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정상회담 1주년] 화해시대 꽃 피울 청사진을 그려라

2000년 6월15일 남북한 정상들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별의 포옹을한 이래 1년간 한반도엔 수많은 변화가 이어졌다. 남북한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지형 변화도 동반됐다.

정상회담 전 반세기간 이뤄진 남북관계 진전보다도 지난 1년간 훨씬 큰진전이 이뤄졌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 구도도 가시화했다.

그래서 ‘상전벽해와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간에 전쟁의 공포가 어느 정도 씻어졌고, 북한의 국제사회편입이 개시돼 정상적인 국가로의 장정도 시작됐다. 남북, 북미간의 활발한 대화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방안이 어느덧 국제적 현안이 됐다.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 정착

하지만 정상회담으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통일문제에 대해 일반 국민은 오히려 ‘보수화’한 듯하며, 외형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지형 역시 대북문제에 관한 한 정상회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또 조지 W 부시 미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태도 변화로 한반도는 다시 긴장 기류에 휩싸이면서 그간의 성과가 바래갔다. 부시 행정부가 최근 북한과의 대화를 선언했지만단 한차례의 남북정상회담만으로는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온전히 씻어낼 수 없으며, 한반도 문제의 ‘국제성’이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서 또 다시 입증된 듯 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우리 사회에 끼친영향은 매우 복잡한 주제가 될 듯 하다.

하지만 지난 1년의 평가는 향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공고화하는 전략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자료가 될 것만은 틀림없다.

먼저 정상회담후 1년이 남북 화해 협력의 분위기가 한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한 첫해였다는 평가는 누구도부정할 수 없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상회담은 분단 반세기 역사에 일대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고 규정하면서 “이를 계기로 남북은 그동안 양자관계를 규정해온 적대적 대결상태를 종식하고 공존과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이산가족, 경제협력, 사회문화 교류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지난해 8월 15일 600명의 남북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3차례의 방문단 교환이 이뤄져 3,630명이 흩어진 가족들을 만났다.

방문단 교환과 2차례 생사주소 확인작업을 통해 1만213명이 상대편 가족생사를 확인했다. 올 3월에는 서신 교환이 이뤄져 600명이 휴전선 너머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방문단을 통해서 북에 생존하는 KAL기 여승무원성경희씨가 남한의 노모를 만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등 납북자와 국군포로 일부도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아울러 비전향장기수 63명이 지난해 9월북송됐다. 민족의 한풀이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이다.

지난 1년간에는 7,965명이 남북을 왕래, 1989년이후 총 왕래인원의 36%을 점했다. 남한언론사 사장단 방북, 남북교향악단의 서울합동연주회, 남한 방송사들의 방북 취재, 남한 인사들의 백두산 관광, 평양 통일탁구대회등은 북한이해를 촉진시킨 이벤트였다.

이러한 진전은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의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 지난해7월 남북 외무장관들의 첫 회담, 같은 해 10월 유엔총회의 ‘한반도 평화와 안전 및 통일’ 결의안 채택 등의 국제적 행사로 이어졌다.

물론 남북관계의 진전에는우리측의 식량 60만톤, 비료 50만톤의 대북지원이 뒷받침돼야 했다. 대북지원과 병행해 우리 사회내부에서는 ‘퍼주기’ 논쟁이 꼬리를 물었다. 또 인적교류는 최근 거의 끊긴 상태다.


남남갈등, 대북사업도 큰 진전 없어

경제협력에서는 경의선 연결사업, 개성공단 개발사업, 임진강 공동수해방지사업합의와 투자보장합의서 등 4개 경협 합의서 마련 등이 값진 성과로 분류된다. 위탁가공교역의 활성화등에 힘입어 지난 한해 남북교역액은 4억2,514만달러를기록했다.

특히 남북의 혈맥을 잇는 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사업이 착공된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사업도 북측의 군사적 보장합의서서명 지연으로 사살상 중단된 상태이다. 남측 자본과 북측인력이 결합할 개성공단 조성 사업도 아쉽게도 진천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직결된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조치 구축 조치의진전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정상회담후 남북은 일체의 상호비방과 긴장조성행위를 중지하고, 지난해9월 제주에서는 1차 남북국방장관급 회담을 열어 군사적 긴장완화의 거보를 내딛었다.

또 다섯 차례의 군사실무회담을 통해 남북은 비무장지대의 평화적이용을 위한 공동규칙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주적 문제를 이유로 국방장관회담을 거부하는 한편 경의선철도 복원과 관련한 합의서 서명도늦추고 있다. 더욱이 부시 행정부가 최근 재래식 군사력 문제를 북미 협상 의제로 설정함에 따라 남북간의 군축 및 군사적 긴장완화 모색은 보다 어려운환경에 놓이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향후 풀어야 할 몇 가지 숙제를 지적한다. 우선 북측이 호응하지않고 있는 이산가족문제의 제도적 해결이다. 면회소 설치와 정례적인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을 속히 실현시켜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이산 1세대의 한을 풀어야 한다.

또 국방장관급 회담 등 군사당국간 회담을 개재해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언급된 각종 군 신뢰조치와 군축방안을 자주적으로 실천해야한다. 북측이 요청한 전력협력문제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남측의 경제여건과 제네바 핵합의와 연관성을 거론하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해 진전되지않고 있는 형편이다.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변화에 못지않게 남한사회의 분위기와 정치지형에적잖은 흔적을 남겼다. 먼저 정상회담후의 남남갈등과 우리 사회의 보수화다. 통일부 당국자들이 정상회담 1주년 기념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할지를 두고고민하는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분위기를 웅변해주는 단적인 예다. 여론조사결과가 그리 밝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정상회담후 대북정책 속도와 폭을 둘러싼 남남갈등이증폭된 것은 정상회담전 남남대화와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지역정치가 남남갈등의 원인이 되는 등 국내정치 지형에도긍정적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역정서와 맥을 같이하는 대북정책 지지도는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후진적인 우리의 자화상이다.


2차 정상회담 개최로 해빙 이어가야

하지만 선거 때나 국내적 위기때에만 등장하던 북한 변수가 상시적인 국내정치적 요소로 등장하고, 통일문제가 일상화한 것은 긍정적 징후중 하나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일 신드롬은 통일을 일상의 문제로 바라보도록하는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상회담의 과도한 열기와 기대는 정상회담 열기가 식은 뒤 냉소주의, 보수화 추세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정상회담전보다 우리 사회가 대북문제에 보다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며 “이는 현 정부가 대북 정책을 치적으로 간주하면서 여타 다른 문제를 대북문제와 연관시킨 데서 기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는 물론남한사회 내부, 미국 등 한반도 국제정치 주체에게 복잡다단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영향력은 양측 정상의 결단에 의해 크게 의지하고 있다.

즉 언제이고 그간의 성과가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남북의 냉전해체를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긴장완화의 로드 맵을 작성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후속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영섭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13 13:17


이영섭 정치부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