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신승남 체제로 가나?

대형 비리 사건 등으로 항상 떠들썩하고 시끄러웠던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가 최근 들어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박순용 검찰총장(사시 8회)의 임기(2년)가 5월 25일로 끝남에 따라 후임 검찰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진용이 어떻게 짜여질 지 모두가 숨 죽인 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총장은 김대중(DJ)정권 후반기의 사정 작업과 2002년 지방선거 및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는 만큼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차기 총장은 내년 대통령 선거와 정권교체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권력 관리 상황을 뒷받침해야 하는 만큼 여러 가지가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거론되는 총장 후보는 신승남 대검차장(사시9회ㆍ전남 영암)을 비롯, 이명재 서울고검장(경북) 등 사시 11회와 임휘윤 부산고검장(전북) 등 사시 12회가 후보군이다.

이중 가장 큰 관심은 가장 유력한 후임 총장으로 손꼽혀온 신 차장이 예상대로 검찰총장에 임명될지 여부다.


'3신 체제' 이뤄질까

신 차장은 그동안 선거편파 수사 등을 이유로 박 총장과 함께 야당의 탄핵발의를 받는 등 정치 공방의 대상이 돼 왔다. 호남 출신인 그가 총장이 될 경우 국가 주요 권력기관의 호남 독식이라는 논란이 가열될 가능성도 있다.

즉, 신승남 검찰총장- 신 건 국가정보원장-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이어지는 호남 3인방이 정권 후반기를 맞아 권력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주도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현 정권은 신 차장을 검찰총장에 기용해 신건 국정원장, 신광옥 민정수석 등과 함께 ‘3신 체제’를 만들려 한다”며 “야당 파괴공작에 앞장섰던 정치검사들로 정치권을 얼어붙게 만든 뒤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치르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권, 검찰 주변에서는 신 차장으로 사실상 ‘인사’ 교통정리가 끝난 상태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의 사법시험 동기생이 검찰을 떠나는 등 사전 정지작업이 이미 끝난 데다, 업무능력 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순용 총장을 지명할 때 이미 임기 말에는 신차장이 맡는 것으로 구도가 짜인 것 아니냐”면서 “신 차장의 실무능력과 통치철학 이해도에 대한 점검이 완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시 9회인 신 차장과 경합할 사람은 남아있지 않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 차장은 1966년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한 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특별 발탁돼 청와대 암행감사를 지낼 만큼 두뇌가 명석하고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면서 “사정(司正)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신 차장이 정권 후반기를 짊어질 검찰 총수로서 가장 적임자”라고 말했다.


신승남 차장, 야당 거부반응이 부담

그러나 아직도 여권 일각에서는 신 차장이 한나라당의 표적이 돼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정기국회 당시 검찰 수뇌부 탄핵안 공세 때 한나라당의 주된 표적은 박 총장이 아닌 신 차장이었던 점에 비춰 이번 인사에서 신 차장의 발탁에 야당이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일 경우 또다시 정국이 급랭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때는 임휘윤 고검장이 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사시 12회인 임 고검장이 총장으로 발탁될 경우 사시 11회의 고위간부 4명이 검찰 인사 관례에 따라 모두 용퇴할 가능성이 높아 정권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실어줬다.

하지만 최종영 대법원장 등 사법부와의 기수 및 연령 등 형평 차원에서 워낙 차이가 나는데다 야당의 정치공세를 의식, 인사구도를 헝클어뜨릴 경우 오히려 정권 말기에 통치권의 공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신 차장이 낙점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문제는 신 차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될 경우 같은 호남 출신인 김정길 법무장관(사시 2회ㆍ전남 신안)을 유임시킬 수 있느냐 여부다. 김 대통령의 ‘지역안배’ 원칙에 걸리기 때문이다.

현 정권 초기에 박상천 법무장관-김태정 검찰총장이 모두 호남 출신이었지만, 김 총장은 문민정부 때 임명된 케이스이기 때문에 김 대통령의 적극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따라서 신 차장이 검찰총수로 기용될 경우 현정부 들어 최장수 장관(이달 말로 2년 재임)을 기록한 김 장관이 교체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얼마전까지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이른바, 비호남 출신 법무장관론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김 장관이 재임중 ‘대과’없이 무난하게 일처리를 해온데다 김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점 등을 들어 최근 들어서는 유임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형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같은 지역을 피한다는 인사원칙은 장관과 차관, 총장과 대검차장 사이에 적용된다”며 “능력이 뛰어난데도 지역 때문에 역차별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정길 장관-신승남 총장 체제로 진용이 갖춰질 경우 법무차관에는 비호남 출신인 사시 12회의 이종찬 광주고검장과 한부환 대전고검장 등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대검 차장에는 사시 11회의 김경한 법무차관과 12회의 김각영 서울지검장이 경합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지검장은 대전고 출신으로, 현 여권의 한 축인 자민련에서 힘을 실어준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신 차장이 총장으로 임명될 경우 모두 TK인 사시 11회(4명)가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면서 “사시 12회를 법무차관-대검 차장에 포진시켜 자연스럽게 껄끄러운 인사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 대상인 사시 17회가 더 많은 검사장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11회 선배 기수들에 대한 용퇴 압력을 넣는다는 소문마저 들리고 있는 형편이다.

사시 12회가 법무차관과 대검차장 등의 요직에 포진할 경우, 사시 11회가 갈 수 있는 곳은 공석중인 법무연수원장 한자리 밖에 없다. 예년의 검찰 인사 관례대로라면 후배 검사가 자신의 상급자로 올 경우 옷을 벗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종전과는 전혀 양상이 다르다. 현 정권의 집권기간이 불과 1년6개월 남은 상태에서 차기 정권이 어떻게 뒤바뀔지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이들이 ‘자리’를 계속 지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 이들이 검찰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운데다 검찰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소장 검사들의 의견도 많아 이들의 행보는 앞으로 주시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검찰의 꽃' 서울지검장도 관심

한편,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지검장에는 호남 출신인 김대웅 대검 중수부장과 김학재 법무부 검찰국장, 정충수 수원지검장, 경남 출신의 송광수 부산지검장 등 사시 13회 출신들이 후보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양 김(金)’ 2파전으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특히 여권에서는 정권 후반기에 개혁과 사정작업을 지속적으로 진두지휘할 수 있는 추진력 강한 인물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중수부장에는 사시 14회로 비호남출신인 정홍원 광주지검장과 유창종 대검 강력부장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인사와 관련, “지난해 검찰 고위간부 인사 때 K검사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서울지검장 내락을 받고도 뒤늦게 자신의 병환을 알고 인사 발표 하루 전날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검찰 인사는 마지막 뚜껑을 열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내던졌다.

박정철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1/05/17 16:58


박정철 사회부 parkj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