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세운 檢 "이참에 다 파헤치겠다"

언론사 수사 급물살…사주 개인비리 조준, 회사 간부 줄소환

6개 언론사와 사주의 탈세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동안 물밑에서 조용히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이 실무자 소환조사를 신호탄으로 수사의 칼날을 곧추 세운 채 탈세비리의 핵심부를 향해 빠르게 진군하고 있다.

7월7일 언론사 실무자들이 소환된 사울지검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분주한 모습이다.
<류효진/사진부기자>

서울지검(김대웅 검사장)은 지난달 29일 고발장 접수 이후 국세청으로 방대한 세무조사 자료 및 계좌추적 결과를 넘겨 받아 1주일간 정밀실사 작업을 벌여 왔다. 고발된 사주와 대표이사, 핵심 경리담당자 등 관련자 25명에 대해 출국금지를 내리고 소환대상자 선별 및 수사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해 왔다.


수사할 수 있는 건 모두 조사한다

그러나 7월 7일 언론사 실무 관계자에 대한 첫 소환 조사를 시작으로 이번 주에는 언론사 경리담당자와 가ㆍ차명 계좌 명의 대여인, 회사 간부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될 예정이다. 수사할수 있는 건 모두 조사한다

검찰은 수사착수 단계부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보안유지에 극도로 신경을 써왔다. 다른 수사에 비해 이례적으로 준비기간이 길고 진행상황도 느리다. 그만큼 검토할 사안이 많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의 신중하고도 느린 행보는 언론사 수사가 당초 예상보다 더욱 폭넓고 심도있게 진행될 것이란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번 기회에 언론사에 대해 수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조사하고 철저히 파헤쳐 향후 정국변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라고 할까.

검찰 주변에서는 “탈세 뿐 아니라 언론사의 모든 비리를 명확히 조사해 혐의사실을 확보해 놓음으로써 언론사들에게 역공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냐”는 말도 새어 나온다.

검찰의 소환대상자도 고발된 언론사 사주와 대표이사를 비롯, 경리ㆍ자금 담당 실무자와 가ㆍ차명계좌명의 대여인, 회사간부, 사주 가족과 측근, 계열사와 거래처 관계자 등 100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의탈세, 해외 자금도피 등에 수사 집중

검찰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돌다리 두드리기’식 기초수사를 끝내고 ‘줄소환’ 수사에 들어갔다.

7일 1차로 각 언론사의 실무자급 6명을 소환, 고의적인 탈세행위가 있었는지, 누구의 지시로 탈세를 했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였다.

이번 주부터는 매일 5~10명의 경리실무자와 계좌 명의대여인, 계열사와 거래처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은 국세청 자료를 정밀실사한 결과 언론사와 사주의 탈세 혐의는 물론이고 회사자금유용과 해외 자금도피 등 고발사실 이외의 개인비리 혐의까지도 상당부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주의 가계도 및 가족들의 인적사항을 일일이 검토하고 가족간 증여ㆍ상속ㆍ자금대차 등 내부 자금흐름까지도 조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사주는 물론 직계가족들의 탈세 및 개인비리에 대해서도 검찰이 칼을 댈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법인과 사주에 대한탈세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회사자금 유용, 횡령, 해외재산 도피 등 추가 혐의가 일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며“개인비리가 확인될 경우 못본 척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혀 사주 개인비리에 대한 수사 및 사법처리가 강도높게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병역비리 등 탈세나 자금문제와는 관계가 없는 비리에 대해서는 “그런것까지 건들기는 힘든 것 아니냐”며 수사범위를 한정지었다.


회사임원, 기자, 계열사, 거래처도 칼댄다

검찰의 수사범위와 강도가 당초 예상을 넘어서면서 사법처리 대상도 고발된 사주와 대표이사 외에 사주측근과 경리실무자, 회사임원, 기자출신 간부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사주가 고발된 일부 언론사의 경우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임원과 사주가족, 경리실무자, 논설위원과 편집국 간부 등에 대한 광범위한 계좌추적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탈세 및 개인비리와 관련, 상당수 인사들이 조사를 받거나 사법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또한 계열사와 거래처 등 외부인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언제든 자료를 요청하거나 직접 만나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계열사와 거래처로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서울지검 관계자는 “수사상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 부를 수 있다”며 “퇴직자나 거래처 관계자 등 외부인도 검찰청사나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할 수있다”고 말했다.

출국금지 조치와 관련, 또 다른 관계자는 “출국금지는 수사 착수시 기본적 조치이므로 현재 25명인 출국금지자는 필요에 따라 계속 늘어날 수 있다”며“출국금지 대상자가 모두 피의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순 참고인은 아니며 반드시 수사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밝혀 사법처리 대상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검찰은 조선일보 계열사의 탈세혐의와 관련, 지난 3일 전광판 납품업체인 R사 대표 L씨를 불러 납품ㆍ광고발주 과정에서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고 갔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언론사-정부간 명운을 건 총력전

언론사도 정부의 대대적인 탈세수사에 맞서 총력전을 펼칠 태세다. 검찰은 이미 이번 탈세수사를 3개 특수부에 배당하고 특수수사통으로 잔뼈가 굵은 부부장과 수석검사들을 주임검사로 지정, 최강 수사진용을 갖춘 상태다.

