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뒤쳐지는 경쟁력에 한숨만

“주식을 사지말고, 때를 사라.”

6월 대세상승 기대는 하룻밤의 꿈으로 끝나고, 7월 땡볕 아래 여의도 증권시장은 축 늘어졌다. 시장분석가들 마저 지리한 횡보장세에 지친 듯 투자자들에게 “모든 것을 잊고 휴가나 떠나라”고 말한다. 찬바람이 불기 이전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설비투자 부진 등 산업활동 위축과 수출 감소세 가속화에 부담을 느낀 통화당국이 5개월만에 콜금리를 0.25% 내리고,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연ㆍ기금 자금의 증시투입이 시작됐지만 시장은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한 듯 그저 무덤덤하기만 하다.

실적 호전이 뒷받침되지 않는 유동성 장세는 믿을 바가 못된다는 경험과 교훈에서 나온 반응이다. 예년 같으면 전세계적으로 ‘서머랠리’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질 시기이지만, 미국 신경제의 날개가 꺾인 올해엔 이 단어조차 왠지 낯설다.


우울증 깊어지는 한국증시

6월말 미 FRB의 연방기금 금리 추가인하와 마이크로소프트 효과로 훈훈했던 뉴욕증시는 지난 주 독립기념일을 전후해 대서양 양안에서 날아온 악재로 급냉했다.

영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마르코니는 올해 매출과 순익이 전년보다 각각15%. 50%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4,000명을 추가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주가는 50%이상 폭락했다.

이어 세계2위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업체인 미국 AMD의 2ㆍ4분기 매출과 주당순이익이 예상치를 훨씬 밑돌 것으로 발표되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주들이 일제히 추락했다. 최대컴퓨터 저장장치 제조업체인 EMC, IBM 등 하드웨어업체들의 실적전망 하향조정도 잇달았다.

거시지표 측면에선 미국의 6월 실업률이 4.5%로 높아지고 일자리수가 3개월연속 하락했다는 보도가 투자자들의 불안과 실망을 부추겼다. 7월 초 발표된 일본의 기업경기실사지수인 ‘단칸(短觀) 지수’는 경기둔화 및 수요 부진을 반영 18개월만에 최저치인 마이너스 16을 기록했다.

대외 환경이 이렇다 보니 세계경제, 특히 미국 경기 회복소식만 목놓아 기다려온 서울 증시의 우울증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제거와 경제체질 강화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내놓으며 “미국경제의 회복이 지연되면 올 성장률이 4%수준에 그칠것”이라고 시인했다.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콜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반응에서 보듯 우리의 경쟁력에 대한 의문부호만 자꾸 늘어간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전반, 또는 시스템에 대한 우려다.

구조조정을 향해 줄달음질쳐야 할 시기에 세무조사의 정치적 복선을 둘러싼 언론개혁논란으로 국정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노조에 대한 정부의 냉ㆍ온탕식 대응 때문에 국내기업은 물론 외국인들의 불만도 높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권의 공언은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당장 국회 파행으로 구조조정촉진법 제정과 조세감면특별법 개정안의 처리가 늦어져 하반기 경제운용에 큰 차질을 빚게됐고 시장의 불확실성도 그만큼 커졌다. 하반기에 돌아오는 12조여원의 투기등급 회사채 소화가 쉽지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야 대치상황을 볼 때 주초 임시국회가 정상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1달러선이 무너져 ‘센트 시대’로 접어든 반도체 가격은 이번 주에도 약보합세를 면치 못할 것같다. 해외주식예탁증서 발행 성공으로 잠시 기쁨을 맛봤던 하이닉스반도체의 회생전망도 그 만큼 불투명해졌다.

세계적인 PC수요 감소에 따른 반도체값 추락을 막으려면 감산체제에 돌입해야하지만 삼성전자, 하이닉스,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빅3가 시장점유율의 하락을 우려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하이닉스반도체가 울며겨자 먹기로‘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대우차 매각문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특히 GM과의 협상부진이 가격보다 인수범위(부평공장과창원공장을 인수대상에서 제외) 때문으로 알려져 일괄매각과 고용승계를 원하는 우리 정부의 애를 태우고 있다.

채권단측은 GM과의 협상이 끝내 결렬될 경우 현대자동차에 경영을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화강세로 수출전선엔 먹구름 가득

하이닉스와 한국통신의 외자유치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에 따른 원화 강세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수출 전선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원화 강세가 계속되면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일본과 경쟁하는 업종들은2중고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서방 7개국 재무장관들은 엔화 약세가 아시아 국가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20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모여 엔화 안정화 방안을 논의한다.

최근 논란을 빚고있는 대기업의 은행소유 제한 완화문제가 12일 금융발전심의회에서 다뤄진다. 금융산업의 일대 재편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주초에도 주가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미국만 쳐다보는‘천수답’경제의 신세인 만큼 미국에서 주중 발표되는 생산자물가지수 및 소매매출지수(13일), 소비자물가지수(18일), 경기선행지수(19일)를 끈기있게 지켜보자.

이유식 경제부차장

입력시간 2001/07/1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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