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비밀] 비밀이 비밀대접 못받는다

1, 2, 3급 3종류…알려진 것도 비밀은 비밀

국방부가 최근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군사비밀은 56만1,924건이다. 이중 1급 비밀은 8건이었고, 2급 비밀이 29만1,011건, 3급비밀은 34만2,905건이었다. 여기다 대외비를 포함하면 비밀문서는 모두 110만여건에 달해 무게가 95톤에 이른다.

비밀은 3종류로 분류된다. 1급비밀(Top Secret)과 2급 비밀(Secret), 3급 비밀(Confidential)이 그것이다. 1급 비밀 위의 ‘특급비밀’은 없다. 누설할 경우 부과되는 처벌도 당연히 1급 비밀이 가장 중하다.

북한의 비밀은 ‘극비’와 ‘비’ 2가지로 구분돼 있다.

비밀의 종류와 분류, 취급방법 등은법에 의해 규정돼 있다. 상위법인 국가정보원법 제3조에 의거해 대통령령으로 ‘보안업무규정’을 두고 있고, 여기에 근거해 또 다시‘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이 만들어져 있다.

1, 2, 3급비밀 등 분류지침과 그 예는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에 명시돼 있다. 각급 정부기관은 이 시행규칙에 근거해 자체적인 ‘보안업무내규’를 작성해 비밀을 관리한다. 보안업무내규작성시 각 기관은 국정원의 도움을 얻는다.


1급비밀 취급인가자 극히 제한

1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전쟁을 유발하며 국가의 방위계획, 정보활동 및 국가방위상 필요 불가결한 과학과 기술의 개발을 위태롭게 하는 등의 우려가 있는 비밀’로 규정돼 있다.

대표적인 1급 비밀은 외교상의 비밀협약이다. 2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비밀’을 말한다. 3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이다. 대외비는 ‘업무상 기밀을 요하는 것’으로 비밀에 준하여 관리된다.

1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초래될 해악이 매우 큰 만큼 비밀 취급을 인가할 수 있는 자격자가 극히 제한돼 있다.

현재 법규상 1급 비밀 취급인가권자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고위공직자와고위 군지휘관 등이다. 행정부의 취급인가권자는 각 부처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대통령 직속기관의 장, 검찰총장 등이다.

군의 취급인가권자는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1ㆍ2ㆍ3군 사령관, 국방장관이 지명하는 각군 부대장 등이다.

1급 비밀은 이들 취급인가권자의 인가를 받으면 극단적으로는 이등병도 취급할 수 있지만, 인가가 없으면 장성도 함부로 볼 수 없다.

1급 비밀 인가권자는 2급, 3급 비밀에 대한취급도 인가할 수 있다. 2~3급 비밀은 이밖에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 각급 교육감도 취급을 인가할 수 있다.

특정 사안을 비밀로 분류할 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비밀을 생산하는 부서에서 자체기준(보안업무내규)에 따라 결정한다. 비밀과 기밀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별된다. 비밀이 협의의 개념이라면 기밀은 광의의 개념이다.

기밀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에 보안을 요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비밀은 기밀 중에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을때 보안업무규정에 의해 비밀로 분류ㆍ관리되는 것이다.

모든 기밀과 비밀에 관한 업무는원칙적으로 국정원이 기획ㆍ조정한다. 하지만 이중 군사기밀과 비밀에 관한 사항은 1980년부터 국방부에 위임하고 있다.

다만 행정부서의 성격을 갖고있는 국방부(본부)의 보안업무는 국정원이 맡고 있다. 결국 비군사비밀(민간의 비밀)은 국정원, 군사비밀은 국군기무사령부가 관장하는 2원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비밀의 수명은 영원할 수도 있고, 한시적일 수도 있다. 한시적 비밀은 비밀 표시란에 예고문을 부여해 파기하거나 일반문서로 분류되는 시점을 정해 놓기도 한다.

하지만 예컨데 ‘30년 후 공개’ 등과 같이 비밀을 해제하는 일반적 조항이 있는것은 아니다. 비밀은 원본이 있고 사본이 있다. 사본은 비밀이 해제되면 일반문서로 전환하거나 파기될 수 있지만, 원본은 파기할 수 없다. 1999년 발효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비밀문건 원본의 파기를 금하고 있다.


비전문가들이 비밀 취급, 비밀가치 평가절하

비밀시한을 규정한 예고문이 없더라도 비밀은 해제될 수 있다. 비밀해제는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비밀을 생산한 기관의 장이 더 이상 비밀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직권으로 일반문서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해당 기관장은 이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기관에 비밀해제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두번째는 다른 기관의 장이 비밀생산 기관에 해제를 건의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비밀생산 기관이 조직 통폐합 등으로 없어졌을 경우에는 국정원에 비밀해제 여부를 문의 할수 있다.

이 같은 절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비밀은 각 기관장이나 해당 부서의 태만 등으로 인해 해제과정을 밟지 않아 ‘비밀 아닌 비밀’로 남아 있는 사례가 허다하다.

각부처에서 보안업무 비전문가들이 비밀을 취급하고 있는 것도 가치없는 비밀을 온존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비밀이 양산되거나, 적절한 시기에 해제되지 않음에 따라 비밀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6/26 20:33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