘기다.


1인가정 해마다 급증

정작 독신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독신에 대한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편견이다.

"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니?" "아직도 혼자 살아?"라는 말은 이들이 노상 듣는 말이다. 묻는 사람이야 한두번 인사치레로 한다지만, 여러 번 듣는 사람은 짜증나기 마련이다.

주선미씨는 "특히 일관계로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만 가까워지면 나이와 함께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결혼 여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때 정말 피곤하다"고 한다.

더구나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독신이라고 하면 묘하게 달라지는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은 때로 이들을 움츠러들게 만들기도 하고 심한 경우 자기비하에 빠지게도 만든다.

지난해 서울 여성의 전화 산하 '싱글 여성 모임'이 발간한 자료집에 의하면 '어딘지 문제 있다' '이기적이다' '초라하다' 등이 독신자를 힘들게 하는 대표적인 편견으로 꼽혔다. 독신은 늘 외로움에 시달릴 것이라는 생각도 따지고 보면 비독신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편견이다.

또 독신 여성의 경우는 혼자라고 하면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 함부로 대하는 남자들 때문에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주씨 역시 사람들의 편견, 특히 남자들의 추근덕거림이 싫어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산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아예 대답을 회피한다. 이런 갈등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더 심각하다. 회사에서는 아직도 이혼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는 정유진씨는 "사람들이 이혼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나도 안다.

그래서 이혼하고 나서 한동안은 사람들 만나기가 꺼려졌다. 이혼의 상처를 잊고 독신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는데 꼭 결혼 생활 동안 만큼의 시간인 4년이 걸렸다"고 털어 놓았다.

사실 독신들에 대해 편견을 갖기에는 이제 그 수가 너무 많다. 물론 결혼=가족이라는 등식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독신은 여전히 비주류지만 1인 가정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뿐더러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1995년 현재 우리 나라의 30대 미혼은 75만7,000여명. 1980년의 15만6,000명에 비해 무려 5배 가량 늘었다. 또 이혼도 크게 늘어 1980년 4만7,000명에 불과하던 35~45세 이혼자가 1995년에는 16만1,000명에 달했다. 이혼하고 재혼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아직은 혼자인 사람이 더 많다.

독신자의 수가 이 정도면 혼자 사는 데 별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란 무리다. 어떤 사람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어떤 사람은 '일이 더 재미있어서', 또 어떤 사람은 '아직 좋은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등등 저마다 이유는 있지만 정유진씨가 지적하듯, "날마다 듣는 '왜 혼자 살아?'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조차 민망한 평범한 이유"들이다.

때문에 혼자 사는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를 독신주의자라고 밝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주선미씨 경우는 "정말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이 사람이다 싶다면 언제든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김철용씨도 "내 일에 여유가 더 생기면 결혼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노력을 해 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긍정적 사고방식, 경제력 등 갖춰야

결국 독신자들의 주장은 결혼 역시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주요한 선택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혼을 꼭 해야만 정상인 것도 아니고 결혼 하지 않는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결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독신으로 살 수도 있다.

단, 독신으로 사는 데는 몇가지 필요 조건이 있다. 정유진씨와 김철용 씨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꼽았고 주선미씨 역시 "자립심과 경제력"을 들었다.

독신인 박연숙(35) 서울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은 "독신자가 자신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꾸리기 위해서는 이 외에도 친밀한 인간관계와 취미가 있어야 한다. 또 젊어서부터 노후를 위한 대책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정도면 독신은 외로움으로 잃는 것보다 자유로 얻는 것이 더 많을 법하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09 16:07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