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미국의 선생님들

5월엔 여러 가지 날들이 많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면 바로 스승의 날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면 너무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몰라도, 일년에 한번씩 담임 선생님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며,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던 그날은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 스승의 날이 요사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촌지 등의 잡음을 막기 위해 스승의 날 행사를 취소하는가 하면 일부 학교에서는 아예 쉬어버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스승의 날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집단 폭행당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한다. 하늘같다는 스승의 은혜라는 말이 차마 입에 담기 면구스러워질 뿐이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지난 한 주가 선생님의 주간(Teacher's Appreciation Week)이었다. 여기서는 스승의 날이 아니라, 아예 스승의 주다. 그렇다고 특별히 거창한 행사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학부모들이 모여 점심을 준비해 선생님께 갖다 드린 정도이다.

물론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 모인 다인종의 학교인 만큼 선생님들에겐 세계 각국의 전통 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행사였을 것이다. 또 스승의 주 동안 선생님들은 학기가 끝나감에 따라 시험을 보고, 최근 새로 시작된 버지니아주 표준 학력 시험을 준비하느라 오히려 바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몇 년동안 대해본 몇 명 안 되는 선생님들로 미국의 선생님들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제한된 경험에서 비춰본 미국의 선생님도 역시 직업인이라는 느낌이다. 즉 교육이라는 서비 스업에 종사하는 전문 직업인이 미국의 선생님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와 같이 선생님들이 스승의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한 권위나 위엄을 느끼고, 또 이를 학부모들이 인정하며 그에 상응하는 예를 갖추어 주는 관계라기보다는, 좀 사무적인 관계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이러한 느낌은 일년에 두세번씩 있는 학부모 면담시간에 가보면 더욱 짙어진다.

선생님은 면담이 있기 전에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학업, 사회 생활, 친구들과의 관계 등의 항목으로 나눠 상세하게 설명한 편지를 미리 집으로 보내준다. 선생님이 본 아이들의 생활을 부모들이 편지를 통해 알고, 의문이 나는 점이 있거나, 이런 점은 좀 보완해주고 저런 점은 더 계발시켜 달라는 등의 요구 사항이 있으면 선생님이 보내준 편지에 답장을 써서 보낸다.

이렇게 사전에 서로 의견 교환을 한 뒤 정해진 날에 선생님을 만나면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발달 과정에 대해 실제로 의미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선생님과의 면담은 대개 선생님이 지난 학기에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목표를 세웠으며, 어떤 방법으로 목표를 성취하도록 교육하였는데, 당신 아이의 결과는 '이렇다' 하는 식의 내용이다.

듣고 있으면 선생님 자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학부모들에게 설득하고 알리는 시간인 듯하다. 혹시라도 자기 자식을 잘못 대하지나 않을까 그저 선생님이라는 권위에 아부하면서 "자식 놈 잘 부탁한다"는 소리만을 연신 하고 오는 우리 나라의 학부모 면담과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다.

물론 미국에서도 선생님을 특별한 사회적 지위로 인정해준다. 연봉이 몇 자리 수이냐를 가지고 그 사람의 우열을 평가하는 미국이지만 저임금에 고생하는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이다.

그러나 선생님도 직업인이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이 보다 나은 보수를 찾아 교직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각 교육구에서는 선생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워싱턴 DC 근교의 페어팩스 카운티(Fairfax county)만 하더라도 17만명 가량의 학생들을 위한 1년 교육 예산이 15억달러인데, 이중 85%가량인 13억달러가 선생님과 직원들의 인건비로 지출된다.

이제는 우리도 스승으로서의 선생님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선생님에 보다 더 무게를 두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더라도 아름다운 시를 읊어주고, 젊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물에다 소금을 넣은 다음에 꼬마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하는 마술을 보여 주었던 학창시절의 선생님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스승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박해찬 미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5/2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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