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대통령의 졸업식사

"우등상, 최고상 및 우수상을 받은 졸업생에게는 잘 했다는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C학점을 받은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모교인 예일대학의 제300회 졸업식에서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 현 대통령 부시는 다 알다시피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로 소위 미국 명문가 자제이다.

그의 할아버지 부터 예일 대학을 나와 딸 바바라(Barbara)가 작년에 예일대학에 입학함으로써 부시 집안은 4대째 예일대학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지만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현 대통령의 지적 수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부시는 예일 출신이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졸업식사에서도 스스로 고백했듯이 부시의 대학시절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예일대학을 들어갈 정도의 실력은 되었겠지만 미국의 명문대학들도 유명 인사나 동문의 자제들에게는 너그럽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부시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덕을 보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예일대학 동기생들도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운동이나 여타 사교활동에서는 군계일학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특히 텍사스 촌놈이 미국 동부의 명문 아이비리그에서 생활하기에는 적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 만도 한데 동료들은 전혀 그런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할만큼 사교적인 인물이며, 대학 시절을 만끽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예일대학 동문인 전임 대통령 빌 클린턴도 법대 동기생들에게는 학문적으로 그리 뛰어난 학생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대단히 사교적인 인물로 기억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대통령은 성적순이 아닌 것 같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법대생들 사이에서는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은 교수가 되어 평생 책이나 파며 살고, 그 다음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대도시의 큰 법률회사에 취직하여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평생을 보내는데, 대개 강의실 뒤에서 어슬렁거리면서 간신히 졸업한 사람들이야말로 나중에 대통령을 하든지 국회의원을 하면서 이름을 날리고 산다는 농담이 오가곤 하였다 한다.

대학 생활은 즐겁게 보냈는지 모르지만 졸업식 연설을 하러 간 부시 대통령은 예일대학에서 그리 환영을 받지는 못한 모양이다. 계란 세례까지는 받지 않았는지 몰라도 대통령의 연설 도중 박수보다는 야유가 더 많았으며, 학생들은 부시의 정책과 행정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졸업식장에서 들고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자 등을 돌려 앉기도 했다. 200명 가까이 되는 교수들도 대학이 부시 대통령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청원을 내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리버럴한 예일대학이니 만큼 보수적인 부시의 정책에 반감을 표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되어 온 동문을 처음 맞는 행사인데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고 느끼는 것은 여전히 한국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한 탓이라고 여겨진다.

최근까지는 부시도 예일대학과 거리를 두려고 하였던 것 같다. 텍사스에서 정치적 기반을 닦은 부시에게는 '동부 양키'인 예일대학 출신이라는 것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종종 모교인 예일대학을 미국 인텔리 엘리트주의자들의 산실이라면서 비난하곤 하였다.

비록 예일대학에서 태어나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예일대학 재학시 예일대학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을 나왔지만, 자신을 서부 텍사스의 카우보이 촌사람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부시 대통령은 동부 명문대 출신이라는 데서 오는 반감을 누그러뜨리며 정치적으로는 성공하였는지 모르지만, 결국 모교에 돌아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명문대나 일류대 출신이라는 졸업장이 사회 생활의 모든 면에서 고속 통행증이며 보증수표가 되고, 동문의 영광을 나 자신의 영광처럼 여겨 억센 동료 의식을 발휘하는 우리 나라 학연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언뜻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지도자에게서 바라는 것은 그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그가 제시하는 비전과 목표이며 그것은 반드시 학업성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지는 곳이 미국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해찬 미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5/2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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