언론사들은 법원과 검찰 출신의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 향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불꽃튀는 법리논쟁을 펼칠 전망이다.

특히 사주가 고발된 회사들은 지면을 통해 “이번 탈세수사는 대선을 앞둔 정부의 언론장악책이며 적대언론에 대한 탄압조치”라며 외부공세를 취하는 한편 검찰 고위층 출신의 변호사들을 대항마로 내세워 법정투쟁을 준비중이다.

조선일보는 ‘장영자·이철희 사건’등 대형 금융사건을 담당했던 ‘특수수사통’ 이명재(李明載) 전 서울고검장과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특별 검사였던 지검장 출신의 강원일(姜原一) 변호사를 선임하고 세금추징과 관련한 행정소송에 대비, 대법관 출신의 이용훈(李容勳) 변호사와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의 최광률(崔光律) 변호사와도 접촉중이다.

동아일보는 공보관 출신으로 대검 수사기획관을 지낸 이종왕(李鍾旺) 변호사와 옷로비 사건 특검보를 맡았던 양인석(梁仁錫) 변호사를 검찰의 ‘카운터파트’로 배치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동아일보 탈세수사를 맡은 차동민(車東旻) 특수3부장과는 같은 공보관 출신에 절친한 선ㆍ후배 사이여서 두 사람의 맞대결 결과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국민일보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야당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조승형(趙昇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선임할 계획이며 중앙일보는 국내 최대의 로펌인 ‘김 장’에 형사사건 및 세무분야의 변론을 함께 맡기기로 했다.

한국일보는 법무법인 세종에, 대한매일신보는 법무법인 율촌에 사건을 맡길 예정이다.

언론사들은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및 고발내용에 대해 “언론계의 오랜 관행이며 고의적인 탈세의도는 없었다”는 논리로 대항하는 한편 사주의 탈세와 개인비리에 대해서도 주식거래의 적법성과회사경영과의 관련성을 집중 부각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사주가 고발된 일부 언론사들은“정부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사주와 임원급에 대한 사법처리를 피하기 힘들다”는 자체 판단하에 향후 대응방안 수립 및 추징금 마련에 들어간 상태다.

특히 일부 신문사는 ‘사운을 건 대정부투쟁’이라는 배수진을 친 채 청와대와 여권실세의 비리에 대한 기획취재, 대정부 비판기사 등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정부와 일부 언론간 목숨을 건 ‘무한전쟁(無限戰爭)’이 시작되고 있다.


사주 3명 안팎 구속 불가피

일단 사주나 대표이사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조사는 7월말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실무자 소환조사가 당초 예상보다 몇일 가량 늦춰진 데다 회사임원 등 핵심간부들에 대한 조사도 이달 중순부터 이뤄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

따라서 언론사와 검찰간 피튀기는 공방전도 8월 들어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법인만 고발된 회사의 경우 수사가 비교적 단순해 임원과 대표이사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상대적으로 일찍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고발된 사주들에 대한 소환조사는 실무자나 핵심 임원들에 대한 조사가 완료된 뒤 시작될 전망이다.

이번 주부터 경리 실무자를 필두로 명의 대여인, 계열사ㆍ거래처 관계자, 회사 고위간부들이 줄줄이 소환조사를 받고 나면 전체 조세포탈 규모와 사주의 개인비리 윤곽도 상당부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주와 대표이사, 실무자등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사주에 대한 최종 소환조사가 이뤄진 이후 일괄적으로 결정될 공산이 크다.

이번 탈세수사의 하이라이트는 결국 언론사 사주의 구속 여부에 맞춰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수사의 강도나 정부의 강경대응 기류로 볼 때 증여세 포탈이나 공금유용 등 혐의가 드러난 일부 사주의 경우 구속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주변에서는 “언론사와 적당히 타협할 분위기가 아니다” “고발된 사주중 3명 안팎은 구속될 것” “해외 자금도피나 개인비리 등 언론의 역공에 대비한 ‘예비용 무기’까지 준비해 두고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또 사주의 핵심측근이나 경리책임자 등에 대한 구속수사설도 제기되고 있다. 탈세에 직접 가담했거나 개인비리에 연루된 사람들 상당수도 불구속 기소 형식으로 사법처리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검찰의 이번 탈세수사는 언론사-정부간 극한 대립양상속에 언론사 임직원에 대한 무더기 사법처리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배성규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07/11 20:04


배성규 사회부 veg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