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61)] 히가시(東)와 니시(西)

남북으로 뻗은 한반도와 달리 일본 열도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기후(岐阜)현 세키가하라(關が原)를 중심으로 '간토'(關東)와 '간사이'(關西), 즉 히가시(東)와 니시(西)의 가르는 데 익숙하다.

일본의 동서는 주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특징으로 한 한국의 동서처럼 지금 뚜렷하게 갈라져 있다. 한국의 지역감정을 두고 제3공화국 이후 정치인들이 선동한 지역주의를 그 배경으로 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간토의 도쿄(東京), 간사이의 오사카(大阪)를 축으로 한 일본 동서의 뿌리깊은 대결 의식을 보면 한국의 동서 대립도 보다 깊은 뿌리가 있으리라고 짐작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 동서의 지역 감정은 한국처럼 두드러지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의 골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출신의 동서 차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은근한 갈등이 이어진다.

요미우리(讀賣) 신문과 아사히(朝日) 신문의 경쟁도 요미우리가 도쿄에서 출발한 반면 아사히는 오사카에서 출발한 신문이라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일본 사회의 동서 의식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도산이 잇따르고 있는 한국계 신용조합을 인수하기 위한 한국계 은행 설립 운동이 좋은 예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재일 한국인 신용조합협의회(한신협)의 '한신협 은행'과 가칭 '한일은행' 구상으로 갈라진 이 운동은 결국 양쪽 다 결실을 맺지 못하고 한국 정부가 측면 지원하는 제3의 구상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계 신용조합 가운데 1, 2위인 간사이흥은과 도쿄상은의 주도권 싸움이 주된 배경으로 지적됐다. 한국계 은행을 주도적으로 설립할 경우의 경제적 이해도 고려됐지만 어느새 자리잡은 동서 대결 의식도 크게 작용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영호남 대결이 무색할 정도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다만 일본의 동서 의식은 의원내각제라는 정치 제도의 특성상 정치적으로 표면화하거나 극대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르다. 동서 대결 의식의 심층을 이루는 문화적, 역사적 차이가 학자들의 공개적 연구 대상이 되고 누구나 그런 배경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도 이를 금기처럼 여기는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흔히 속마음을 화끈하게 드러내는 한국인의 행동 양식과 속으로 감추는 일본인의 행동 양식이 대비되지만 동서 문제에서는 역전된 셈이다.

동서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일본의 연구는 6,000~6,5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동서의 숲을 구성하는 수종의 차이를 밝히는 데까지 이르러 있다. 이는 당시의 수렵 채취 경제와 그후의 농경 문화에 대한 수용 태도의 차이, 주인공들의 인류학적 형질 차이를 규명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연구 결과 일본의 동서에는 방언의 분명한 차이는 물론 유전자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발견됐다. 계곡을 간토에서는 '사와'(澤)라고 부르는 반면 간사이에서는 '다니'(谷)라고 부르는 등 방언의 유형이 확연하게 구별된다.

형질상 남방계의 특성이 강한 '조몬진'(繩文人)과 북방계의 특성이 강한 '야요이진'(彌生人)의 혼혈이 현재의 일본인을 이루고 있지만 간토 지역에는 조몬진의 형질이 강한 반면 간사이 지역은 야요이진의 형질이 강하다.

B형 간염 바이러스의 항원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한국인의 항원 특성이 간사이에서 간토로 갈수록 약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자연 조건과 인류학적 형질의 차이가 문화 차이의 바탕으로 추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취사 도구는 간토가 방바닥을 파서 화로를 만들고 그 위에 줄에 매단 냄비를 늘어뜨린 '이로리'를 쓴 반면 간사이는 아궁이에 솥을 걸친 '가마도'가 대종을 이루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간토에서는 메밀국수(소바)가 인기이고 간사이에서는 밀가루 국수(우동)가 우세하다. 같은 소바나 우동이라도 양념장에 간토에서는 가다랑어를 말려 대패로 민 가쓰오부시를 주로 쓰고 간사이에서는 다시마를 쓴다.

요리의 양념은 간토에서 간사이로 갈수록 진해진다. 일상 생활의 행동 양식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기질도 크게 다르다. 간사이쪽으로 갈수록 싫다, 좋다를 분명하게 말하고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참아 넘기려 하지 않는다.

자연조건과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한 문화와 의식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동서 문제 해결에도 좋은 출발점이 될 듯하다.

황영식 도쿄 특파원

입력시간 2001/06/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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