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고어 비달의 ‘황금시대’

한국전쟁 51주년을 앞둔 6월 23일 오홍근 국정홍보처장은 “일부 언론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 길들이기’로 규정하고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 지면을 통한 여론오도행위는 즉각 중단 되어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긴급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 같은 성명을 보면서 미국에서 꽤나 유명한 역사소설가이며 ‘대통령 정권’의 저자인 고어 비달이 새 천년을 맞아 쓴 ‘황금시대’에 나온 ‘트루먼과 한국전쟁’이 떠오른다.

지난 3월1일 김대중 대통령이 TV로 방송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말도 아직 생생하다. “나(김대중 대통령)는 수 십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런일(언론길들이기)을 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평가 받고자 하는 입장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작가 비달은 외할아버지가 오크라호마의 상원의원을, 아버지가 미국 최초의 민간항공국장을 각각 역임하고, 어머니가 이혼후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의붓아버지와 재혼한 명문가의 자손이다. 그는 워싱턴 교외의 유명한 사립고교를 나와 19세나이로 2차 세계대전에 해군준위로 참전, 알류산 열도에서 조그마한 보급선의 조타수 노릇을 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그는 북극해에 부는 폭풍인 ‘윌리워우’에 대해 글을 써 문명(文名)을 얻었다. 또 할리우드에 진출해 ‘벤허’의 각본을 썼고 ‘링컨’, ‘아론 버’ ‘워싱턴 DC’, ‘할리우드’ 등 베스트 셀러 역사소설가가 됐다. 비달은 연방 하원과 연방 상원에 출마, 두 차례 모두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비달은 새 천년 들어 미국의 20세기를 돌아보며 그가 그렸던 정치역사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황금시대’에 그 자신과 함께 등장시킨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을‘아메리카의 셰익스피어’로 자칭했다.

비달은 ‘황금시대’를 1945년에서 1950년으로 봤다. “5년간의 평화시대다. 일본의 항복에서 한국에서의 패전까지”라고 주장했다.

왜 비달은 1950년 6월 25일의 ‘한국전쟁발발’을 ‘한국에서의 패전’으로 보았을까.

비달은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을 ‘제2의 루스벨트’이지만 그의 독재성만 닮고 ‘사회주의적’인점은 잃어버린 정치인으로 보고 있다.

역사 책을 읽기만 좋아 했지, 그 숨은 뜻을 모르는, 너무 역사책 속의 힘을 좋아한 남부출신 상원의원으로 보고 있다. 트루먼은 “만약 내가 정계에 발을 딛지 않았다면 역사교사가 되었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달은 트루먼이 “역사는 독재자의 침략을 힘으로, 전쟁으로 방어 해야만 한다는 원리의 반복이다”는 악몽에 시달려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달이 트루먼의 회고록과 그와 만난 기자, 의원들과의 면담, 1950년 6월 전후의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 추정해본 한국전 참전의 이유는 길지 않다. 1950년11월 중국 인민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국을 침략하고 맥아더가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의원들에게 보낸 중국 본토 폭격 및 상륙 요구에 대한 트루먼의 반론에 그 알맹이가 있다.

“맥아더는 이번 선거를 망치게 했다. 중국은 압록강을 건너와 우리에게 무언가 수작을 걸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 중국은 히틀러처럼 뮌헨에서 무엇을 얻으려 한다. 1930년대 역사는 나에게 전체ㆍ독재국가가 협상을 할 때 힘, 무력만을 신봉 한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스탈린은 북한과 중국이란 위성국가의 무력으로 공산전체주의를 이루려 한다. 그것에 대한 대책은 더 많은 무력으로 맞서 그들의 신념을 깨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승리 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달은 그러나 이 전쟁은 비록 휴전으로 끝나고 그 후 소련도 사라졌지만 아직도 테러ㆍ 마약ㆍ 인종 전쟁은 계속 되고 있기에 미국의 ‘황금시대’는 1950년 6월에 끝났다는 냉소로 이 소설을 마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트루먼은 윌리엄 라이딩스(‘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의 저자)의 대통령 평가에 의하면 전체순위 7위에 올라 있다.

클린턴은 23위. 클린턴에 대해 비달은 ‘황금시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클린턴은 역사의 평가에 대해 너무 관심이 많다. 호텔 경영인이 바뀌면 예약이 취소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겠는가. 대통령은 세계화와 다우 존스 지수만 떠들고 있다. 대통령이나 정치가들은 이제 뉴스를 만드는 기자들, 또 이들을 고용해 이를 만들게하는 언론 사주가, 윌리엄 허스트(본칼럼 4월3일자 참조)가 발견한 것처럼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대통령이나 정치가, 행정가들이 기자와 언론사주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할 대목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6/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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