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풍향계] 중심없는 정치권 '어수선'

당권과 대선후보 분리를 전제로 한 2단계 전당대회론이 차기대선과 관련한 여권의 화두로 등장했다. 화두 제공자는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현 총재와 최고위원들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에 전당대회를 열어 당 지도부를 선출하고 6월의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끝난 뒤인 7월 또는 8월에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열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권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정동영 최고위원이 제기한 '2선 퇴진론' 으로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뒤 현재는 평당원 신분이다. 하지만 여권 실세 그룹인 동교동계의 좌장이란 지위가 여전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제기한 2단계 전당대회론이 갖는 무게는 상당하다.


여권 '2단계 전당대회론', 입장 다른 대권주자들

2단계 전당대회론에는 동교동계가 정권재창출 과정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깔려 있다.

즉 내년 1월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지 않을 동교동계 실세 인사를 당 대표 혹은 총재로 내세워 당권을 장악하고 이 체제가 중심이 돼 7,8월의 전당대회에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주자를 대선후보로 내세운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동교동계 이니셔티브는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자신들의 힘이 아닌 동교동계의 선택에 따라 운명이 갈리게 되는 상황이 굳어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교동계의 낙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주자도 불만일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빨리 후보로 확정돼야 앞서 달려가고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추격할 수 있는데 후보 선출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불리하기 때문이다.

후보 조기가시화론자인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이 방안에 대해 "일부의 의견"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당권-대권 분리론을 제기한 이인제 최고위원도 2단계 전당대회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며 무언의 반대의사를 표출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7,8월에 대선 후보를 선출할 경우 총력을 기울여야 할 6월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강한 반대론을 폈다. 청와대 측도 "개인 의견"이라며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동교동 내부의 갈등 격화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구를 당권주자로 내세울지를 놓고 실세들간 이해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단계 전당대회론은 한바탕 민주당 안팎에서 파문을 일으킨 뒤 곧 잠복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제 3의 신당설도 정가의 관심사다. 정 의원은 5월13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발전을 위해 신당창당에 적극 참여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신당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정당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미국처럼 정당 내부에서 개혁이 이뤄지거나 유럽처럼 제3당이 출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하므로 기존 정당에 속한 의원들이 탈당, 신당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신당은 정도를 걸으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정의원은 그러나 현재로서는 자신이 신당창당을 주도하지 않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새로운 정당정치의 비전을 가진 인사가 나서서 창당을 주도하면 자신은 여기에 적극 참여한다는 자세다. 정 의원은 은연중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일부 언론은 박 부총재와 정 의원이 신당 창당작업에 나섰다는 섣부른 보도를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박 부총재는 펄쩍 뛰었다. "신당 창당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한나라당을 탈당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 의원(50)과 박 부총재(49)가 장충초등학교 동창으로 개인적 인연이 있어 가끔 테니스도 함께 치는 사이이고 정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영남권을 기반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움직임은 당분간 정가의 주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당직개편 등 전열 제정비

영남권 신당이 출현한다면 가장 큰 타격은 한나라당이 입는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제3의 신당창당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으면서도 박 부총재의 움직임에 매우 신경을 쓰는 눈치다. 더욱이 박 부총재는 치고빠지기 식으로 이회창 총재 흠집내기를 거듭하고 있어 이 총재측의 애를 태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5월14일 경선을 통해 신임 원내 총무로 이재오 의원(서울 은평 을ㆍ재선)을 선출함으로써 당직개편을 완료했다. 김기배 사무총장은 유임됐고 정책위의장은

재무장관 경제부총리 포철회장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진 김만제 의원(대구 수성갑ㆍ초선)이 임명됐다. 이번 주에는 진용을 재정비한 한나라당의 당직체제가 본격 가동되면서 그 색깔과 방향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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