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톨레도 호' 순항할까?

원주민 출신 대통령, 경제난·부정부패 해소 등 난제 많아

“영광스런 잉카문명의 재현을 위하여!”

페루 국민은 6월3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페루 가능성’당의 알레한드로 톨레도(55) 후보를 선택했다.

전직 대통령인 아메리카 인민혁명동맹(APRA)의 알란 가르시아(52) 후보와의 득표차가 3% 포인트에불과하지만 페루 국민은 1821년 페루 독립 이후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잉카문명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출했다.

이같은 국민의 뜻에 부응이라도 하듯 톨레도 당선자는 정식 취임식 다음날인 7월 29일 잉카문명의 수도였던 쿠스코의 마추픽추 정상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상징적인 취임식을 갖는다.

톨레도의 승리가 확정된후 수도 리마 곳곳에서 울려퍼진 “구두닦이 인디오소년이 대통령이 됐다”는 지지자들의 환호는 톨레도 당선자의 입지전적인 인생에 보내는 찬사였다.

그리고 ‘파차쿠티(변혁을 이룬사람)’와 ‘엘 촐로엑시토스(성공한 혼혈 인디오)’라는 그의 별명은 톨레도의 인생역정을 웅변해준다. 톨레도는 1946년 3월 안데스 산맥의 인디안 마을에서 아버지가 양치기인 빈궁한 가정의 16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대가족을 이끌고 바닷가 도시로 이사하지만 빈곤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톨레도는 7살 때부터 구두를 닦는 등 자신이 번 돈으로 책을 구입해 주경야독하며 가난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찬 미래를 준비했다.


독재에 지친 국민의 새 희망

불 같은 향학열로 페루 산프란시스코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톨레도는 경제학을 전공한 뒤 페루의 한 일간지 지방주재기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자 서슴지 않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또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에서 자신의 전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톨레도는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인 1975년 벨기에 출신 유대인 여성인엘리안 카프(47)를 인생의 반려자로 맞았다. 붉은 색깔의 머리에 자그만 체구의 카프는 이번 선거에서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등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남미 원주민 문화를 연구, 페루의 역사와 전통에 해박할 뿐 아니라 고대 잉카 언어 등 7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카프는 선거운동 기간에 잉카 언어인 케추아어로 선거지원 연설을 하고, 전통 춤인 후아이노를 멋드러지게 추는 등 원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톨레도는 1995년 대권에 처음으로 도전했으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대통령에게 패퇴했다.

그러나 후지모리가 떠난 대통령직을 놓고 지난 해와 올해 결선까지 가는 격전끝에 ‘페루호’의 선장 자리에 올랐다. 톨레도의 대선 승리에는 후지모리 독재의 후유증인 정치 혼란과 경제 침체를 일거에 떨쳐 버리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페루 정국의 혼란은 지난 해 4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선거부정 의혹과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3선 연임을 강행한데서 비롯했다.

이어 그 해 9월 후지모리의 최측근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전 국가정보부장의 야당의원 매수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정국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후지모리는 자신의 축출운동이 들불처럼 거세게 퍼지자 지난 해 11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전격 사임을 발표, 페루를 충격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발렌틴 파냐과 전 국회의장이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취임해 개각을 단행하는등 정국 수습에 나섰으나 사회불안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 2여년 동안 반 후지모리 운동을 이끌며 페루의 새 희망으로 떠오른 톨레도는 선거 초반 압승이 전망됐으나 가르시아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좌파출신인 가르시아는 중앙통제 경제정책과 외채 재협상만이 페루를 살리는 길이라며 특유의 선동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막판 혼전을 낳았다.

유권자들은 국 근소한 차이지만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을 실시하며 연 평균 7,000% 대의 인플레를 유발했던 가르시아를 버리고 인본적 자본주의를 주창하는 온건 보수주의자인 톨레도를 선택, 페루의 운명을 맡겼다.


정국순항, 경제활성화 여부에 달려

톨레도의 당선으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축출 이후 계속됐던 페루의 혼란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톨레도의 페루가 순항할 것인지 여부는 당장 침체된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지 여부에 달렸다. 후지모리 집권말기인 1998년부터 시작된 페루의 경제난은 지난 2년 동안 더욱 악화했으며, 정정불안이 더하면서 올 1/4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도 전년에 비해 9.4% 감소했으며, 정부가 공공지출 예산을 대폭 줄이는 등 초긴축정책을 실시했으나 인플레와 실업률 상승 고삐는 잡히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톨레도가 당선 일성으로 경제회복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톨레도는 당선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제금융기관이나 외국인 투자가, 국내 경제 단체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권 인수인계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외채문제 해결과 투자유치를 위해 취임식 전에 일본 등 해외방문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본에 머물고 있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처리문제도후 순위로 밀려날 전망이다. 톨레도는 취임식 전에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지만 방문 목적은 경제교류 증진에 있을 뿐 후지모리의 즉각 송환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제문제 이외에도 후지모리 정권 시절 깊게 뿌리내린 부정부패의 고리를 척결하고, 인구 2,700만 중 절반이 넘는 빈민층에서 봇물처럼 쏟아질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줄 것인가도 톨레도의 과제다.

전문가들은 경제학자로서 톨레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나 실무경험 부족과 정부장악 능력에 의구심을 표시하며 톨레도 정권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톨레도가 이끌고 있는 ‘페루 가능성’당이 의회의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어 기득권 세력이 그의 개혁정책을 사사건건 방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기수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1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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