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식 인사] 한쪽 귀 막은 또다른 편파

비공식라인이 주도하는 인사 시스템, 능력·자질보다 충성심이 우선

만사(萬事)냐, 망사(亡事)냐. 안동수 전 법무부 장관의 '43시간 재임 드라마'로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 방식이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안 전장관의 깜짝 발탁은 그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또 하나의 패착으로 결론이 나면서 43시간만에 물러난 안 장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김 대통령의 용인술과 인사 시스템에 대한 쇄신요구, 나아가 당 정풍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 대통령의 인사시스템에 정색을 하고 문제를 제기한 측은 여당인 민주당내 소장파 의원들.

김성호 정범구 의원 등 초선 의원 6명이 5월24일 당직 사퇴 등 집단행동에 나선데 이어 이튿날에는 천정배 신기남 송영길 의원 등 3명이 당ㆍ정 수뇌부 전면 쇄신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세 의원은 "국정개혁은 청와대 비서실을 포함하는 당ㆍ정 수뇌부의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수뇌부의 전면 쇄신을 요구했다.


'알만한 사람은 아는' 비공식 라인

소장파 의원들이 총구를 겨눈 대상은, 성명서대로 라면 '능력과 자세에 문제가 있는 인사들'과 '비공식 라인'이다.

안 전 장관의 인사파동도 궁극적으로는 문제인사들과 비공식 라인의 역량의 한계에 의해 빚어졌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말을 뒤집으면 문제인사들과 비공식 라인이 인사를 좌지우지 하는 시스템이 바로 김 대통령식 인사란 뜻이고, 정가에 최대 화두로 떠오른 인사검증시스템 미비의 근본 원인인 셈이다.

문제인사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비공식 라인은 또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대체로 아는 듯한 분위기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이 총리의 재청을 받아 각료를 임명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은 그런 절차를 사실상 무시해 왔다. 대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정원 등의 협조를 얻어 기초 자료를 정리해 복수후보를 올리면 대통령이 낙점하는 게 통례였다. 언론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공식라인이다.

그러나 안 전 장관 인사에서는 민정수석실조차 미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누군가 비공식 라인(통칭 비선라인)을 통해 추천하고 '밀실'에서 결정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인사가 '국민의 정부'에 들어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한 중견언론인에 의하면 최근 정치권 핵심포스트에 있던 인사들조차 '으악'하고 놀랐던 인사로는 안 전 장관외에 한완상 교육부총리와 이태복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이 있다.

이와 관련, 한 정치권 인사는 "흔히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을 지나면 그 자리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공식라인과 상의하지 않게 된다"고 귀띔했다. 안 전 장관의 인사파동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통령 임기 말의 인사징크스와도 통한다. 이 징크스에 걸리면 임명권자는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충성도를 먼저 따지게 된다고 한다. 김 대통령도 3년반을 넘기면서 공식라인보다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4년차 인사징크스에 걸린 것은 아닐까?

소수정권의 한계도 김 대통령 인사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정부는 개각 때마다 능력과 개혁성이란 인선 기준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인위적 지역 안배와 공동정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사 때마다 빠짐없이 자민련 몫이 따라다녔고, 거기에서 비롯된 원칙없는 인사는 단명 장관을 양산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 취임한 지 2개월도 안돼 물러난 '문제 장관'은 안 전 장관을 포함해 5명에 이를 정도다. 실제로 여권 내에서는 각료 후보 추천 경로, 미흡한 사전 검증 절차 등이 오래 전부터 문제점으로 거론돼 왔다.


인사 폐쇄성으로 그 얼굴이 그 얼굴

김 대통령은 또 사람을 쉽게 쓰지도 쉽게 버리지도 않는 스타일이다. 좋게 말하면 김 대통령의 이상에 맞는 인재풀을 120% 가동한다고 할 수 있고, 나쁜 말로 하면 인사의 폐쇄성이다.

김 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 자기가 믿거나 소매끝이라도 스쳐본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가까이 두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3년 반동안 요직을 거쳐간 인물을 보아도 모두가 오랜 심복이거나 집권 전부터 공ㆍ사조직 등에 간여했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박지원씨 같은 사람은 공보수석에서 문화부 장관을 거쳐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동원씨는 외교안보수석에서 통일부장관 국정원장을 거쳐 다시 통일부 장관으로 돌아왔다.

강봉균씨는 정책수석, 경제수석, 재경부장관을 거쳐 KDI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끼리 끼리' 돌고 돌다보니 주요 포스트에는 옛 식구들만 그득한 셈이다.

또 우리 현실에서는 김 대통령의 이상주의적인 접근방식이 적절하지 않을 때도 있다. 검찰은 어느 조직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상하관계, 경력이 중시되는 권력의 중추기관이기 때문에 파격 인사는 저항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 7년 경력의 안동수씨를 '인권'이란 이상 하나만 믿고 법무부 장관에 발탁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1999년 5월 개각 때 연극인 손숙씨를 환경부 장관에 임명했다가 한 달 만에 낙마시켜야 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상에 치우쳐 기존 관행과 질서를 역류했다가 실패한 경우다. 지난해 12월 학력 시비로 중도 하차한 박금성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경찰 내부에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는 점에서 유사한 케이스다.

반면 한번 쓴 사람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김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에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옷로비사건으로 그만둔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김 대통령은 끝까지 그를 보호하려고 했었다.

어느 조직이건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면 주변의 통할이 쉬워진다. 그러나 검찰과 같은 기관의 주류 인맥은 과거 야당의 시각에서 보면 적대적 세력이었기 때문에 김 대통령이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야, 인사때마다 "권력 나눠먹기" 비판

한 소식통은 가뜩이나 소수세력인 현 정권이 이것 피하고, 저것 피하고, 또 임기말로 가면서 믿을 만한 사람을 기준으로 찾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한 인사가 깜짝 발탁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런 김 대통령의 인사를 '오기 인사'라고 비난했다. "능력과 자질보다 충성심과 '권력 나눠먹기', '정권 재창출 효용성'만을 염두에 둔 무리한 인사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인사철이 다가오면 걱정부터 된다고 한다. 안 전 장관 처럼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인사가 발탁돼 구설수에 오르거나 뜻밖의 실수로 정권 전체에 부담을 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가슴을 졸이면서도 뚜렷한 해법은 없다는 게 국민의 정부의 고민이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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