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풍향계] 整風, 확산이냐 소멸이냐

민주당 초ㆍ재선 의원들의 당정 전면 쇄신 요구 바람은 어느 정도의 세기로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번 주 정국의 최대 관심사는 이것이다. 청와대 측과 민주당 지도부가 적극 무마에 나서고 있지만 불길이 쉽게 잡힐 것 같지 않다.

5월28일 민주당 확대 당직자회의에서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됐지만 참석자들 간 견해차만 확인 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초ㆍ재선 의원들의 당정쇄신론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과 동교동계의 감정만 더 악화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이날 정 최고위원은 한화갑 최고위원과 정균환 특보단장 등으로부터 '운동권식 성명서 정치'에 대한 비판을 받자 자리를 박차고 퇴장해 버렸다.


민주당 당내 갈등, 수습책 마련에 분주

5월29일 열리는 당무회의도 사태의 수습보다는 파장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개연성이 높다. 민주당은 중국을 방문 중인 김중권 대표가 이날 오후 귀국하는 대로 당내의 의견을 수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수습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를 통해 사태가 진정될지는 미지수다. 김중권 대표 자신이 소장파 의원들의 쇄신 대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안동수 전 법무장관 임명 파문이다. 초ㆍ재선 의원들은 처음에는 안 전 장관을 추천한 인사나 검증 책임이 있는 청와대 보좌진의 인책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전반적인 당정쇄신 요구로 수위를 높였다.

안동수 전 장관 임명파동만을 놓고 보면 민주당 초ㆍ재선 의원들의 문제제기는 포인트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인책을 요구한 추천인사가 실제로 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광옥 민정수석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올렸던 법무장관 후보 3배수에는 안 전 장관의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누가 감히 안동수 변호사 정도의 인물을 법무장관 감으로 대통령에게 추천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절대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함량이 안 되는 인사를 추천할 경우 추천자에 대한 대통령의 평가가 어떨 것인지 뻔한 데 어느 누가 그런 인물을 함부로 추천하겠느냐는 것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김 대통령이 안동수 변호사를 법무장관으로 발탁하는 과정을 이렇게 추리했다. 김 대통령은 이번 법무장관의 임명 포인트를 인권에 두었다.

김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 출범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머지 않아 출범할 국가 인권위원회가 조기에 소프트랜딩을 하기위해서는 법무부와의 원활한 협력이 긴요하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인권위와 궁합이 맞을 법무장관 감을 찾았던 것이고 인권변호사를 자처하는 안 변호사가 눈에 띄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는 것이다.

안 변호사가 객관적으로 볼 때 인권위와 호흡을 잘 맞출 인권변호사인지는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김 대통령이 안 변호사를 인권 변호사로 인식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계기가 있었다.

안 변호사는 차관급인 국가인권위의 상임위원을 하고 싶어했는데 이를 위해 민주당 김중권 대표, 이상수 총무 등을 비롯해서 여권의 고위인사들에게 부탁을 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확인이 된다.

안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 여권인사들은 안 변호사의 이 같은 부탁을 받고 인권변호사로서의 면모를 부각시켜서 청와대에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안 변호사를 만났던 여권의 한 인사는 "안 변호사 정도면 인권위 상임위원을 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ㆍ청와대ㆍ소장파 인식차이가 문제

이런 의견이 청와대로 전달되자 김 대통령은 안 변호사를 눈 여겨 보게 됐으며 척박한 서울 서초구에서 3차례나 출마, 낙선한 것에 대한 보상도 겸해서 안 변호사를 법무장관으로 발탁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안 변호사가 호남 출신이 아니라는 점, 법무부 조직과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재조 법조계의 기득권 의식이 덜 한 인사를 장관으로 앉힐 필요가 있다는 김 대통령의 의식 등도 안 장관의 발탁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인권 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던 김 대통령이 그 같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보좌진이 균형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논쟁의 초점은 이제 안 전 장관의 임명과정 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4ㆍ26 재ㆍ보선 패배와 민심 이반에 대한 총체적 책임 소재로 번진 상태다. 그 책임 문제를 놓고는 민주당 지도부와 청와대, 그리고 소장의원들 간 인식차가 커 사태의 조기수습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입력시간 2001/05/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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