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4,000명 해고와 500만 달러짜리 초호화 시사회

500만 달러(약65억원). 물론 4,000명의 한달 월급 보다 적은 돈이다. 여러모로 봐서 4,000명을 그냥두는 것보다 잘라내고 대신 그들의 한달치 월급으로 초대형 호화 개봉 행사를 여는 것이 이익이다.

세계 곳곳의 기자들을 불러 영화를 보여주고, 배우들 인터뷰를 하게 하고, 파티도 열어주면 그들은 당연히 대서특필을 할 테니까. 물론 한국의 언론들도 그랬다.

'진주만' 개봉을 앞두고 월트 디즈니는 이런 선택을 했다. 15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는 그야말로 미국의 영화가, 디즈니의 상업주의가 얼마나 휘황찬란하고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축제의 장이었다.

332.8미터로 세계 최장 길이의 미국 핵 항공모함 '스테니스호'도 이 한판의 굿에 기꺼이 동참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것이 미국의 해군이다.

더구나 영화가 "평화를 사랑하는 최고 국가인 미국이 이래도 참전하지 않는다면 어찌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 할 수 있느냐"고 외치고 있는데야.

외신은 이렇게 전한다. "미국 해군의 최신예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가 월트디즈니 새영화 '진주만'의 야외개봉관 역할을 했다. 갑판에 계단식 좌석과 대형 스크린을 마련해 놓고는 하와이 주지사와 디즈니 관계자, 영화출연진, 태평양함대 소속 해군장교 등 2,000여명을 불러 거대한 시사회를 열었다."

이 일을 위해 10만2,000톤급 항공모함 스테니스는 샌디에이고에서 태평양을 6일 밤낮을 달려와야 했다. 하루 운항 비용만도 50만 달러나 된다. 그나마 함재기 70대와 호위선단을 샌디에이고에 떼어놓고 움직여 비용이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물론 행사를 위한 무대와 파티는 디즈니가 준비했지만 운항에 필요한 비용은 해군 예산에서 충당했다고 한다. 외신에 의하면 태평양함대측은 스테니스가 샌디에이고에 있어도 정규 항해훈련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진주만으로의 이동은 추가 비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영화 시사회 행사가 언론에 보도되면 해군의 사기진작은 물론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군 신병을 모집하는데 있어 몇 백번의 광고보다 더 나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디즈니로서는 사상 최대인 1억4,500만 달러(약1,885억원)나 들인 영화이니 500만달러 정도의 이벤트행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렇게 하면 세계모든 신문이 대서특필하고, 영화의 단점보다는 "대단하다.

재미있다" 고 할게 뻔하니까. 그것 역시 해군의 얘기처럼 광고보다 몇 백배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케팅전략도 그렇게 했다. 25일 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2주안에 거의 모두 배급해 이 호화판 이벤트의 효과를 최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영화속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혹시라도 흥행에 영향을 미칠까 부분 삭제까지 검토할 정도이니까.

사실 영화 '진주만'은 그 출발부터 철저히 상업적이다. 전쟁에 대한 시각이나 역사적 객관성은 관두더라도 전쟁 자체를 철저히 오락화했다. '타이타닉'처럼 대형 참사를 멜로드라마와 결합시켰고, 엄청난 특수효과로 관객이 마치 전장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전쟁 그 자체를 화려한 이벤트로 탈바꿈시킨 그런 디즈니가 일자리를 잃은 4,000명의 아픔을 알기나 할까.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들의 파업으로 어수선한 할리우드 분위기에 신경이나 쓸까. 그래서 할리우드는 '진주만'을 최악의 영화라고 서슴없이 욕한다.

디즈니의 천박한 상업주의가 영화 '진주만' 속의 오만한 미국 우월주의, 턱없는 애국주의와 영웅주의 만큼이나 역겹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3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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