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벡 효과…암 퇴치의 새 희망

혁명적 암 치료방식, 암 정복에 한 발 다가서

전업작가인 빅토리아 라이터(63ㆍ여)는 지난해 2월까지만 해도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다. 유일한 치료법은 그녀에게 고통만 안겨준 인터페론(바이러스 증식 억제 물질)치료.

그는 1999년 한해를 침대에서 보냈고, 너무 힘들어 독서도 산책도 제대로 못했다. 두 딸과 유산 문제를 처리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글리벡(gleevec)이란 실험용 약을 투여한지 몇주일만에 모든 게 변했다. 그녀는 "나의 에너지가 다시 돌아왔다. 독서도 산책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딸들도 상속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는다.

봅 퍼버. 48세. 로스앤젤레스 검찰청 소속 검사인 그도 글리벡 효과를 보았다. 2년전만 해도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해 자살까지 생각했다. 무릎으로 기어 간신히 화장실에 갔던 그가 지금 일을 하고 있다. "기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미식품의약국(FDA)이 최근 승인한 글리벡은 치료 효과가 있다. 그러나 모든 암 환자를 도와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이 암을 고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보조 효과(side effect)를 줄 뿐이다.

암 환자는 남은 생이 끝나는 날까지 이 약을 먹어야 하고, 중단하면 곧 암이 재발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글리벡은 기존의 치료법과 다른 혁명적인 치료방식이란 점에서 암 치료의 돌파구를 연 것으로 평가된다.


"암과의 전쟁, 승리의 그날이 다가온다"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지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기적'과 같은 치료법을 속속 내놨으나 실망으로 끝났다. 아직도 수술외에는 방사선과 화학 치료법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양한 연구를 통해 암의 진행과정에 대한 자료는 풍부해졌다. 과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암의 각 진행 단계마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무기들을 고안해 냈다. 물론 이 치료법은 아직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오늘 암에 걸렸다면 새 치료법으로 생명을 건질 수 없다.

그러나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안-케터링 암센터의 래리 노턴 박사는 "암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미 종양전문가 회의에선 암치료에 관한 좋은 뉴스들이 속속 발표됐다. 정상세포마저 죽이는 '융단폭격'과 같은 방사능, 화학요법과는 달리 새 치료제들은 마치 저격수처럼 암세포를 겨냥하거나, 세포 번식에 필요한 신호 전달체계를 공략한다.

새 치료제들은 우선 성장요소(growth factor)라 불리는 물질이 종양에 도달하는 것을 막거나 세포의 이상 성장을 지시하는 신호들을 차단해 암세포의 번식을 무력화한다.

또 다른 약들은 세포가 살고 죽는 경계선에서 그 밸런스를 깨뜨려 암적인 세포가 스스로 죽도록 유도한다. 암적 물질이 보통 세포로 침입하는 통로를 만들 때 사용되는 효소의 활동을 차단하는 것들도 있다.

앤지오제네시스 억제제 (angiogenesis inhibitors)로 알려진 물질은 종양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새 모세혈관을 만드는 것을 방해한다. DNA의 구조를 밝혀내 노벨의학상을 받았던 제임스 왓슨은 이 억제제로 2년내에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암 전문가들은 C(cure 치료)라는 단어를 쓰는데 무척 신중하다. 지금까지 환자들에게 너무나 쉽게 희망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암세포에 충격을 가해 암을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만성적인 질환으로 변화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있다.


다양한 신약개발 줄 이어

4년전 샌디에이고의 IDEC 제약회사에서 암세포의 단백질을 겨냥한 신약 리턱산(rituxan)을 내놨다. 리턱산은 모노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의 일종으로 암세포를 골라내 없앤다. 모노클론항체는 80년대에 암을 퇴치할 수 있는 '요술탄환'으로 불렸던 것.

그러나 그것은 너무 강력해 보다 순화한 것이 1년후에 나올 헐셉틴(herceptin)이다. 이 약은 암세포의 성장요소가 정상 세포에 진입할 때 통로 역할을 맡는 물질인 헐2(her2)를 공격한다.

그러나 헐2는 유방 종양의 30% 정도에서만 발견될 뿐이어서 유방암 환자가 헐셉틴에 듣는 환자인지 여부가 치료에 가장 중요하다. 과학자들은 헐2 보다 암세포에 더욱 많이 존재하는 물질을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휴스턴 암센터 소장인 존 멘델슨은 헐2의 사촌격인 표피성장요소(EGF)수용체(receptor)를 찾아냈다. 멘델슨 팀은 1984년 쥐 실험에서 EGF 수용체를 차단하면 암 세포의 성장 및 분열이 중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로 이러한 차단제로 지난해 imc-c225라는 물질을 개발했는데, 대장의 종양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슬로안-케터링 암센터 과학자들은 화학요법에다 EGF수용체 차단 물질을 추가했더니 완전히 희망을 버린 환자들의 5분의 1정도가 종양이 작아지는 효과를 경험했다.

이 센터의 살츠 박사는 "우리는 20% 정도의 효과를 얻었지만 성장요소의 세포 진입을 막은 상태에서 화학요법으로 치료하면 종양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고무된 살츠 박사는 이번 여름 인체실험에 들어간다.

EGF의 활동을 막는 약이 바로 글리벡과 타르세바(tarceva)다. 폐 종양과 머리 및 목 종양에 효과가 있는 타르세바는 뉴욕의 OSI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이레사(iressa)라는, 폐암과 위암, 전립선 암에 잘 듣는 약을 내놓았다. 물론 이것도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암세포가 급속하게 번식하는 이유는 일정한 분열과정을 거친 뒤 죽어버리는 정상세포와는 달리 암세포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종양 세포에게 죽도록 명령을 내리는 효소를 찾고 있다.

최근 여러 실험실에서 카스페이스(caspaces)라 불리는 효소 그룹을 찾았는데, 카스페이스의 활동을 막으면 세포 분열시 일어나는 DNA 복제 과정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DNA가 복제되지 못하면 세포 분열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아직까지도 암 퇴치에 중요한 것은 암의 조기 발견이다. 이를 위한 연구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PSA테스트다. 이 테스트는 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전립선 등의) 세포가 갑자기 커지는데 영향을 미치는 비밀 단백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테스트는 완전하지 않다.


엄청난 개발적인 시간 소요

새로운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꿈은 역시 돈과 연결된다. 빅토리아 라이터가 새 암 치료제인 글리벡을 투여하는데 월 2,400달러, 연 3만달러를 쓴다. 죽을 때까지 계속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왜 그렇게 비쌀까? 전미암연구소는 암 치료의 기초연구에만 투자할 뿐 치료제 개발단계에 가면 수익을 내다 본 제약회사들이 뛰어든다.

제약회사들이 하나의 새 약품을 시장에 내놓는데 무려 5억달러에서 10억달러가 든다. 미국의 FDA가 인정하는 동물 및 인체실험에 무려 15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보통 5,000번의 실패를 겪어야 한다. 제약회사는 실패한 5,000번의 실험경비도 대야 한다.

어쨌든 암퇴치 전망은 이제 희망적이다. 샌프란시스코 종양전문가 회의에 참석한 애리조나 대학의 미첼 고돈 박사는 "앞으로 20~25년 후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한다. 할 일이 없어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엄청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3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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