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6) 삼성의료원 김대식 박사(下)

2005년이면 '위암의 글리백' 개발

김대식 박사가 레지던트를 끝내고 군의관 생활을 한 곳은 경북 청송의 작은 보건소였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서울까지 나오려면 최소한 10시간은 버스에서 흔들려야 하는오지. 그 곳에서 세월을 낚던 김 박사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유욱준 박사가 한국과학기술원 (KAIST)에 부임해 왔다는 반가운 소리를 듣고 즉각 그를 찾아갔다.

“ 유 박사님은 당시로서는 유전공학의 첨단분야인 DNA 조작 전문가였어요. 어떻게든 유전공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저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분이었지요. 휴가를 받아 서울로 올라왔어요. 유 박사님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강의를 듣고 싶다고 간청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시더군요. ”

김 박사는 그렇게 유전공학에 입문했다. KAIST엔 도강(盜講)이고 보건의로서는 근무지 이탈인 셈. 어렵게 시작한 공부여서 일주일에 두번, 한번에 3 시간씩 강의를 들었다. 오가는데 무려 20여시간이 걸렸으나 개의치 않았고, 도강1년 동안 결석 한번 안했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보건의 근무가 끝난 뒤 그는 정식으로 시험을 보고 KAIST에 입학했다. 그로부터 5년간 쉼없이 유전자연구에 몰두했다. 그걸로 박사학위(분자생물학 전공)를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대학에도, 미보건원( NIH)에도 갔다왔다. 유전공학자들은 대개 미국의 관련 연구소에서 첨단 분석 기법을 배워와 ‘미국의 아류’ 정도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미국에서 배워온 것은 별로 없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게놈 프로젝트 분야에서 이렇게 유명해지셨나요?“ “원래 난 의사잖아요. 의사로서 유전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관련사업의 경영 컨설팅이 가능한 MBA를 이수했기 때문이지요.”


게놈 연구가 국가경쟁력 키우는 척도

그렇다. 의사경험이 있는 변호사가 의료관련분쟁에 가장 확실한 변호를 할 수 있듯이 그는 의사이자 생명공학자로서 휴먼게놈프로젝트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격을 갖췄다.

또 관련 프로젝트를 경영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는 능력(MBA)도 길렀다. 그래서 생명공학에 대한 그의 비전은 새겨들을 만하다.

“반도체 산업이후 우리가 치열한 국제경쟁속에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앞선 분야가 없어요. 80년대 처음으로 유전공학이란 게 세상에 나왔을 때는 제일제당이니 LG 바이오텍이니 하는 기업들이 뛰어들었는데, 게놈프로젝트엔 대기업이 하나도 참여 안 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DNA조작기술이라면 이제는 게놈(세상)이고, DNA조작시장에서는 살아남은 기업이 세계적으로 암젠 같은 선두기업 4 개사 정도지만 휴먼게놈프로젝트는 그 시장보다 몇 천배나 큽니다. 우리가 좀 뒤쳐졌지만 틈새전략을 사용하면 게놈시장엔 먹고 살 게 널려 있어요.”

그는 지금 게놈분야에 진출하지 않으면 1-2 년후에는 아예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관 련분야의 특허를 선진국이 먼저 취득하면 우리는 늘 기술종속국으로 특허료를 지불하면서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생명공학의 비전을 장황하리 만큼 자세하게 설명할 때 자주 입에 올린 말은 패러다임 쉬트프 .생명공학연구의 틀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는데 과거에는 최소한 7 년씩 걸렸습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할 때 유전자 10 개 정도를 분석하면 1 년이 후딱 지나갔지요. 90년대 후반부터는 완전히 달라져 일주일이면 4 만개 정도를 훑어볼 수 있게 됐어요.

특히 그때는 인간게놈이 밝혀지지 않아서 유전자 분석도 산에서 호미 들고 금광을 캐는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이제는 인간게놈이라는 인체 설계도가 나와서 대충 금광위치를 알고 굴삭기로 파들어 가는 셈이지요.”


