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칸에 간 700명의 우리 영화인들

무려 700명. 해마다 이 정도는 된다. 그래서 칸영화제가 열리는 팔레극장 앞에 서 있거나,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부사가 있는 칼튼 호텔 로바에 가면 한국 영화인들 쉽게 만날수 있다.

그들이 단골로 묵고있는 칸비치레지던스도 해마다 이맘 때면 방이 없어 난리다. 그곳에서 팔레극장 앞을 왕복 운영하는 셔틀버스 운전기사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단골 영화인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칸영화제가 열리면 우리 영화인들은 꼭 가야 할 곳으로 생각한다. 제작자와 감독은 칸에서의 수상을 지상목표로 삼고있고, 수입업자들은 좋은 영화보다는 돈 되는 영화를 찾으려 애쓴다.


<영화를 팔러 간 사람들>

올해에는 튜브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등 5곳에서 부스를 차렸다. 지난해와 달리 장편경쟁이나 감독주간 등에 한국영화가 한편도 진출하지 못하고 겨우 2편의 단편만이 영화제 손님이 된 올해 칸영화제는 수출의 장(마켓)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파이란' '무사' '친구' 등 20여편이 마켓시사회를 가졌다. 몇 년전 심형래 혼자서 말도 안되는 영화를 들고 나갔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한국영화가 국내에서부터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니 해외로의 진출도 자연히 커진 것이다. 당장 계약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실제 칸 마켓시사회에서의 관심과 반응으로 볼 때 '파이란' '무사' '친구'는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무사'의 20분짜리 편집 필름 시사회 에는 콜럼비아, 미라맥스 등 미국 메이저사들이 참여했고, '친구'에는 일본 메이저사들이 배급의사를 밝혔다. 부스를 차린 배급사 직원들은 하루종일 전화받고 상담하고 시사회 준비하느라 바쁘다.


<외화를 사러 간 사람들>

700명의 대부분이 이들이다. 이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공식상영작에는 별관심이 없다. 마켓을 뒤지고 다닌다. 이미 완성된 영화를 사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기획단계에 있는 작품을 '찍는다'. 감독과 제작사와 제작비만 보고 도박을 건다.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지난해 시네마서비스는 이런 방법으로 '반지 제왕' 시리즈 3편을 무려 450만달러를 주고 샀다. 그래놓고는 올해에는 그 데모 필름을 보러 칸에 다시 갔고, 자기 영화의 수출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매스컴을 통해 그것을 어떻게 국내에 알릴까에 주력했다.

"마치 IMF이전 같다. 대기업이 마구 경쟁적으로 영화를 살 때와 비슷하다. 이러다가는 공멸한다. 차라리 영화계에 자금이 좀 빠져 나갔으면 좋겠다." 칸에서 만난 한 영화인이 한 말이다. 수입과열경쟁과 그로 인한 가격상승. 4, 5년전 망령이 되살아난 셈이다.

외국 배급사들도 한국영화계에 돈이 많고, 살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른다. 앤디 맥도엘이 나오는 영국영화 '크러시'는 작은 영화인데도 한국영화인들이 몰리자 25만달러를 불렀다. 그렇더라도 보통 제시 가격의 절반이면 충분히 살수 있다.

그런데 서로 살려고 하면서 22만달러까지 치솟았다. 프리세일로 나온 모건 크릭사의 '플라잉 타이거'는 아직 배우 캐스팅도 안 했는데 상업성이 있다는 판단으로 한 영화사가 80만달러나 주고 샀다는 후문이다.

이런 판이니 백두대간처럼 1만달러도 안주고 예술영화를 수입하려는 영화사들은 한숨을 쉴 수 밖에 없다. 이광모 대표는 "그들에게 예술영화에 대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렵게 적은 가격에 오퍼를 한다.

그들도 웬만하면 그동안의 신뢰와 친분을 고려해 작품을 준다. 그러나 다른 수입업자의 제시가격이 워낙 크다 보니 그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금만 돈이 있으면 이렇게 자기 무덤을 파는 영화인들. 칸은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언제나 그들을 유혹한다.

입력시간 2001/05/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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