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 '아멕시카'

미국-멕시코 국경도시

국경선의 일부는 진흙탕 강이다. 수량이 적어 경작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마시기에는 너무탁하다. 나머지 국경선은 사막에 라인만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지도 제작자들은 전쟁 때문에, 또 리오 그란데(Rio Grande)강의 흐름이 바뀌는 바람에 국경선을 새로 그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날 무엇이 그런 국경마저도 없애버렸을까.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것들, 다시말해 100만 배럴의 석유, 432톤의 피망,23만8,000개의 전구, 5,100만 달러 상당의 자동차 부품, 1만6,250개의 토스트 기계, 에어컨 부품, 휴대전화 충전기등이 매일 국경을 넘고 있다.

세관만이 그 흐름을 따라잡을 수있다. 또 코카인과 헤로인은 물론이고, 판매 금지된 살충제,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거북 가죽으로 만든 부츠도 국경을 넘어온다.

국경을 드나드는 합법적인 인파만도 하루 80만명에 이른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다가 국경경비대에 의해 적발되는 멕시코인은 4,600여명.

미국 잠입에 성공한 멕시코인들은 조지아주에서 목수로,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정원사로 미국의 중산가정을 위해 일을 한다. 그들은 전갈이나 방울뱀, 감시 카메라의 위험을 피해.

또 자동차에 만든 비밀공간에 숨어서 무사히 국경을 넘으면 미국에선 아무도 원하지 않는 3D의 일자리를 얻어돈을 벌고 가족을 불러들일 방법을 찾는다.


멕시코 문화에 익숙해진 미국 국경도시

사람과 상품만이 오고가는 건 아니다. 미국은 샌디에이고, 엘패소등 국경도시를 중심으로 멕시코의 맛과 대중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멕시코산 칠리소스 맛은 이미 미국 내에서 케첩을 제압했고, 멕시코의 섹시 스타셀마 헤이엑은 마돈나의 인기를 뛰어넘고 있다.

북서쪽 국경지대엔 코모 세 랴마 유어 독? (당신 개 이름이 뭡니까)와 같은 스팽글리쉬(스페인어와 잉글리쉬를 합친 말)가 통용된다.

또 캔자스주 가든 시티에 있는 가게의 창문에는 “세 하블라 에스파뇰(스페인어를할 수 있습니다),앤드 유 캔~(그리고 당신은 신선한 망고를 살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인구 2만7,900명에 불과한 달턴에서는 스페인어 신문이 3개나 된다. 이곳에 살고 있는 에드윈 미첼(77)씨는 “우리는 국경에서 1,0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국경코뮤니티”라면서 “우리는 이미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는 앞으로 몇 년뒤 캐나다를 제치고 미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될 것이다. 히스패닉계 인구가 흑인 인구를 따라잡으면서 잠재돼 있던 정치적 힘을 발휘할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비엔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양국간의 현안 해결에 나서지만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미국의 세기’는 ‘미주(미국과 멕시코)의 세기’에 밀려 멕시코 국경이 완전히 사라질 지 모른다.

미국-캐나다의4,000마일 국경엔 그리 많지 않는 순찰 인력이 배치돼 있고, 미국인들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멕시코 국경은 미-캐나다 국경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순찰인력은 사단병력이다.

미국인들은 더욱 철저하게 순찰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21세기의 초반에 멕시코만큼 미국인의 기본적인 삶을 흔드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다.

리오 그란데 밸리의 국경 도시에 도착하면 ‘골드러시’를 보는 것 같다. 도시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또는 북쪽으로 향하는 8,.000여 트럭의 첫 행렬을 만나게 되고, 은행은 일주일 내내 아침 7시에서 저녁 7시까지 문을 연다.

도로확장 공사는 끝없이 이어지고, 길가엔 펑크난 바퀴들이 널려 있다. 현지인들은 거대한 트레일러에 튄 돌맹이에 바람막이가 부서지지 않으면 아직 국경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국경도시는 가난하다. 텍사스주의 맥앨런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다. 통상부 발표에 따르면 이 도시의 평균 수입은 연 1만3,339달러.

하지만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그곳을 ‘뉴 프론티어’로 변화시키고 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협정으로 말레이시아로 이전할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멕시코인의 하루 평균임금은 미국인의 한시간 임금보다 조금 많다. 게다가 거기서 캐나다까지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미국과 멕시코가 공존하는 땅

멕시코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북쪽 국경지대로 몰려든다. 이미 국경지대엔 클리브랜드와 같은 규모의 도시가 4-5개나 되고 향후 25년내에 멕시코 인구중 40%가 미국과의 국경지역에 살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현금자동인출기(ATM)와 각종 모뎀, 소니의 칼라TV를 만드는 이 지역은 앞으로 멕시코 경제의 엔진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들어온 값싼 노동력 덕분에 지금의 생활이 가능하다. 하녀와 정원사, 목수 등 3D일을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내일이라도 그들이 공구를 내려놓으면 기본 생활에 큰 타격이 올 것이다.

국경지대는 멕시코나 미국도 아닌 독자적인 나라 ‘아멕시카(Amexica)로 불린다.

국경도시 랄레도의 베티 플로레스 시장은 “국경지대는 미국이 끝나고 멕시코가 시작되는 곳이 아니다. 미국과 멕시코가 뒤섞여서로 돕고 사는 곳”이라고말한다.

실제로 미국의 브라운스빌 소방대는 반대쪽 티주아나의 사이렌에 응답하고, 건강클리닉 센터는 매일 아침 환자를 데려오기 위해 셔틀버스를 보낸다. 또 텍사스 미션에 있는 미국 학교는 낡은 가구들을 국경너머 멕시코 학교로 보내준다.

미국은 NAFTA에 따른 자유무역의 이익을 얻기 위해 국경지대에선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멕시코인들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연 1억800만달러가 소요되지만 그래도 마약과 밀수사건을 재판할 판사가 여전히 부족한 형편이다. 아리조나주 구급차량들은 사막에 낙오된 멕시코인들을 구하려다 파산직전으로까지 몰렸다.

공해문제도 심각하고 의료지원 경비도 만만찮다. 엘패소 병원에는 환자의 50%가 공공의료보험의지원을 받고 있다. 진료비를 제대로 내는 환자는 전문의를 찾아 국경을 넘어온 부유한 멕시코인들이다.

반대로 엘패소 근교의 가난한 미국인들은 미국에서는 판매 금지된 메틸 파라시온을 사기 위해 국경을 넘고, 아이들이 아프면 값싸고 24시간 문을 여는 후아레스의 병원으로 데려간다. 죽은 아이는 국경 너머에 묻는다. 미국에선 2,000달러가 들지만 그곳은 150달러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마약밀수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카르텔도 갈수록 번창하고 있다. 미국이 불법입국을 단속할수록 카르텔은 더욱 큰 돈을 벌게 된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많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더라도 완전한 국경통제는 불가능하다.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멕시코인들이 있는가하면 텍사스주에 사는 한 교수는 50달러를 주고 일요일 저녁 만찬에 멕시코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오기도 한다. 아멕시카가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두얼굴이다.

이진희 주간한국부차장

입력시간 2001/06/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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