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권력지도 바뀐 '1인 탈당'

공화당 젶즈 상원의원 무소속 선언

미국 공화당의 제임스 제퍼즈 상원의원이 지난 주 탈당, 무소속을 선언함에 따라 상원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새로운 의회 질서, 즉 여소야대에 따른 변화는 의사당 주변에서부터 나타났다.

백악관의 알베르토 콘잘레스 보좌관이 패트릭 리히 민주당 상원의원(법사 위원장 내정)을 만나기 위해 상원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알래스카 북극지역 개발 로비를 맡았던 비즈니스 그룹이 홍보 계획을 취소하는가 하면 40여대의 카메라가 민주당 원내총무인 톰 대슐 의원을 찍기 위해 상원 계단 밑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제퍼즈가 탈당하기 전만 해도 대슐 의원을 기다린 것은 공공 채널인 C-SPAN 카메라 한 대가 고작이었다.


공화당에 엄청난 충격

제퍼즈의 탈당은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ㆍ공화당의 의석분포가 50대50인 상황에서 그의 탈당은 권력지도를 바꾸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특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취임이후 감세안과 교육개혁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는 시점에서 탈당이 이뤄져 공화당에게 주는 충격은 더욱 컸다. 공화당 의원들은 당시 지역구로 돌아가 느긋하게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퍼레이드를 즐길 꿈에 젖어있었다.

이번 사건은 한 사람의 반동에 의한 지각변동일까? 아니면 대선의 여진일까? 부시는 지난 대선에서 전체 득표에서 지면서도 플로리다주의 승리로 가까스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리고 의회에서 보수성향의 민주당 의원 몇몇을 회유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것은 상하양원이 공화당의 손에 있었고, 또 공화당이 협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제퍼즈의 탈당이 그의 독주 추세를 꺾어 버렸다. 이에 대해 대슐 의원은 "권력의 균형이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타임-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슐 의원의 말은 옳다. 응답자의 45%가 상원의 주도권이 민주당에 있을 때 국민 복지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36%만 공화당 편을 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균형은 상대의 독주를 막을 수는 있지만 그 어느 쪽도 자신의 안을 성사시킬 수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교착상태로 정치판을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양보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패배자가 된다"고 대슐 의원은 지적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부시는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을 무시하는 아버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다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첫 2년동안 저질렀던 실수를 답습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대선에서 중도파 이미지를 과시했으나 국정운영은 강경파를 만족시키는 쪽으로 끌고 갔다.

클린턴의 경우 동성애자(가이)의 군 복무 허용과 힐러리식 의료개혁을 밀어붙였고, 부시는 북극지역 개발, 기후협약 반대, 보수적인 강경한 고위직 인사 등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제퍼즈는 탈당 선언문에서 "낙태, 감세안, 미사일 방어체제, 에너지와 환경정책, 사법정책 등 크고 작은 분야에서 부시대통령의 노선과 달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클린턴을 중도 노선으로 되돌린 것은 1994년의 총선 참패. 민주당은 40년만에 처음으로 상ㆍ하원의 주도권을 공화당에게 넘겨주었다. 클린턴은 민주당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공화당과 협력해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공공개혁법안도 만들었다.

이번 사건도 94년의 재판인 셈.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을 중도 노선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로서는, 백악관이 정책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백악관의 칼 로브 정치 고문은 "대통령이 2년 동안 이야기해온 것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제퍼즈)한 사람"이라고 탈당 의미를 격하했다.


부시, 정책변화 불가피

이런 논란은 부시의 보수적 색채가 대선운동때는 '정책 가면'속에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그는 중도파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의 보수주의에 가면을 씌웠다. 그리고 이제 그 가면을 벗어버렸다.

제퍼즈 사건을 계기로 모든 게 분명해졌다. 타임-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시의 업무 스타일에 불만을 갖는 여론은 지난 2월보다 14% 포인트가 올라 38%에 달했다. 또 절반 가량은 다음 대선에서 부시를 거의 찍지 않거나 어느 정도 찍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클린턴의 첫 임기때와 같다.

백악관측은 정책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에너지와 환경분야에서는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또 제퍼즈가 불을 붙인 탈당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백악관은 몇가지 상징적인 이벤트를 기획중이다.

민주ㆍ공화당은 상원에서 탈당 경계상태에 들어갔다. 제퍼즈가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주의 한 주민이 '올해의 교사'로 선정됐으나 백악관 장미원에서 열린 시상식에 초대도 받지 못하자 불만이 폭발했다는 설도 있어 양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을 다둑거리고 있다.

공화당 원내총무 트렌트 로트는 로드아일랜드의 중도파 린컨 차피 의원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그의 바이오리듬을 체크한다. 만약 차피 의원이 원한다면 그가 아침까지 거르고 그 쪽으로 뛰어갈 지도 모른다. 민주당측도 탈당설이 나돌았던 젤 밀러 의원의 선거구 모임까지 달려가 서운해 하지 않도록 했다.

민주당이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한때 부시의 대선 경쟁자였던 존 메케인 의원이다. 그가 6주전부터 민주당의 여러 사람과 접촉을 했다고는 하지만 눌러앉는 게 더 유리하다.

백악관이 그를 붙잡기 위해 충분한 보상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메케인은 아직 공화당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제퍼즈가 탈당하도록 그냥 내버려 둔 것은 로트 총무의 실책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지만 로트의 지위에 도전하는 인물은 없다.

다만 공화당 일부 그룹에서 좀더 공격적인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로트는 제퍼즈의 탈당 책임을 백악관에게 돌린다.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다둑거려야 했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계산으로도 공화당이 그를 필요로 하지, 그가 공화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로트는 불만스럽게 말한다.


MD 등 대외정책에 고전 예상

모든 법안의 처리 권한은 민주당의 대슐 원내총무와 위원장들에게 넘어갔다. 그래서 대슐 총무는 타협을 요구한다. 감세법안에서도 그랬다. 양당은 금요일에 타협안을 만들었고, 이튿날 이를 통과시켰다.

양당이 맞서는 환자 권리 법안도 보다 많은 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민주당안을 중심으로 타협이 이뤄질 것이다.

또 지난 4월 통과된 선거자금 개혁안을 전임인 로트 총무가 하원으로 보내기를 거부했으나 대슐은 "해야 한다면 직접 하원에 갖다 주겠다"고 의욕을 보인다.

상원 위원회에서도 주도권이 민주당측으로 넘어가면서 미사일 방어 정책과 대외 통상정책에서 부시의 고전이 예상된다.

또 민주당이 공화당과의 협력 신호로 고위직 임명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은 아예 대통령에게 지명 철회를 요청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의 보수주의자 크리스 콕스가 대표적이다.

한 의원의 탈당이 의회의 권력구도에 변화를 일으켜 서로 한걸음씩 물러나 협력하게 만들 것이다. 대슐 총무가 지난 3월이후 처음으로 부시에게 전화를 건 것도 그렇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었다는 발표도 그렇다.

이것이 출발점이 된다면 제퍼즈 탈당을 계기로 부시는 지난 가을에 그가 약속했던 워싱턴을 만드는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6/0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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