위암 일으키는 유저자변이 연구에 몰두

오늘도 선진국의 연구실엔 포크레인보다 더 성능이 우수한 장비가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김 박사의 실험실에도 최소한 굴삭기 정도는 갖춰져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스탠포드대학에서 개발한 DNA 칩 판독기 같은 것이다. 뛰어난 전자공학과 유전공학을 응용한 DNA칩은 꼭 컴퓨터 칩처럼 생겼다. 원리는 두개의 나선형 사슬로 이뤄진 DNA의 결합구조를 이용한 것.

두 줄의 사슬을 따로 떼어내 그 중 한 줄을 DNA칩에다 미리 입력해 두고 검사하고자 하는 DNA를 그 칩에다 흘려넣으면 정상적인 사슬을 만들기 위한 DNA결합 원리에 따라 서로 결합하든 기피하든 그 결과가 컴퓨터로 표시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를 정상적인 유전자와 비교하면 문제의 유전자는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쉽게 판독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김 박사팀은 위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즉 DNA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위암 세포의 생성과 관련된 유전자는 적어도 수천개 정도는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금까지 DNA칩을 이용해 80 개 정도를 찾아냈지요. 일주일에 보통 5 개정도씩 보니까 앞으로도 몇 년이 더 걸리겠지요.

미국은 이미 DNA칩으로 유전자 변화 정도는 훑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다음 단계지요. 유전자(돌연)변이를 임상학적 변화와 어떻게 연관을 짓느냐의 문제지요.” 김 박사팀이 주목을 받는 것은 삼성의료원 암전문가들의 다양한 경험칙과 충분한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유전자 변이와 임상적 변화의 상관관계를 캐고 있기 때문이다.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이야 개인의 생활 습성이나 환경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경우든 유전자에 변화가 나타나야 발병하고, 발병후에는 암세포를 증식시키거나 유지, 혹은 정상세포에 침투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유전자가 없다면 암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암의 초기에 기능하는 유전자와 말기에 움직이는 유전자가 또 다르다. 이런 각 단계에서의 유전자 변이를 실제 암환자의 상태 변화와 비교 분석하지 않으면 유전자 분석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임상경험과 다양한 유전자 변이에 얽힌 상관관계를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첨단기법인 바이오인포매틱스를 활용한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유전정보통계 분석법이다.

우리 나라에서 3대암으로 불리는 위암의 경우 임상경험이 풍부한 암전문가들은 위암 형성 이전에 이(異)형성에 대한 병변을 잘 찾아낸다고 한다. 통상 병변을 100 개 정도 추출해 살펴보면 거의 3-4 년 후면 위암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의 연구는 ‘이형성에 어떤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알아낸다면 위암의 조기진단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가정에서 시작됐다. 유전자 검사를 해 그런 유전자가 발견된다면 얼마후 위암 병변이 나타날 것이고, 또 3-4년후에는 위암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위암 관련 유전자를 간편하게 찾아내는 시약을 만들어 낸다면 그게 바로 위암 조기진단제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글리벡과 같은 ‘기적의 위암 치료제’로도 연결될 것이다.

그의 연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500 명의 위암환자를 바이오이노매틱스 방식으로 분석중인데, 이제 120 명쯤 끝냈다고 한다. 연내에 500 명의 자료를 유전자 변이 추이와 대조해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낸 뒤 이에 대한 특허를 낼 예정이다. 그 다음 단계가 시약개발이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약을 만들어 왔습니다. 근본 원인을 밝히는 게 아니라 뒤져보다가 우연히 찾았다는 표현이 정확하지요. 그러나 위암관련 유전자의 특성을 밝혀내면 근본 원인을 막는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물질이 바로 약 아닙니까. 게놈프로젝트가 만든 새로운 환경에서 우린 연구를 하는 셈이지요.”

김 박사는 위암 유전자 찾기에서부터 시약을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 지휘한다. 프로젝트기획도, 실험실 마련도, 장비의 구매도 직접 한다. 스스로 암조직을 분석 분류하는 진단병리과에서 너무나 많은 위암 종류를 접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희한한 병변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연구의 성과가 곧 나올 것으로 믿는다. 2005년이면 ‘위암의 글리벡’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가 오늘도 정상적인 일과를 끝내고 미로와 같은 복도를 돌고 돌아 게놈연구실로 향하는 목적이자 이유다.

이진희 사회부 차장

입력시간 2001/06/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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