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미국의 의구심

7월 8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 세상을 떠난지 일곱 돌이 되는 날이다. 평양은 이미 죽은지 7년이나 되는 김일성의 유훈교시를 관철시키자고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의 김대중 대통령은 7월3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시기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으나 남북정상이 함께 서명한 공동선언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행될 것으로 본다”고 한 신문 인터뷰에서 밝혔다.

6월 15일 노동신문이 남북공동선언 2주년을 맞아 공동선언문을 보도하면서 전문과 후문을 빼고 5개항만 보도한 것에 대해 시비가 일자 이에 대한 답변을 한 것 같다.

공동선언문 후문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했으며 김 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로 되어있는 부문이 빠진 것이다.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6월26일자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이 현안이 되고있는 상황에서 노동신문이 이 부문을 생략하고 보도한 것에 주목한다”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제기 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이런 의구심은 일이 있을 때 마다 끊임 없이 일어 났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6월30일(현지 시간)에 만나 회담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의심은 더 깊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위원장은 주민들을 배고프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부시대통령은 “북한이 미국 및 그의 주변 국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미국은 북한의 어떤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월, 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도 김 위원장의 국ㆍ내외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신뢰를 느낄 수 없다는 뜻을 피력했다. 물론 공동선언문에는 이런 견해는 없었다.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 방문을 전후해 장길수군 일가의 북경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난민 신청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워싱턴 타임스의 안보문제 전문기자 빌 카츠(‘배신’ ‘중국의 위협’의 저자)는 6월28일자, 7월3일과 4일자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관한 특종기사를 실었다. 모두 김 위원장의 7년 행적에 의문을 던져주는 것 들이다.

카츠는 6월28일자에 ‘미국, 북한에 제재 조치 강화’의 기사에서 북한의 창광신용회사에 대해 제재를 강화했다고 썼다. 창광신용은 1999년부터 2001년 사이 이란에 적어도 12기 이상의 중장거리 미사일을 작동시킬 수 있는 연료 및 화학물질, 미사일동체, 추진모터, 작동지침서 등을 수출했다는 것이다.

카츠 기자는 지난 3월 부시 대통령이 김 대통령에게 “북한이 미사일 부품을 수출하는 여러 장면을 인공위성이 포착했다. 한국의 충고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주문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카츠는 일본총리가 떠난 직후 7월 3일과 4일자 기사에서 북한이 일본총리의 워싱턴방미 직전,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뉴욕 북미회담이 재개된지 2주일여후인 6월30일께 장거리 미사일과 대포 등의 엔진을 가동시켰다는 충격적 기사를 보도했다.

이 미사일은 1998년 8월 발사이후, 북ㆍ미간 여러 차례 협상을 통해 시험발사가 동결된 상태였다. 그러면 왜 북한이 북ㆍ미 회담이 재개되고 새 일본총리가 미국에 오는 시기에 대포동 미사일 엔진 테스트에 나섰을까.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에 일이 있을 때마다 북한이 사건을 저지르는 바람에 김 위원장이 더욱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여론도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행적을 혹평하고 있다.

특히 6월말 들어 장길수군 일가 난민신청 사건을 둘러싸고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의구심은 혹평으로 변했다.

워싱턴 포스트 7월3일자 사설은 ‘장길수 사건’을 ‘감옥국가로부터 탈출‘이라고 표현했다. 이 사설은 ‘수령’ 사후 북한 7년은 난민 20만~30만명이 생기는 감옥국가 됐으며 미국, 유엔 등은 이에 대해 도덕과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7월9일자에서 세계에서 가장 인권이 유린되고 가난이 깃든 최악의 국가 중 최하위 1위로 북한을 꼽았다.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강제적으로 신봉케 하는 커다란 ‘수용소 군도’(Eulag). 이 지도자에게 시민의 생명은 파리 목숨과 같다”가 1위로 꼽힌 이유다.

미국의 전 국무부 장관 키신저를 국제 전범으로 고발한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치슨(‘키신저심판’의 저자)은 작년 말 평양 방문을 종합해 북한을 이렇게 정리했다.

“죽은‘주석’이 다스리는 나라. 모든 사람이 조직이요, 모든 일이 선전인 나라. 언론 검열이 완벽하고 당이 통제하는 나라. 식량이 없고 문화가 없는 나라. 그래서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 나라. 현재는 오직 불안 뿐인 나라다.”

김정일 위원장은 0.0001㎜의 차이도 없이 ‘수령 김일성’의 유훈을 지킨다고 했다. 과연 세계의 의구와 불신 속에 유훈이 지켜질까.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7/1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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