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워싱턴의 사이클리스트

워싱턴 D.C.의 6월 기후는 우리 나라의 여름철 기후와 비슷하다. 섭씨30도가 넘는 불볕 더위에 습도까지 높아, 후텁지근한 바람은 목가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기는 커녕 오히려 증기탕에 들어온 느낌을 갖게 한다.

오죽했으면 에어컨이 없었던 19세기에 유럽 외교관들이 워싱턴 D.C.로 부임하면서 오지 수당까지 받았을 정도이겠는가.

이런 워싱턴 시내의 중심부에는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는 워싱턴 모뉴먼트가 있다. 그 양쪽에 있는 국회 의사당과 링컨 메모리얼에 이르는 공간은 공원이다. 공원은 탁 트인 잔디밭에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 지역은 몰(Mall)이라고 불린다.

워싱턴이 정치의 중심지이다 보니, 이곳에서 60년대의 민권운동이나 반전운동, 최근 들어서는 흑인들의 가정으로 돌아가기 운동 등 여러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지난 일요일 이 Mall에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모여 들었다. 바로 나흘 전 목요일 새벽에 노스캐롤라이나의 랠리를 출발, 330마일을 달려 워싱턴 D.C.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은 피곤에 지쳐 물에 빠진 솜처럼 몸은 늘어져 있었지만, 얼굴에는 해냈다는 만족의 미소가 가득했다. 이들은 올해 여섯 번째가 되는 워싱턴 AIDSRide 참석자들이다.

나흘동안 계속되는 이 행사는 AIDS 퇴치를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인데, 올해는 특히 의미 있는 해였다. AIDS와 HIV바이러스가 처음 알려진지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금년의 행사는 참석자 수에서나 모금액수에 있어서나 기록을 갱신했다. 나흘동안의 행사로 모금한 기금 670만 달러는 워싱턴 D.C.에 소재하는 Whitman-WalkerClinic과 Food & Friends라는 단체로 보내진다.

Whitman-Walker Clinic은 AIDS 환자들을 치료해 주거나 법률적인 도움을 준다. 필라델피아라는 영화에서도 보았듯이 AIDS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부당해고 당하는 사람들이 법률적으로 정당한 보호를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다.

워싱턴의 많은 변호사들이 아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다. Food & Friends는 AIDS환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주는 봉사단체이다.

이 행사의 참석자는 다양하다. 17살의 고등학생부터 71세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행사에 참석했다. 가까운 친지들을 AIDS로 잃었기 때문에 참석하기도하고, 그저 AIDS 퇴치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참석하기도 한다.

HIV 바이러스 양성 반응자들도 많이 참석하였는데, 올해는 적어도 70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이 행사로 자신들이 힘을 얻고 남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하여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1인당 적어도 2,000달러 이상을 모금해야 한다. 보통 주변의 친지들로부터 모금을 하는데 그 같은 액수를 모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서울~부산의 거리에 해당하는 330마일을 나흘동안 천막에서 자면서 자전거로 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과 체력 보강이 필요하다.

따라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바쁜 미국 사람들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하는가 하면 거액을 들여 대여섯살 되는 자기 아이들을 돌보아줄 보모까지 들이면서 행사에 참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누군가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처럼 흐뭇한 일은 없다. 특히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재물을 쾌척할 뿐만 아니라, 나흘동안 장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는 고생을 사서 한다는 것은 바로 이웃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희망을 주는 고귀한 의식의 발로이다.

우리나라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좋은 목적들을 위해 여러 가지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시민운동이 활성화해 보다 다양한 소외계층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회재생운동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입력시간 2001/07/0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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