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공화국] 정당한 권리 불구 '접대' 안하면 불안

그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이었던 1980년대 중반 모대기업의 '술상무'였던 K씨의 '핵심부 줄대기 전략'은 아직도 야간 업소에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일화다.

당시는 언론사가 통ㆍ폐합되고, 멀쩡한 사람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는 그야말로 서슬 퍼런 공포 시대였다.

따라서 기업들도 어떻게 해서든 정권 핵심부의 정치 군인들과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썼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들이기에 기업들이 그들과 연을 맺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오너로부터 줄대기 특명을 받은 K씨는 묘안을 짜낸다.

그는 정권 실세들이 자주 찾는 룸살롱을 알아놓은 뒤 그 곳의 마담을 찾아가 "술값 1억원을 선불로 줄 테니 XXX 같은 정권 실세들이 오면 곧바로 연락해달라"고 제안했다. 몇일 뒤 마담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K씨는 실세들과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자신이 옆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마담이 소개하는 형식의 작전이 주효했다. 안면을 튼 K씨는 이후 실세들과 잦은 술자리를 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K씨의 회사가 각종 관급 공사에서 상당한 수주를 따내며 견실한 성장을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고질적이 접대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실례다.


비밀유지 가능한 룸살롱 선호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접대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음성적인 접대 문화의 대표적인 나라가 됐다. 조금이라도 이권이 걸린 것이면 거의 예외없이 개인적인 접대가 낀다.

정당한 권리이자 혜택인데도 접대를 안하면 '뭔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하고 불안해 한다. 그러다 보니 성공한 쪽은 더욱 더 접대에 신경을 쓰게되고, 그렇지 못한 쪽은 '접대를 못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접대의 유형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술과 여자를 통한 유흥 접대에서, 검은 돈을 뿌리는 뇌물 접대, 최근에는 골프와 고가 명품 접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형을 달리해 왔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여전히 유흥 접대. 요정으로 시작된 향락 접대 문화는 최근 룸살롱과 단란주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강남을 중심으로 나타난 룸살롱은 '접대의 꽃'으로 통한다.

우리의 룸살롱 문화는 일본으로의 역수출된 것을 넘어, 중국과 동남아 오세아니아 심지어는 미국과 유럽, 남미까지 퍼져가고 있다. 은밀한 밤의 타락한 문화가 '향락'이라는 숙주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룸살롱이 가장 선호되는 이유는 명료하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게 술, 여자와 유흥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접대 받는 입장에선 '소제국의 왕처럼 대우 받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고, 접대 하는 쪽에선 '이처럼 큰 돈을 들였으니 상대방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겠지'하는 식의 양쪽 입장이 서로 맞아 떨어진다.

룸살롱의 가장 큰 매력은 은밀함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룸살롱은 대부분 입구가 작다. 고급 룸살롱 일수록 간판은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작게 만든다. '즐길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룸살롱 손님치고 간판만 보고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장이나 마담, 최소한 웨이터라도 안면이 있어야 간다. 이처럼 룸살롱은 철저하게 인적 관계에 의해 운영된다. 신분 보장과 비밀 유지에도 유리하다.

정ㆍ재계 고위 인사나 정부 고위 관료, 교육ㆍ문화계 인사들까지 룸살롱을 애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위 강남의 잘 나간다는 룸살롱이 웬만한 중견기업 뺨치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이유다.


룸살롱 손님 절반이 접대 술자리

서울 강남 논현동의 D룸살롱. 국내에서 손꼽히는 이 곳은 지상은 호텔이지만 지하에는 3층 규모에 100여개의 룸을 가진 초대형 룸살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에는 룸살롱의 야전 사령관인 마담이 50명에 달하고 상주하는 아가씨(호스티스)만도 300명이 넘는다.

여기에 무대에서 춤추는 'D걸(디스코걸)'과 웨이터, 주방과 주차 담당 종업원까지 합치면 500여명이 이 곳을 생활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 룸에서 평균 100만원 내외의 술값이 나오는 것으로 계산하면 이 룸살롱의 하루 매출은 1억원을 넘나든다.

여기에 1인당 30만원 정도 하는 아가씨들의 '2차'(외박) 비용과 호텔비(7만원)까지 치면 그야말로 중견기업 뺨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강남의 S룸살롱 마담(47)은 "손님 중 절반 이상이 접대용이라고 보면 맞다. 룸 분위기는 아가씨의 미모와 서비스가 좌우하기 때문에 접대 받는 손님의 파트너는 특히 신경 써서 배정한다"며 "접대 자리는 예외 없이 2차로 이어지기 십상인데 간혹 맘에 드는 아가씨가 외박을 거부할 때가 제일 난감하다"고 말했다.

나이트클럽에서 7년간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한 종업원은 "접대 자리에는 한 병에 100만원하는 30년산 발렌타인 같은 최고급 양주에 A급 아가씨들이 들어가는 게 관례"라며 "술자리가 끝나고 2차로 이어질 때면 돈봉투를 슬쩍 옷 주머니에 끼어 넣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고급 룸살롱 접대와 달리 4~5년전부터 프라자호텔 뒷편 북창동과 무교동을 중심으로 일명 '홀딱쇼'단란주점이 생겼다. 이곳은 강남 룸살롱에 비해 저렴하지만 '화끈한 접대'가 가능해 기업의 과장이나 대리 사원급을 접대하는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호스티스들이 먼저 나체로 각종 쇼를 보여준 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손님들까지 옷을 벗긴 후 질펀하게 논다. 물론 술값과 아가씨 비용도 강남에 비해 30~40% 정도 싼 편이다.

골프도 접대의 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골프 접대는 주로 접대를 받는 자와 접대하는 사람간의 나이차가 많이 나거나, 성별이 다를 경우 활용 된다. 피접대인이 나이가 많은 고령자일 경우 대개 폭음을 해야 하는 술자리를 별로 반기지 않을 뿐아니라, 설사 술자리를 한다고 해도 나이차 때문에 어색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이 여성을 접대하거나, 여성이 남성을 접대해야 할 때는 룸살롱보다 골프 접대가 제격이다.


불필요한 비용 드는 불공정 게임

골프 접대는 단순히 골프로만 끝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라운딩 중에도 주최측이 제공한 상금으로 내기를 한다.

말이 내기 골프지 실상은 '잃어 주기 고스톱'이라고 보면 된다. 접대 받는 사람이 내기에서 충분한 돈을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주최측은 '골프 대회 경품'이라는 명목으로 갖가지 '뇌물'을 준다. 가장 흔한 것이 골프채나 보석, 세계 여행 티켓 같은 고가품이다.

고급 골프채의 경우 1,000만원을 넘는 것이 기본이라 접대에는 그만이다.

또 일부 접대에서는 골프 옷을 넣는 보스톤백에 현금을 넣어 주기도 한다. 보스톤백은 만원짜리 지폐를 넣을 경우 1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외부에서 보면 골프 옷가방을 들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액의 뇌물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요즘 최고 접대는 '낮에 골프 치고, 밤에는 룸살롱에서 신나게 논 뒤, 조용한 새벽에 돈가방 들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접대는 불필요한 비용이다. 편법이요 불공정 게임이다. 접대는 또 다른 접대를 양산한다. 악순환의 폐해는 사회 전체의 피해로 귀결된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6/05 21:12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