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일본지식인들의 역사인식 잣대

■ 신(神)의 나라는 가라

/ 이어령ㆍ우에스기 사토시 외 3인/이충호 옮김 일본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돼 온 모리시마 미치오는 그의 저서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에서 '일본은 교육과 정신의 황폐에서 오는 정치의 무능과 빈곤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그 해법으로 '동북 아시아 공동체'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1만엔짜리 지폐에 그려진 19세기 일본 근대화의 주역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독립 능력이 없는 조선 중국 같은 동방 악우(惡友)들과 손을 끊고 아시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우월감과 환상 속에 머물러 있다.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ㆍ일간의 뜨거운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극단적 우경화 원인과 그 문제점을 해부하는 서적이 출간 됐다.

이어령 박사와 4명의 일본 지식인이 공저한 '신(神)의 나라는 가라'(한길사 펴냄)는 일본 역사 교과서에 대한 심층 해부와 우리가 간과했던 왜곡된 역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지식인들이 본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우매한 일본 정치를 꼽았다. 해묵은 역사 왜곡의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들로 인해 오늘날 일본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또 우익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과 산케이 신문, 후쇼사 출판사가 일체가 돼 추진한 역사 교과서 작성 과정과 채택 운동의 실태도 해부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최근 준동하는 일본 우익단체들은 오늘날 일본의 혼돈과 몰락 원인을 청소년들에게 '자학의 역사'와 '사죄의 역사'를 가르쳐온 교육 탓으로 돌리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자기 나라의 역사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새 교과서를 만들자'는 뜻에서 역사 교과서 왜곡 현상이 분출됐다는 것이다.

화평기에도 '일본 열도 침몰'이니 '후지산 폭발'이니 하는 식의 집단적 위기를 조장해 국민들을 이끌어갔던 일본 특유의 집단적 사회 분위기가 이번에는 '우경화'로 다시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불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라고 발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에 대해선 '모든 역사는 신화다'라며 수용하는 일본인들의 이중적 잣대도 꼬집고 있다.

책은 또 현재 일본 위기의 발화점인 금융 공황이 1920년대 시작된 오랜 관치금융의 잔재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동산업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장성의 관치 금융이 버블 경제와 장기 불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지금의 일본 위기의 심각성은 이런 위기를 진정한 위기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먼지를 긍정하고 찬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화일 뿐 결코 긍지가 될 수 없다. 그 먼지를 털어내는 용기가 있을 때 만이 그들의 위기 탈출은 시작될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6/05 17:21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