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마케팅 "밤손님을 잡아라"

대형유통업체들 '올빼미 쇼핑객 잡기' 불꽃 경쟁

주부 민경숙(32ㆍ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씨는 요즘 늦은 저녁시간에 외출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부터 생긴 버릇이다. 낮에 혼자서 장을 보던 민씨는 요즘 남편이 귀가하는 저녁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 할인점을 찾는다.

할인점에선 장만 보는 게 아니다. 온갖 음식을 만날 수 있는 푸드코트나 식당가에서 저녁을 아예 해결한다. 민씨와 남편이 함께 쇼핑하는 동안 아이들은 할인점에 설치된 놀이방이나 문화센터에서 논다.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날씨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오면서 유통업계의 여름 마케팅도, 소비자들의 쇼핑문화도 변하고 있다. 이른바 '밤손님'이 늘어난데 따른 결과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재래시장을 필두로 한 할인점, 홈쇼핑 등 유통업계는 야간에 쇼핑하는 '올빼미 쇼핑객'을 잡기 위해 개장 시간을 연장하고, 밤시간 대 특별할인 행사를 실시하는 등 밤 쇼핑객을 잡으려는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밤시간대 특별할인 행사 실시

'올빼미 쇼핑'의 원조는 재래시장인 서울 동대문상가다.

밀리오레 홍보팀 김대열(39) 과장은 "원래 지방 도매상인들을 대상으로 새벽까지 장사했던 동대문 시장에 4~5년 전부터 소매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쇼핑몰인 프레야타운,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심야쇼핑'이라는 신풍속도를 만들어냈다"며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다양한 것도 올빼미 쇼핑족 증가에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동대문 밀리오레와 두산타워는 각각 오후 9시~오전 5시, 오후 6~12시의 야간 매출이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날씨가 더워지는 6월 이후에는 야간 매출의 비중은 휠씬 늘어난다.

이에 따라 심야쇼핑객을 위한 음식점, 놀이시설, 극장 등 부대시설은 필수다. 심야에 동대문 상가를 찾는 고객들은 의류 쇼핑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활동도 즐길 수 있다.

친구와 함께 자주 야간에 동대문 상가를 찾는다는 직장 여성 김경조(29ㆍ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쇼핑하다 남는 시간이면 극장을 찾는데 시원한 곳에서 영화도 보고 잠도 잘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열대야가 올 정도가 되면 저녁 시간 쇼핑이 피서로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슷한 대형 쇼핑몰이 있는 남대문 상가는 야간 매출이 전체의 30~40% 수준. 교통 노선이 다양하지 않고 직장인 고객이 대부분인데다 심야까지 문을 여는 다양한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최근들어 심야쇼핑의 대명사는 할인점. 보통 할인점의 하루 최고 매출 시간대는 퇴근을 전후한 오후 4~6시지만 이제는 오후 6시 이후 매출이 점점 느는 추세다.

신세계 E마트의 경우 지난해 36개 전 점포의 시간대별 매출은 오후 4~6시가 21.6%로 가장 많았고 폐점 시간을 앞둔 오후8~10시(19.2%)가 두번째였다. 그러나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신세계 E마트의 올 5월 중 오후 6~10시 매출이 45.2%로 늘어났다.

할인점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도 5월 들어 오후 7시 이후 매출 비중이 30%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대구점, 서부산점은 '고객의 소리'코너에 '심야영업을 강화해 달라'는 의견이 쇄도하자 6월1일부터 개장 시간을 2시간 늘려 자정까지 연장했다.

이 두 곳은 원래 고객이 가장 많은 토요일에만 자정까지 개장했으나 이를 평일과 일요일로도 확대한 것.


대도시 심야쇼핑 비율 높아

지역별로는 대구 부산 광주 지역의 심야쇼핑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높다.

신세계 E마트가 지난해 시간대별 매출 비중을 지역별로 조사한 결과 오후8~10시 매출비중이 전국 평균(19.2%)보다 높은 지역은 대구(23.3%) 부산(20.8%) 기타 영남권(20.7%) 광주(20.2%) 네 곳이었다. 심야쇼핑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로 오후6~10시 비중이 42%나 됐다.

