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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보·혁갈등' 재연되나?

한나라 '보·혁갈등' 재연되나?

국보법 처리 문제로 또 다시 대립

한나라당내 진보진영의 의원들이 3일과 4일 연쇄회동을 가졌다.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소속인 이들은 이 자리에서 6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크로스 보팅(자유투표제) 도입 문제 등을 논의했다.

김원웅 의원은“당 소속 의원 20여명이서명한 국보법 개정안을 당지도부에 전달한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전혀 당내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어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배경을 전했다.

하지만 모임의 성격상 자연스럽게 당 운영 문제도 화제에 올랐다. 재벌규제 완화 추진으로 드러난 당 노선의 보수화 문제를 비롯해의사결정과정의 비민주성 등을 성토한 것.

이들의 움직임은 한나라당내 보혁갈등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을며, 경우에 따라선 여당을 휩쓸고지나갔던 정풍운동의 불길이 한나라당으로 옮겨올 가능성도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당의 보수화를가만 둘 수 없다

국보법 개정 문제는 한나라당내 보수-진보세력이 첨예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이미 한 차례 충돌했던 사안.

당 지도부의 ‘중재’로 한동안 잠잠했던 진보세력은 “지도부가 국보법 처리 문제를 무한정 유보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다시 제목소리를내기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최근 당의 노선이 지나치게 보수일색으로 흐르고 있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나름의위기의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최근 재벌규제 완화 정책을 시발로, 교육. 건강보험과 관련해 사보험제도 도입을 허용하고 사학재단의 자율적 학생선발권및 등록금 책정권 보장 등 보수적 색체를 강하게 담은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또 대표적인 보수파인 김용갑 의원은 지난달 17일 자신의 인터넷홈페이지에 이회창 총재의 ‘개혁적 보수론’을 겨냥해 “이제 개혁이라는 소리만 해도 표가 떨어진다는 소리가나오는 마당에 총재가 왜 굳이 보수 앞에 개혁을 내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이 총재도 당무회의 등을 통해 ‘따뜻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등 자신의 보수주의 노선을 더욱 강조하고나섰다. 가뜩이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의 보수화를 우려하고 있었던 진보세력으로선 당의 화합을 위해 더 이상 숨죽여있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당내 진보세력의 중심추 역할을 해오던 이부영 부총재는 지난달 30일 청주대 특강에서 “YS, DJ 정권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차기 정권이 수구화 경향을 띨 조짐이 박정희 대통령에대한 향수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이 민주화 운동과 개혁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스스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요구하고 나서는 등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을 흔들지말라

진보세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보수파 의원들은 “몇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당을 흔들고 있다”면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우리 당의 가장 폭넓은 지지 기반인 보수층의 지지를 떨어뜨리는 일을 왜 벌이느냐”는 것이다.

즉 한나라당의 진보적 색체 강화가 결코 내년 대선에서 유리하지 않다는 상황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갑 의원은 이들을 겨냥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친북 세력”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김 의원은 “이제야 말로 우리 당의노선과 동떨어져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 사람들’을 덜어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당을 위해서 조용하게 지내왔지만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과 함께 우리의 확실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국보법 개정안 문제로 격돌하는 상황에서 당 지도부의 ‘중재’ 요청을 받아들였던 보수파 의원들은 그 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간간이 골프회동 등을 통해내부결속을 다져왔다. 따라서 진보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언제라도 집단적인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 지도부의선택은?

당 지도부로선 ‘중재’ 전략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의 승리를 가장 중요한 전략적 변수로 고려할경우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양쪽을 모두 끌어안아 지지도를 최대로 끌어올려야 하는 지도부로선 어쩔 수 없는선택이다.

이 같은 전망은 최근 박정희 평가를 둘러싸고 박근혜 부총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무대응 전략을 고수했던 것에서도 읽을 수 있다.

박근혜 부총재는 최근 “아버지에 대한 당의 입장이 정리돼 있지 않아 깊은 갈등과고민을 해 왔다”며 “아버지의 묘소를 한번도 찾지 않았던 이 총재의 입장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부총재는 지난달 30일에도 “이 것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며 “많은 국민들이 지난 시절에 대한 한나라당의 평가를 지켜볼것”이라고 이 총재를 거듭 압박했지만, 이 총재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소장파 반란으로 홍역을 앓았던 여당을 지켜보았던 터라 보수-진보세력 모두 전면전은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눈여겨볼 점은 3일 모임에서 소장파들이 민주당의 정풍운동에 대해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노력으로 동지적 애정과 연대의식을 갖자”고 의견을 모은 대목. 당 지도부를 겨냥해 은연중에 압박을 가하려는 수사법이 아닐 수 없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입력시간 2001/06/0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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