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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64)] 야키모노(燒物)②

[재미있는 일본(64)] 야키모노(燒物)②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후계자로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도'(茶頭), 즉 전속차 전문가는 일본 다도의 완성자로 유명한 센리큐(千利休)였다.

어느날 그는 오사카(大阪)항에서 조선에서 수입된 막사발을 대하고 커다란 감동을 받아이를 도요토미에게 바쳤다. 그것이 조선 막사발이 당시 일본의 상류층에서 최고의 찻그릇으로 여겨지는 계기가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고의 다도 권위자와 정치 실력자의 평가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가 논공행상에 필요한 충분한 토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배경이다. 영지에 대한각급 지방 영주와 상급무사들의 집념과 이에 따른 불만을 밖으로 돌리려는 침략전쟁이었다. 성공하면 새로운 영지를 확보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영주들의 힘을 소진시켜 정권의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도요토미 주변의 이런 고려와는 별도로 조선 침략에 참여한 지방 영주들의 상당수는 조선 막사발을 대량으로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는 의욕에 불탔다.

정치경제 중심인 긴키(近畿)지역에 비해 문화적으로 낙후한 규슈(九州) 일대의 영주들은 더욱 그랬다. 조선 막사발은거액에 거래된 보물인 동시에 문화적 자존심의 상징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끌려 간 조선의 사기장이 대부분 규슈 지역에 정착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그냥 도공이라고 불렀지만 당시 조선의 도자기가 치밀질 백자 위주였기 때문에 도기를 굽는 도공과는 구분해 사기장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지금은 우리도 사기장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도공이라고 통칭, 임진왜란 이후 자기 기술의 쇠퇴를 자인하는 듯하니 안타까움이 더하다.

'야키모노(燒物) 전쟁'으로까지 불린 임진왜란은 일본 도자기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사가(佐賀)현 아리타(有田)와 가라쓰(唐津), 후쿠오카(福岡)현 아가노(上野)와 다카토리(高取), 구마모토(熊本)현 야쓰시로(八代),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 가고시마(鹿兒島) 현사쓰마(薩摩) 등에는 조선 사기장들의 가마가 들어섰다.

이후 여기에서 일본 도자기를 대표하는 명품들이 잇따라 만들어졌고 그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삼평(李參平)이 열었던 아리타 가마였다. 공주 출신으로 광주의 관영 가마에서 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1616년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백토를 발견, 일본에서 처음으로 백자를 구웠다.

일본 도자기를 자기 단계로 비약시킨 이 공로로 그는 지금도 일본의 도조(陶祖)로 추앙받고 있다. 아리타에는 그를 기리는 도산(陶山)신사가 있고 그 경내의 산꼭대기에는 '도조 이삼평비'가 우뚝서 있다.

또 매년 5월4일에 여기서 열리는 '도소마쓰리'(陶祖祭)는 아리타야키와 함께 중요한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

아리타의 자기는 규슈 지역의 한국계 가마는 물론 일본 전국의 다른 도요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아리타나가라쓰, 아가노 등에서 만들어진 자기가 한동안 소박한 조선백자의 원형을 이어 가다가 순식간에 형태와 채색, 문양이 화려하게 바뀐 점은 흥미롭다.

한국계 도자기가 찻그릇을 넘어 일상생활 용구로 널리 보급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기질(器質)은 조선 백자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겉모습은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 정서에 맞는 화려한 채색과 문양을 택한 것이다. 때마침 교토(京都)에서 채색화를 담은 '교야키'(京燒)가 구워져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선 사기장들에 의해 시작된 일본의 자기는 유럽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17세기초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설립 이래 유럽에는 일본과 중국의 자기가 대량으로 수출됐다.

이중에서도 조선 자기의 전통을 이은 아리타야키 등은 특히 호평을 받았다. 오늘날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섬유나 나무신발 등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흰색 바탕의 감청색 무늬도 아리타야키를 통해 전해진 조선 백자의 문양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유럽 각국의 자기 제작 경쟁에서는 도자기 문화의 불모지인 독일이 첫 성공을 거두었다. 도자기가 기술적 관점에서 주목받아 첨단 세라믹 제품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고열에 견뎌야 하는 우주 왕복선의 첨단 세라믹 표면재를 '조선 백자 기술'이라는 미우주항공국(NASA)관계자의 말이 농담이 아니듯 그 원조 기술은 조선의 사기장들이 갖고 있었다.

현재 한국 주부들 사이에 일본 '노리타케'의 인기는 대단하지만 이미 일본의 도자기도 세계 정상 자리는 유럽에 물려 주었다. 다만 요업으로 창업한 교세라나 무라타(寸田) 등이 디지털시대를 맞아서도 세계 정상의 첨단 세라믹제품으로 번창하고 있는 것이 어느쪽으로도 전통을 살리지 못한 우리와는 다르다.

입력시간 2001/06/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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