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제3후보론' 신당설과 맞물리며 파장 계속

여의도 정가가 여권의 '제3후보론'으로 뜨겁다.

제3후보론을 요약하면 '당내에서 거론되는 유력 후보군외에 제3의 인물, 즉 전혀 의외의 인물이 대선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권내에 제1후보, 제2후보가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여론지지도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이인제 최고위원과 '영남후보론'을 내세우는 김중권 대표, 대중적 인기가 만만치 않은 노무현 상임고문 등 유력 후보군 외에 다른 인물을 의미한다. 물론 당밖에 있는 사람도 제3후보가 될 수 있고 당내의 인물이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여권내에 제3후보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정당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담보로 태동할 가능성이 있는 독자적인 정치세력, 즉 신당설도 크게 보면 제3후보론의 줄기에 해당한다.


" 昌에 맞설 필승카드가 없다" 불안감

제3후보론은 우선 이미 대선체제에 돌입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맞설 '필승카드가 없다'는 여권 내부의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나름대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이인제 최고위원도 영남권을 토대로 한 이회창 총재와 맞서서 이기는 게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의 기저이다.

하물며 이 최고위원도 이런데 이보다 더 대중적 지지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새로운 인물을 찾자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이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조차 내년 대선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흥미롭다. 내년 대선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민주당 기획조정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16.9%)는 한나라당 후보(42.2%)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대선지지후보도 한나라당 후보(37.9%)가 민주당 후보(22.3%)를 압도했고, 이 총재는 그간의 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탈색시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여론조사결과는 여당의 총체적 위기를 뜻하는 것이지 여권 후보 자체의 경쟁력을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을 찾자는 논의와 무관하지는 않다.


제3후보론은 이인제 견제론?

여권내에서 제3후보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고건 서울시장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소리도 흘러나오나 아직은 가능성의 단계이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도 마찬가지. "이회창에 맞서기 위해선 영남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 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지론이어서 정가에선 허주(김윤환 대표의 아호)가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전혀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에 대해선 정가에서는 고개를 젓는다. "대권후보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권내에서 제3후보론을 흘리는 세력은 동교동계이다. 다른 사이드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있지만 최근 들어 김 대통령의 직계인 동교동계가 부쩍 목소리를 내는 점은 좁은 의미의 제3후보론의 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권력구도 문제와 관련, 현재의 여당내부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인제에게 (대권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만 남아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다른 후보들이 경쟁과 대립을 하며 힘을 내고 있지만 아직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다른 주자들이 '뜨질 않는다'는 것이다. 동교동계에서 흘리는 제3후보론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인제 견제론'과 맥락이 닿는 것도 이 같은 사정탓이다.


레임덕 방지용 애드벌준?

여권의 대권논의 관심사는 크게 '정권 재창출'과 '레임덕 방지'라고 보면 정확하다. 제3후보론은 정권 재창출을 명분으로 달고 있지만 본질은 레임덕 방지로 보는 시각이 많다. 너무 이른 시기에 이인제 최고위원이 강력한 주자로 대세가 쏠릴 경우 급속한 권력이동, 즉 레임덕의 가속화는 쉽게 연상된다.

물론 이 경우 여권의 최대 지배주주인 동교동계의 입지도 동반해 좁아지게 된다.

때문에 특정인이 대세를 형성하지 못하기 위해 대통령의 친위그룹인 동교동이 끊임없이 '다른 카드' 가능성을 흘리는 측면이 있고, 이것이 곧 제3후보론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들도 있다. 한 소장 의원은 "제3후보의 얼굴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동교동과 이인제 최고위원간의 관계 변화이다. 원래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 구파는 이인제 최고위원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권 전 최고위원이 최근들어 이 최고위원과 공개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그 직후 제3후보론이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이ㆍ권 두사람의 교감이 끊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정치상황에 따라 언제든 손잡을 가능성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한화갑 최고위원을 축으로 한 동교동 신파쪽에선 '경쟁 관계'인 이 최고위원에 대해 그리 호감을 갖지 않고 있다.

한 재선의원의 분석은 흥미롭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유력주자이긴 하지만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가을쯤 이인제에 맞서는 카드가 나올 것이다. 절대 여권 핵심부에선 이 최고위원 혼자만 두고 상황을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중권 대표가 취임초 영남후보론을 내세우며 기세를 올렸다. 김 대표가 비서실장 시절 극도로 불편했던 동교동계 조차 김 대표를 지원했다. 이는 여권 핵심부에서 이인제 견제용으로 김 대표 카드를 활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새로운 정치세력 등장의 신호탄 일수도

생각을 넓히면 제3후보론은 '신당 후보론'과도 연결된다.

정치권이 과거 역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1987년 대선이후 3위이하 후보의 득표율이 항상 20%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기존 정치판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수요가 있는 만큼 새로운 정치세력의 공급도 반드시 이뤄졌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다. 14대 때의 국민당 정주영 후보, 15대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 등이 이 같은 케이스.

최근 무소속 정몽준 의원의 신당추진도 이 같은 가설을 배경에 깔고 있다. 정 의원은 "지금 국민은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되뇌이며 신당의 깃발을 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주류측에선 "다음 대선이 영ㆍ호남 지역감정이 극에 달할 것"이라며 "과거와 달리 제3섹터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 시각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여권이 대선 승리를 위해 무소속 또는 제3당을 출범시켜 영남권 분열을 노릴 것"이라는 의심을 반영한 것. 정가에선 실제로 "다음 대선에서 여권이 지난 대선에서의 이인제와 같은 역할을 맡을 사람을 만들어내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많다.

정몽준 의원의 신당설이 터져나오자 야당이 현대그룹에 대한 공세를 재개하며 노골적으로 견제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저간의 사정을 담고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최근 여야 개혁파 중진들을 중심으로 5월17일 창립식을 갖는 '화해전진포럼'이다.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 한나라당 김덕룡 부총재 등이 참여하고 있는 이 모임의 동향이 주목받는 것은 대선 정국에서 새로운 정치 결사체, 즉 신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몽준, 박근혜 의원 등과 손잡고 민주화-개발세력-시민연대가 뭉치는 외양을 띠면 상당한 폭발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3후보론은 여권 내부에서 출발해 지향점은 다르지만 정치권 전반으로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제3후보론이 여권내의 권력구도 뿐 아니라 정계개편과 대선 전략 등 다양한 정치적 복선들을 깔고 있어 흐름을 쫓아가기 조차 숨이 가쁘다.

제3후보론은 아직 얼굴이 없지만 정치권 내에선 제3후보론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실현 가능성과 파괴력면에서 검증은 필요하지만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제3후보, 아니 '제3의'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태희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17 16:53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