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북 상선 '제주해협 항해'

북한 상선 4척이 남북분단 후 처음으로 제주해협을 항해했다.

일부는 제지다운 제지를 받지 않고 북방한계선(NLL)까지 마치 제집 안마당 거닐 듯 유유히 지나갔다. 오히려 “김정일 장군님이 개척하신 통로…” 운운하며 통신제지를 시도한 한국 해군과 해경을농락한 인상까지 주었다.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항해는 단순한 통과가 아니라 명백한 침범이자 도발이다. 이 같은 사건에 정부가 무대응에 가까운 극도의 온건책으로 대응한 것은 왜일까. 뜻밖의 도발에 갈피를 못잡는 바람에 대응시기를 놓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부의 온건노선은 대북한 햇볕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고 보여진다. 정부는 6ㆍ15 남북정상회담으로 열린 화해의 가능성을 강경대응으로 원위치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양보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대북정책이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비록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얻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현단계 남북관계는 주적개념을 운운할 필요가 없다. 북한이 전력의 70% 이상을 휴전선 부근에 집중하고 있고, 한국이 이에 대응하는 상황이 잘 말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수화경향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56~6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월27일 동해 90마일 해상에서 NLL을 실수로 월경한 한국 어선이 북한 무장선박의 총격을 받은 사건은 그래서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월경 어선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방침은가치의 혼란마저 느끼게 한다. 법을 제대로 집행하겠다는 걸 어쩔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정부와 북한의 방향이 너무 다른 것 같아 답답하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12 20:2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