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독일은 왜 전쟁을 일으켰나?

■ 뉘른베르크

모든 전쟁 영화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마무리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이상적일 수 없어서, 지금 이 시간에도 크고 작은 분쟁이 그치질 않고 있다. 전쟁의 발발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종교, 인종, 국경에 대한 편견과 이기주의가 가로 놓여 있다.

특히 '인종 청소'라는 끔찍한 표현이 동원되는 민족분쟁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나와 다른 핏줄이라는 사실만으로 살인을 하다니.

가장 많이 만들어진 전쟁 영화는 역시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것이고, 그 중 유태인을 대량 학살했던 나치 관련 영화가 압도적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주로 수입되는 우리 현실에서는 독일을 전범자로 모는 영화를 주로 보기 마련이다.

독일인들은 전쟁 당사자인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처럼 뛰어난 문화를 갖고 있던 민족이 히틀러의 출현에 광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가 이브 시므노의 TV극 <뉘른베르크 Nuremberg>(12세, 나인밀리)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뉘른베르크는 유엔 최초의 국제군사재판이 열린 독일의 도시 이름이다.

1945년 9월 미국의 밥 잭슨 연방 대법관을 수석 검사로 하고, 영국의 제프리 로렌스 경을 재판장으로 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연합 4개국이 주도하여 나치 잔당을 심판했던 곳이다. 피고인은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선전상 허버트 괴링을 비롯한 24명의 나치 고위 간부들.

1945년 10월에 나치 간부 24명에 대한 기소장이 제출되어 11월 20일부터 이듬해 8월까지 심리가 진행되었다. 403회의 공판이 열려 200여명이 증언대에 섰으며, 1946년 10월에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 도중에 사망한 2명을 제외한 22명 가운데 12명이 교수형, 3명이 종신형, 4명이 유기형, 3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국제 재판은 미국의 사회파 감독 스탠리 크레이머의 1961년 작 <뉘른베르크 재판>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빼어난 흑백 영화는 역사적 사실보다 독일 지식인의 심리적 행적을 조명한 픽션이다.

이브 시므노의 <뉘른베르크>는 140여분 동안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며 독일인이 전쟁을 일으킨 심리적 원인을 규명하려 한다.

특히 피고인의 심리 분석을 맡았던 미국 군의관 길버트 대령을 통해 독일 국민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유를 찾아내려 한다. 원작은 조셉 R. 퍼시코의 'Nuremberg; Infamy on Trial'.

밥 잭슨 검사(알렉 볼드윈)는 루스벨트의 뒤를 이은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나치 전범 재판을 맡게 된다. 처칠이나 소련의 니키첸코 장군은 간단한 총살형을 주장하나, "재판이 없다면 우리도 나치와 다를 바 없다.

다음 세대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뜻도 있다"는 지식인들의 건의에 따라 잭슨은 연인인 비서 엘시 더글라스(질 헤네시)와 함께 폐허가 된 뉘른베르크에 도착한다.

피고인들은 "전쟁 중에 저지른 일은 범죄가 아니다.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과 언변이 남다른 괴링(브라이언 콕스)은 "독일 의견을 묵살한 재판은 아무 의미가 없다. 50년내로 내 동상이 집집마다 세워질 것이다"라고 큰소리 친다. 심지어 유태인 학살 장면을 담은 기록 필름을 본 후 "공포 영화를 보았다"고 조롱할 정도.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5/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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