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전후 최대의 반상대결

- 오청원(吳淸原)의 치수 고치기(22)

오청원-하시모토 2차전에 관한 요미우리 신문의 사고(社告)를 읽은 후지사와 9단은 크게 화를 내며 일본기원의 기관지인 기도(棋道)에 "나는 언제든지 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요미우리가 무례하다고 비난했다.

요미우리도 "어느 쪽이 무례한가?"라는 글을 실으면서 오청원-후지사와의 치수고치기 10번기는 계속 난항을 겪게 된다. 수개월이 흐른 후 감정을 삭인 양측은 후지사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화해하면서 오청원-후지사와 10번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러나 이번엔 제한시간을 몇 시간으로 하느냐로 싸웠다. 장고파인 후지사와는 13시간을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았고 오청원은 10시간 이틀제를 고집했다. 제한시간은 어느 기사에게나 문제가 된다.

특히 오청원 같이 감각적 바둑을 구사하는 천재형 기사에게는 제한시간이 짧으면 좋겠지만, 장고파 기사에게 제한시간은 생명과도 같다. 그러나 아무리 생명과 같은 것이라도 상대가 있는데, 한쪽의 주장만을 담기엔 무리가 따른다.

오청원은 1일 마감을 원칙으로 하는 사람이다. 바둑은 예술로서의 측면도 강하지만 어디까지나 경기다. 2일 이상 되면 동료들의 충고 등 아무래도 불순한 요소가 끼어들기 십상이다.

또 국제적인 경기로 보급하기 위해서도 1일 마감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짧다고 반드시 바둑의 내용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속기일지라도 훌륭한 기보가 많이 남아 있다.

어쨌든 70Kg대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후지사와는 16시간을 해도 끄떡없겠지만 오청원 같은 약골은 16시간 앉아있기엔 힘이 부친다. 오청원의 주장은 기껏해야 10시간 2일제로 두자는 것이다.

후지사와는 시간에 대해서는 완강한 뜻을 갖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과거 1차 10번기에서 패한 것도 속기에 강한 오청원의 속전속결 작전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결국 13시간으로 결정났다. 뜻을 굽히지 않는 후지사와에게 질려버린 요미우리 담당자는 훗날 "후지사와와의 10번기 만큼 애를 먹은 기억이 없다"고 회고했다.

1951년 10월 후지사와 9단과 접촉을 시작한지 2년여만에 2차 10번기가 빛을 보게 된다. 이 10번기는 소화(昭和)시대 20년대(1945~1954)를 통틀어 최대의 쟁기(爭期)로 꼽힌다.

오청원은 평소 대국에 임하면서 '절대로 이겨야 한다'든지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강박 관념을 갖는 쪽은 아니다. 승부는 운이 좋은 쪽에서 이긴다고 보기 때문에 전야제때 밝히는 임전소감에도 강한 승부 의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대국이 성립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세상소문도 떠들썩했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의 임전소감은 간단했다. "내가 평상심을 지킬 수 있으면 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 승부는 후지사와 9단의 수읽기에 뒷받침된 강펀치에 오청원이 정확한 대국관으로 맞서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하느님만 알고 있는 것이다.

제1국은 10월20일부터 3일간 린노라는 절에서 열렸다.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 산속 대국이었다. 후지사와 9단의 흑차례였는데, 돌이켜보면 호선으로 두어본 지도 후지사와로서는 처음이었다.

일본기계 공식랭킹 1위와 일본기계의 풍운아이자 비공식랭킹 1위를 달리는 오청원의 대결이 시작됐다. 태산같은 덩치에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후지사와. 그 앞에 조그만하고 가녀린 몸매에 눈빛만은 초롱초롱 빛나는 오청원.

50수를 지날 때부터 흑은 좌변의 백 모양에 쳐들어와 일찌감치 엎치락뒤치락 혼전의 양상이었다. 흑은 백모양을 송두리째 깔아뭉개고 백인 오청원도 흑을 자기 집 속으로 몰아놓고 흑을 잡으러 갔다.


[뉴스화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주니어부 우승경력을 지닌 소년 기사 이영구군이 제89회 일반인 입단대회에서 입단에 성공해 꿈에 그리던 프로기사가 됐다.

5월7일~12일까지 (재)한국기원 5층 연구생실에서 벌어진 제89회 일반인 입단대회 본선리그에서 이영구군은 10승1패의 성적으로 입단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 9승2패를 기록한 홍민표군도 프로기사의 꿈을 이뤘다.

이군은 이번 입단대회 본선리그 초반 2국에서 홍민표군에게 1패를 당했으나 남은 대국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무난히 입단에 성공했다. 그러나 홍군은 초반 5연승으로 입단이 유력시됐으나 6국, 9국에서 유준상, 김광종군에게 패해 유준상군과 9승 2패로 동률을 기록, 동률재대국까지 가는 혼전끝에 어렵게 입단에 성공했다.

입단한 이영구 초단은 권갑용 문하이며 1997년 제14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주니어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홍민표 초단은 김원 문하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5/22 20:0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