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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堂은 추억의 대상이자 단절의 대상"

"未堂은 추억의 대상이자 단절의 대상"

고은의 미당 담론은 그의 말대로 '추억의 대상이자 단절의 대상'으로 요약된다.

고은은 평론 서두에 '사십구재 이후에나 말하는 것이 덜 거북살스럽겠다는 생각이었고, 애도와 회의 찬양들이 가라 앉은 다음에나 담담하게 나서겠다는 생각이었다'라고 시작한다.

고은은 미당과의 인연을 '진한 피에 이심전심도 많았다'고 회고하며 '1958년 미당의 추천으로 시 3편이 현대문학에 게재되는 덕에 등단하게 됐다'고 털어 놓는다. 하지만 그는 1971년 이후 다른 문학적 행로를 걷기 시작하면서 멀어지기 시작해, 1980년에는 미당이 8할 이상 자신에게서 부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고은은 미당의 대표작의 하나인 '자화상'을 중심으로 미당 개인에 대한 비판에 들어간다.

고은은 '자화상' 첫머리에는 '애비는 종이다'라는 시구를 인용, 미당의 신분을 상민이나 노비 신분으로 격하시킨 백철의 예를 들며 미당의 출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당의 부친은 고향의 대지주인 인촌(仁村) 김성수 일가의 농사 마름이었다고 한다. 마름은 지주에게 충성을 바치지만 참담한 소작인들에게는 지주보다 더 생사 여탈권을 휘두르는 실세라고 고은은 빗댄다.

특히 미당이 한국전쟁 직전 동아일보 사회부장과 문화부장으로 특채된 것도 아버지를 이은 인촌 일가와의 인연이라고 그는 단정한다.

또 김우창 교수의 자화상에 대한 비평과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라는 구절을 예로 들며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미당)는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이라고 매몰찬 독설을 가한다.

고은은 미당의 친일 행각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1940년대초 친일문예지 '국민문학' 편집책이 돼 조선인 지원병 송가를 쓰고 직접 지원병 훈련소에 가서 찬양하던 일을 공개한다.

또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깨어버리는 가미까제 자살특공대 찬양'일과 8편 이상의 친일 문학 흔적을 남기는 동안 '성전(聖戰)'을 강조하고 일장기에 절절한 충의를 바쳤던 미당의 행적을 비판한다.

미당의 인간적 심약함에 대한 지적도 있다. 고은은 일본 식민 지배가 끝나고 찾아온 한국 전쟁을 미당의 시련기 라도 말한다. 미당은 시대의 정면에서 약한 존재이고, 시대의 측면에 기탁함으로써 존재의 회로를 찾아내는 곡신불사(曲身不死)의 운명이었다고 고은은 설명한다.

'한 음률 전공자에게 역사는 너무나 거센 장벽이었으며, 외세 지배에 이은 전쟁이라는 재난 앞에 마침내 미당의 정신적 착란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인간 미당에 대한 비판은 자연히 그의 작품으로 옮겨 간다. 고은은 '자화상'에서 나오는 '스물세햇 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읽는 사람의 심금에 닿기 앞서 시인 자신에게는 과장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기껏 나이 이십대 초의 방황쯤으로 삶의 8할을 바람으로 돌리는 것은 언어 자체가 가지는 허상으로서의 감동 유발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또 해방공간에서 발표한 '귀촉도'(1946)는 식민지시대에도, 해방에서도 동떨어진 황당무계한 실패작이라고 쏘아 붙인다. 고은은 '그 시집 안의 적지 않은 시들이 거기에 눌어 붙은 점액질의 언어 기교 밖에는 볼품이 없어 보인다'고 비수를 들인 댄다.

또 고은은 미당이 1940년 만주 방랑 시절의 기억을 털어놓은 '일본 헌병 고 쌍놈의 새끼'(1992년)라는 작품을 예로들며 친일파인 미당이 '기껏 경범죄에 해당하는 오줌싸기를 어떤 거사라도 하는 것처럼 자못 너스레를 부리고 있다'며 '이렇게 하면 자신이 양심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고 인신 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고은은 미당에 대한 한조각의 변명도 한다. '미당은 전후좌우를 다 헤아린 실리적 친일을 한 육당(六堂ㆍ최남선)이나, 새 가정과 작품 발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춘원(春園ㆍ이광수)의 친일과 다른 고소공포증에 가까운 굴복이 된 친일'이라고 말한다.

미당은 일제말까지 철저한 친일로 내달은 파인(巴人ㆍ김동환)과도 다르다고 말한다.

고은의 미당 담론은 미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담론의 행간에는 은사에 대한 끊기 힘든 인연과 현실에 안주한 스승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난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1/05/3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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