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②] '뇌박사' 서유헌 서울대 교수(下)

'뇌 박사' 서유헌 교수가 창안한 '적기교육'의 핵심은 뇌 부위의 발달시기와 특성에 맞춰 교육의 종류와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잘 아시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뇌는 그 부위에 따라 발달하는 시기가 다릅니다.

3~6세때는 주로 앞쪽에 있는 전두엽이 발달하는데, 이 시기엔 보고 듣고 말하는 감각기관을 중심으로 한 종합적인 판단 능력과 도덕성을 키워야 합니다. 무리하게 글자부터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되지요.

이 때 생긴 버릇이 결국 여든까지 가게 됩니다. 부모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언어학습능력은 그 이후에 발달하는 측두엽의 지배를 받습니다. 보통 12세까지인데, 외국어를 잘 하려면 이 시기를 이용해야지요."

그렇다면 가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열광적인 오빠부대는 뇌의 어느 부위와 관련이 있을까. 후두엽이다. 후두엽은 시각 기능을 중심으로 나와 남, 혹은 다른 사람 사이의 미적 가치나 존재 가치를 비교하는 기능을 지배하고, 주로 사춘기 이후에 발달한다.

그래서 사춘기를 갓 지난 청소년들이 스타의 존재를 자신과 비교하다가 상대방에게 빠져들고 열광하게 된다.


이런 뇌기능에 관한 지식이 교육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는 게 서 교수의 생각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뇌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움을 느낀 서 교수는 미국의 뇌연구프로젝트(decades of brain)를 본 따 국내에서 처음으로 뇌학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뇌학회를 중심으로 활동 범위를 정치권으로 넓혀 1998년엔 뇌연구촉진법을 만들었다. 그나마 오늘날 뇌 연구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 것도 뇌연구촉진법 덕분이다.

물론 '생명체의 마지막 신비'라고 불리는 뇌의 연구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떤 때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현미경을 들어다 보아야 했고, 연구를 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뇌는 서 교수에게도 그렇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일랜드에서 연구할 때의 일이다. 유별나게 더웠던 어느날 서 교수는 시원한 곳에서 잠시 쉴까 하고 연구실내 냉장실에 들어갔는데, 그만 문이 안 열려 꼼짝없이 얼어죽을 뻔했다. 또 독일에서는 금요일 오후 늦게까지 연구실에 있다가 나와보니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월요일 아침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야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이뤄진 연구도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서 교수가 가장 아쉬운 실패작으로 드는 연구는 치매를 일으키는 한 단백질인 알파 시뉴클레인의 조직 분석이다.

"5년전쯤에 알파 시뉴클레인이란 단백질이 치매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접하고 이 단백질 구조 분석에 들어갔는데, 3년만에 손을 들었어요.

이 단백질은 정상적인 단백질인데도 세포질속에 많이 뭉쳐지면 신경세포를 죽여 치매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구조를 꼭 파악해야 하는데, 규명에 실패한 것이지요. 아직도 현재의 기자재와 이론으로는 구조파악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연구가 어려울수록 보람은 큰 법이다. 서 교수는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뇌신경 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 합성요소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밝혀낸 연구다. 미 코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그는 1년6개월간 연구실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유전자 분석에 매달렸다. 요즘 같으면 유전자를 분석(클로닝)하는 슈퍼(클로닝) 컴퓨터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그때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연구해야 했다.


5~10년뒤 완벽한 치매치료제 개발 목표

유학시절의 이런 집념은 천연한약재를 이용한 초기 치매치료제 '디하이드로에보디아민(DHED)'을 만드는데 밑바탕이 됐다. 서 교수는 무려 8년에 걸친 연구끝에 천연한약재에서 추출한 DHED이라는 물질이 뇌세포 보호 및 복구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험용 쥐에 적용해 본 결과 DHED가 기억력 감퇴를 늦추고 뇌졸중 등으로 인한 뇌세포 파괴 예방과 저하된 인지 능력 회복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뇌졸중을 일으킨 쥐에게 DHED를 투여했더니 쥐의 인지능력이 크게 향상됐으며 뇌조직 파괴정도도 DHED를 투여하지 않은 쥐에 비해 훨씬 적었다. 서 교수는 "DHED가 뇌세포 퇴화 등으로 인한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물론 뇌졸중 등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까지 어느 정도 치료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곧 인체를 대상으로 국내와 영국 등지에서 임상실험을 들어갈 예정이다. 이 단계가 끝나면 DHED 치료제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약은 현재 유일한 치매 치료약인 '타크린'보다 약효는 높고 부작용은 적은 치료제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약도 그가 궁극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치료제는 아니다. 유전자 연구를 통한 완벽한 치료약 개발이 그의 목표다. 계획대로라면 5~10년뒤에 나올 전망이다.

"이제는 치매를 일으키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연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2009년까지 3단계로 나눠 매년 약 1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서 교수팀은 첫 단계로 2003년까지 치매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C단단백질의 독성 원인 및 그 과정을 규명하고 2단계 2006년까지는 아밀로이드 C단 단백질 분해 효소의 특성을 밝힌 뒤 2009년까지 3단계에서는 치료제 및 백신을 개발해 낸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그가 이토록 치매연구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그의 답변은 간단하다.

"심장병은 3년, 암은 5년이면 환자가 죽든가, 낫든가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나 치매는 8-20년간 진행하면서 환자의 정체성을 없애고 가정을 황폐화시키지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것보다 먼저 퇴치해야 할 불치병이지요. 그런데도 우리 정부와 사회는 너무 무관심합니다. 미국은 치매 연구에 연 1,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연구자도 4,000명이나 됩니다."


지속적 두뇌활동이 치매예방에 효과

치매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방에 '왕도'는 없다. 그러나 몇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서 교수는 "노인이 된 후 두뇌에 외상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뇌에 외상을 입을 경우 치매 발생률이 3배 정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두뇌 활동을 위해 꾸준히 독서하고, 새로운 취미를 개발해 즐기면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

서 교수는 '뇌박사' 답게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효율적이란 말은 집중력과 통한다. 매 순간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는 잠을 충분히 자는 등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또 취미인 바이올린을 켜면서 뇌의 스트레스를 풀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는 지금까지 “깨어 있는 시간의 80% 정도는 ‘뇌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매년 뇌와 관련한 베스트셀러도 1, 2권씩 쓴다. 그러나 그는 책 원고는 외국 학회 출장 때 쓰고, 뇌와 상관없는 일은 맡지 않는 것을 지금까지 신조로 삼고 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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