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28)] 진돗개의 종족적 표현

견종의 종족적(鍾族的)표현이란 그 견종일 수 있는 본질적 특성을 보여주는 생김새를 말한다. 진돗개의 종족적 표현의 핵심은 이렇다.

“북방견(北方犬)의 특징을 지닌 중형의 개이며, 강인하고 영민한 모습으로, 동작이 힘있고 민첩하며, 전체적인 모습이 위엄을 갖추고 있으면서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북방견의 특징을 지닌 중형의 개’는 어떤 개인가. 북방견은 시베리아 일대의 사냥개와 썰매개를 통칭한다. 이러한 북방의 개들은 겨울을 견디기에 적합한 모습을 하고 굶주림 그리고 적은 먹이를 먹고서도 오래 견딜 수있는 지구력과 강인한 체질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북방견 계통은 자연에 가장 잘 적응된 모습인 야성적이고 긴장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방견 주변의 혹독하고 거친 자연 환경이 잘 적응한 개만의 생존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러한 특성은 진돗개에게도 마찬가지다. 겨울이란 혹독한 계절과 보릿고개 등 먹이를 구하기 힘든 거친 주변환경 탓에 이런 특징이 필수적인 생존수단으로 진돗개에게 유전되어 왔다.

추위에 견디기 쉽고 몸을 사리지 않고 사냥할 수 있게 강한 겉털과 부드럽고 촘촘한 속털이 잘 조화된 피모, 크지도 적지도 않은 가장 효율적인 체형과 강한 체질,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사냥을 하기에 적합한 생김새가 바로 그것이다.

진돗개는 무거운 짐을 끌거나 지고 다니는 힘든 사역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체구가 대형견처럼 클 필요는 없다. 그리고 대형의 체구이면 그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먹이를 먹어야 한다. 진돗개의 생활환경에 비해 많이 먹어야 하는 대형의 체구는 치명적 취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진돗개는 직접 사냥을 하기 때문에 사냥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연 상황에서는 오랫동안 굶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개들이 먹이를 구하기 힘든 환경은 시베리아나 인근 북방지역에 비해 별로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사냥개인 진돗개에게 되도록 조금 먹고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생존의 조건이다. 또한 진돗개는 수렵활동 등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형의 체구이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진돗개는 ‘중형의 체구’로 진화한 것이다. 이는 곧 열악한 주변환경을 극복하고, 사냥에도 적합한 가장 효율적인 체구인 것이다. ‘강인하고 영민한 모습’은 진돗개의 매력적인 종족적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바로 ‘자연의 선택’에 단련된 진돗개의 모습이다. 진돗개에게 긴박하게 당면한 문제였던 생존을 위해서는 신체의 각 기능들이 조화롭게 발휘될 수 있어야 했고, 이러한 능력은 진돗개의 머리에 가장 잘 나타난다.

물기에 적합한 힘있는 주둥이, 뛰어난 후각을 가질 수 있는 코, 영리하고 대담하며 강인한 모습의 눈, 예민한 귀, 튼튼하고 단단한 질감의 근육으로 둘러싸인 적당한 크기의 얼굴이 그것이다. 수십 년간 사냥이 주업이었던 옛날 사냥의 대가들은 진돗개의 얼굴이 ‘명주꾸리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진돗개의 얼굴이 마치 명주실을 감아놓은 것처럼 단단하고 야무져야 한다는 뜻으로 코끝에서 뒤통수(後頭) 끝까지의 단단한 골격과 잘 결합된 뼈와 뼈의 이음새, 그것을 감싸고 있는 탄탄한 근육 그리고 강한 인대에 의한 뼈와 근육의 부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런 얼굴을 한 개는 체구도 그렇게 단단하게 생길 수밖에 없으며 누가 보아도 ‘만만치 않은 놈’이란 느낌과 함께 영리하고 민활한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 옛날 대가들은 “진돗개의 두상이 ‘호랑이 얼굴’ 혹은 ‘고양이 얼굴’ 같아야 한다”고 했다. 몇몇 아마추어 애견가들이 대가들의 이런 표현를 과민하게 생각한 나머지 호랑이 사진을 지니고 다니며 모습이 닮은 개 얼굴을 찾아 다니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 말 또한 진돗개의 종족적 표현을 한마디로 응축한 절묘한 표현이다. 의욕이 넘쳐 벌이는 아마추어들의 소동은 기가막힌 옛 경구의 행간에 숨은 뜻을 읽지 않은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혹시 개의 외모가 호랑이나 고양이를 닮거나 비슷하게 생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한 생김이 아니다. 개와 고양이과의 가장 큰 차이는 개는 주둥이가 유일한 공격수단이며 사람의 손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호랑이는 주둥이가 주 공격수단이 아니어서 개의 주둥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개는 개처럼 생겨야 잘 생긴 개이고 호랑이는 호랑이처럼 생겨야 제대로 생긴 호랑이가 되는 것이다. 당연한 이런 이치가 바로 우리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요점이다.

옛 대가들은 호랑이나 고양이 얼굴의‘긴밀함’과 ‘충실함’그리고 기능성을 높이 샀고 이들이 보여주는 ‘당당한 위엄’을 이미지로 차용해 진돗개의 종족적 특징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입력시간 2001/06/2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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