신세계 E마트 대구 만촌점장 김태한씨는 "할인점 고객의 약 60%가 부부 쇼핑객으로 퇴근 후 자녀와 함께 차를 몰고 와서 시장을 보는 쇼핑문화가 정착된 것이 올빼미 쇼핑객 증가의 원인"이라며 "특히 더위가 몰려오면 냉방이 잘되고 놀이시설까지 있는 할인점을 찾아 '피서'하는 고객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야간 쇼핑객 증가에 따라 할인점 내의 음식점 등 부대 시설 사용객도 증가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수원점에 입점한 음식점의 매출은 이른 더위가 시작된 4,5월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홍보팀 고영실(28)씨는 "지난해의 경우 6월 이후 음식점의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며 "올해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셔틀버스의 운행이 금지되는 7월 이후에는 야간 쇼핑객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E마트 이인균 마케팅팀장은 "셔틀버스가 없어지면 교통 체증이 적은 오후 8시 이후 자가용을 몰고 할인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세계 E마트, 롯데 마그넷 등 할인점들은 대대적인 주차시설 확충에 나섰다.

신세계 E마트는 올해 개장한 7개 신규 점포의 주차장을 모두 1,000대 이상의 차량이 들어갈 수 있도록 대형으로 만들었다.

할인점의 심야 쇼핑 때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은 대개 야채와 가전ㆍ냉방용품. 폐점 시간이 가까운 저녁때면 야채를 낮보다 싸게 파는 '타임서비스'를 실시하고 고가품목인 가전ㆍ냉방용품은 대개 부부가 구입 결정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일찍 더워지면서 에어컨과 보양식품이 단연 인기품목이다. 삼성 홈플러스의 경우 점포 당 하루에 에어컨이 30대 가량 판매되는 등 5월 중순 이후 판매량이 200% 이상 급상승했다.

이중 오후 7시 이후 판매 비율이 30% 정도. 보양식으로는 장어, 전복, 해삼ㆍ멍게가 잘 팔리며 김치나 차 종류도 판매가 급상승하는 품목이다.

홈쇼핑 방송도 심야쇼핑객의 세상이다. CJ39쇼핑이 4월 한달간 시간대별 매출점유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오후11~자정이 가장 높아 11%였으며 오후 9시부터 새벽1시까지 점유율은 33.1%로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넘었다.

반면 주부가 혼자 TV를 보는 낮12시~오후1시 매출비중은 5.9%에 불과했다. 고객관리팀 권혜영(34) 차장은 "날씨가 더워지면 야간 시청자가 더 늘어나기 때문에 야간 매출 비중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24시간을 문을 여는 편의점도 심야 시간대 매출이 평균 15~20%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가에 위치한 점포에서 밤 12시~새벽 4시 사이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면서 "팥빙수 샤베트 생과일시럽 등 냉과ㆍ식품류의 판매가 30~4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폐점시간 늦추기등 다양한 판촉활동

이 같은 심야쇼핑 추세에 따라 유통업계의 판촉 활동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재래시장인 두산타워는 건물 내의 패스트푸드점을 새벽 5시까지, 음식점도 새벽 2~3시까지 열어 심야 쇼핑객들을 맞고 있으며 그 동안 낮 시간대에 주로 진행해오던 청소년 대상의 문화 이벤트를 5월부터 오후 7시부터 오후 11시 사이로 옮겨 열고 있다.

또 메사, 프레야타운 등 다른 쇼핑몰들도 사우나 헬스클럽 게임랜드 등 부대시설을 24시간 운영해 밤 시간대의 손님끌기에 나서고 있다.

할인점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현재 산발적으로 시행되는 생식품의 '타임 서비스' 품목과 할인율을 대폭 강화하고 인기품목인 보양식의 시식행사 시간을 야간으로 연장할 방침이다.

또 심야 가족 쇼핑객을 위한 캐릭터쇼 및 사은행사를 다양하게 펼칠 예정이다. 신세계 E마트는 밤 시간대 고객 증가에 따라 5월 들어 대구 3개 점포의 영업시간을 오후 11시까지 한 시간 연장한데 이어 6월 1일부터는 전 점포로 확대했다.

또 차를 갖고 오는 야간 고객들을 위해 야간 주차요원 수도 10% 정도 증가시켰다.

롯데 마그넷, 그랜드마트 등은 오후 11시 이후에 생식품을 정상가보다 최고 50%까지 싸게 판매하는 '타임 세일행사'를 하고 있다.

LG유통, 해태유통, 한화유통 등 슈퍼마켓 업체들도 5월부터 일제히 영업시간 연장에 들어가 LG와 해태슈퍼는 폐점시각을 기존의 밤 8시에서 밤 9시로, 폐점시각이 밤 7시였던 한화스토아는 밤 8시로 각각 늦췄다.

CJ39쇼핑은 심야쇼핑객을 위해 최근 오후9시~새벽1시 생방송에 매출단가가 높은 가전제품 및 컴퓨터 방송을 지난해보다 30% 이상 더 배치했다.

노향란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06 15:00


노향란 경제부 ranh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