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치수 인생의 하이라이트 "상대가 없다"

- 오청원(吳淸原)의 치수 고치기(24)

후지사와 9단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본 최초의 9단이 두 번의 기회에서 한번은 자만심으로 승리하지 못했고, 두 번째는 금세기 최고의 기사로 주목을 받았지만 속된 말로 '상대도 안될' 정도로 일패도지(一敗塗地) 하고 말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오청원이 10번기에서 승승장구하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후지사와 9단은 제3차 치수고치기를 신청한다.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고 만신창이가 된 다음이나, 만약 이긴다면 그나마 반 본전은 하는 셈이다. 그리고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10번기 사상 처음으로 오청원을 이기는 기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지사와의 기대는 깨졌다. 선상선으로 출발하였으나 정선치수로 바뀌고 만다.

기계의 충격파는 대단했다. 후지사와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선상선인 치수가 정선으로 고쳐질 것이란 생각은 못 했던 것이다.

괴력이 따로 없었다. 고수의 깊이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오청원은 6국만에 5승1패로 4승차를 만들었다. 치수가 정선으로 바뀌자 더 이상 대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두다가 두점 치수까지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지막 제6국 때는 한판만 지면 치수가 바꿔지는 상황이어서 후지사와 9단은 일본 기원의 명예를 더럽힌다고 하여 품속에 사표를 넣고 다녔을 만큼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그 마저도 무위로 끝났다.

오청원의 치수고치기도 바야흐로 하이라이트를 넘어섰다. 후지사와와의 세 차례에 걸친 치수고치기는 오청원의 치수 인생의 하이라이트였으며, 이로써 '난다 긴다' 하는 기사들과는 전부 선상선 또는 정선으로 치수를 바꿔 놓았다. 그래서 오청원은 바둑을 둘 수 있는, 맞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기다니 미노루(木谷實)나 후지사와의 경우 한창 때의 전력이었으므로 오청원에게 지지만 않았더라도, 10번기에서 설사 지더라도 치수가 바뀌는 일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기사생활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승부의 세계는 그렇게 냉혹한 것이다.

이번엔 사카다가 오청원을 찾아왔다. '면도날'이라고 불리는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1949년에 이와모토(岩本薰)와의 치수고치기에서 이와모토는 "내가 격파당해도 내 뒤에는 사카다가 있거든"이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 정도의 기재였다.

훗날 일본바둑사상 최고 기사의 반열에 오르는 사카다는 통산 66회 우승을 차지해 타이틀 회수면에서 새 금자탑을 세운다. 그 무렵 사카다는 각 기전에서 발군의 성적을 올려 그의 시대가 다가오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팬들이 사카다와의 10번기를 학수고대한 것은 당연했다. 첫 10번기 이전에 오청원은 사카다와 6번기를 선상선의 치수로 둔 적이 있는데, 그때는 1승4패 1무승부로 완패했다. 따라서 선상선으로 맞선 사카다가 호선으로 치수를 바꿀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미 후지사와와의 운명을 건 치수고치기도 끝난 이후여서 오청원이 최선을 다할 것이란 전망을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만 반짝 2승2패를 기록했을 뿐, 오청원은 내리 4연승을 거두어 6승2패로 치수를 바꾸어 버렸다. 정선이다.

그후 또 다른 일류 기사인 다카가와(高川格) 본인방과의 10번기도 따로 이뤄졌다.

다카가와 9단은 2기 본인방부터 내리 9연패를 이루어 최근 조치훈 9단이 1998년 본인방 10연패 기록을 갱신할 때까지 일본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 그가 마지막 10번기 상대로 떠오르고 있었다.


[뉴스화제]



●日本 本因坊타이틀전 1;1원점

본인방 왕밍완(王銘琬) 9단이 타이틀 수성에 강한 의지를 비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5월 23~24일 일본 교토에서 벌어진 제56기 본인방전 도전7번기 제2국에서 본인방 왕밍완은 도전자 장쉬 7단을 맞아 250수만에 백 반집승을 거두고 1 : 1 타이스코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번 도전기는 일본 바둑사상 최초로 대만 출신 기사끼리 도전기를 벌여 화제가 되었다. 6월 6~7일 제3국이 속개된다.


●창하오 중일천원전 2:0 셧아웃

창하오(常昊) 9단이 2연승으로 중ㆍ일 천원전 우승컵을 가슴에 품었다. 5월 24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벌어진 제14회 중일 천원전 결승 3번기 제2국에서 중국의 창하오 9단은 일본대표로 출전한 류시훈 7단을 맞아 163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2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창하오 9단의 우승으로 중국은 이 대회에서 통산 9승5패로 일본에 앞서 나가게 됐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6/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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