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심포 갯벌

환상적인 노을과 어우러진 갯벌 생태계의 보고

한국 사람에게 지평선은 낯설다. 아니 본 적이 거의 없으니 개념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산과 구릉으로 뒤덮인 한반도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있다. 유일하게 전북 김제시에 가면 볼 수 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들어 놓은 김제, 만경평야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아무데서나 지평선이 그어지지는 않는다.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반도가 있는데, 바로 진봉반도이다.

지평선을 보려면 진봉반도의 서쪽 끄트머리까지 가야 한다. 바다에 거의 다다라 동쪽으로 바라보면 놀랍게도 산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넓으면 동네 이름을 광활면이라 지었을까. 지평선은 몇 개의 마을로 인해 그 직선의 아름다움이 방해 받을 뿐 광활면과 진봉면으로 이어지며 시야를 밝게 한다.

진봉반도의 끄트머리에서는 또 다른 지평선을 볼 수 있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 동쪽의 바다를 응시하면 광활한 평야나 마찬가지인 넓은 갯벌이 나타난다. 북쪽으로 군산시, 남쪽으로 부안군의 돌출된 땅덩어리만 시야를 가릴 뿐 서쪽으로 뚫려 있는 바다쪽은 분명 수평선이 아니라 지평선이다.

진봉반도 맨 끝에 심포라는 작은 포구가 있다. 그래서 이 갯벌을 심포갯벌이라 부른다.

심포갯벌은 물이 다 빠지면 10㎞ 멀리까지 이어진다. 그 안에서 조개를 캐고 어구를 손질하는 마을 사람들이 개미처럼 가물가물 작게 보인다.

심포의 다른 이름은 '돈머리'이다. 돈머리는 '돈이 많은 부자 동네'라는 뜻. 갯벌에서 값비싼 조개인 백합이 나온다. 백합 뿐 아니라 생합, 죽합 등 고급 패류로 분류되는 조개는 모조리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굳이 배를 탈 이유가 없었다.

물이 빠지면 망태기를 들고 나가 '돈'을 끌어 담기만 하면 됐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물이 썩어가면서 수확량이 엄청나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서해안에서 유명한 백합산지로서 명성을 잇고 있다.

물론 갯벌탐사에 제격이다. 갯벌에 내려서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마음을 잡기 힘들다.너무 넓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 나갈 필요도 없다.

바로 발아래 게, 조개 등 각종 갯벌 생물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얼마나 넓은가 확인을 할 마음이라면 '긴 여행'을 각오해야 한다. 멀리 나갔다면 밀물이 들어오기 3시간 전부터 서둘러야 한다. 호기를 부리며 늑장을 피우다가는 망망대해에 갇히게 된다.

다른 갯벌과 달리 아이들에게는 보호자가 가깝게 따라다녀야 한다. 너무 갯벌이 넓은 나머지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군데군데 웅덩이와 수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 물에서 망둥어를 잡는다. 낚시 채비도 까다롭지 않다. 민낚싯대에 아무 미끼나 끼워 던지면 쉽게 매운탕 거리를 장만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갯벌의 운명도 풍전등화와 같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강행되면 이 갯벌은 모조리 논으로 변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보물단지를 흙 속에 처박는 셈이여."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대단하다.

심포갯벌은 그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심포항에 있는 몇몇 횟집과 숙소는 김제시 등 인근 주민들만 쉬쉬하고 찾았지만 이제는 환경을 걱정하는 모든 이들의 터가 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고 주말이면 교통체증까지 일어난다. 잘 된 일일까. 옛날 동강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렇다. 아무도 동강의 가치를 몰랐다면 이미 영월댐에 막혀 썩은 강이 되었을 터이다. 유명했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 심포갯벌은 세상에 이름을 크게 알리며 목숨을 구할 수도 있을 터이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5/0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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