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인사 '무한경쟁' 실험

계급제 폐지·직위 공모제 도입 등

외교관 사회에서 조용한 인사혁명이 시작됐다.

7월 1일부터 계급제가 폐지되고, 새 인사평정 방식이 도입됨에 따라 외무공무원들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

외교관들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새 외무공무원법 시행을 두고 말들이 많다. 선호지역과 비선호지역을 교차근무하는 ‘냉온탕’ 관행 등 종전 인사 관행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부처에서 처음으로 ‘시범케이스’로 시행되자 예전 제도에 익숙한 외교관들은 새 제도에 불만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근본적인 방향이 잘못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목소리에는 익숙하지 않은 제도에 대한 두려움과 내부경쟁에 대한 염려가 묻어있다.


사라지는 ‘냉온탕’ 순환 근무

새 외교관 인사제도의 핵심은 직위분류제와 직위공모제, 다면적 인사평정방식 도입 등으로 요약된다. 새 외무공무원법은 외무공무원들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특1급~7급의 계급을 없앴다.

대신 모든 직위에 3등급에서 14등급의 12개 직무 값을 부여했다. 사람에 따라다니는 계급이 직위의 계급으로 대체된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외교부내 인사과장은 4급 또는 3급 공무원이 맡아왔으나 인사과장이 되는 사람은 누구든 9등급의 직위를 갖게 되는 셈이다.

물론 급여체계도 같은 방식으로 변화했다. 계급과 근무연수에 받던 봉급이 직위에 상응하는 봉급으로 바뀌게 된다.

계급과 근무연수에 따라 봉급과 대우를 받던 방식이 이처럼 전환됨에 따라 내부 경쟁을 통해 직위 담당자를 임명하는 길이 열렸다.

가령 외교부의 노른자위인 북미1과장 직위가 비어있을때 자격이 되는 외무 공무원들은 이 곳을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직위공모제(job posting)’다. 직위 공모제 대상 범위는 본부의 경우 과장급~국장급, 공관급의 경우 참사관급~공사급(차석대사 포함)이다. 사실상 외교부의 허리를 담당하는 모든 직위가 공모 대상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기관급에서 부이사관급으로 승진된 대상자중 경쟁을 통해 적절히 3급 보직자를 결정하는 종전의 방식은 사라지고, 특정직위에 경쟁력을 갖춘 외교관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확률이 높아졌다.

9등급자리에 하위직인 8등급, 7등급 공무원들도 자격(과장급이상은 10년재직이상)을 갖춘 이상 9등급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동기들간 수평적 경쟁에 더해 선후배간의 수직적 경쟁이 가미된 것이다.

이러한 경쟁체제는 엄격한 근무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다면평가방식이다. 직상급자와 차상급자만이 해당 공무원을 평가하는 종전 방식 대신, 평가 대상자와 업무 유관도가 높은 상급자, 동급자, 하급자 5~8명이 대상자의 점수를 1년에 두번씩(1월, 7월) 매기게 된다. 부하들의 평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에따라 모든 외교관들은 자신이 맡은 직위에서 수행할 목표를 자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심사받게 돼 목표달성 여부가 판별된다. 평정 결과는 인사평정조정위로 넘겨져 1~7개 등급으로 분류된다.

결과적으로 인기있고 잘나가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상급자, 하급자, 동급자들에게 고루 인정받아야 가능하게 된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 등의 외풍과 기관장인 장ㆍ차관의 입김에 민감했던 외교관 인사의 정상화도 기대된다. 외교부는 다면평가를 올 하반기부터 2003년 상반기까지 4차례 실시한뒤 직위 공모제를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 과정에서는 전문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기에 가령 미국관련 업무를 맡았던 이들이 미국관련 업무를 맡을 개연성이 커졌다. 북미과장을 맡았던 이들중에서 북미국장이 배출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전문가가 양성될 것이라는게 외교부의 기대다. 인기높은 미국 일본 중국 관련 업무를 맡기 위해서는 그만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등 선호지역을 근무한뒤 ‘찬밥지역’인 아프리카 등에서 일하는 이른바 ‘냉온탕’ 순환근무제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도사린 퇴출함정

이러한 평가의 뒤에는 동전의 뒷면처럼 ‘퇴출’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새 외무공무원법의 특징중 하나는 공무원들의 철밥통을 깨는 것이다. 퇴출 경로는 2차례의 적격 심사와 대명퇴직 제도 등 두가지다.

우선 외교관들은 13년차때와 20년차때 적격심사를 받게 된다. 이때 인사평정에서 최하위 등급을 3차례이상 받거나, 영어 능력 시험에서 일정 점수(100점만점에 40점 또는 55점)를 받지 못한 공무원들은 퇴출된다.

앞서 언급한 7개 등급의 인사평정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여서 외교관의 5%는 반드시 최하위등급이 되며, 이런 최하위 등급이 3번이상 누적되고, 심사 당해년도에 최하위 10% 등급자로 분류되면 삼진아웃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반년마다 퇴출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퇴출은 다면평가방식이 정착하는 2003년 하반기 이후에나 가능하다.

또 다른 퇴출경로인 대명퇴직은 최하위등급은 아니지만 경쟁력이 없어 직위공모에서 탈락해 어떤 보직도 받지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직을 받지 못한 기간이 1년 6개월을넘는 공무원들은 외무공무원 적격심사위의 심사를 거쳐 퇴직해야 한다.


부작용ㆍ불공정성에 우려의 목소리

새 인사제도에 대한 외교부내반응은 세대별로 각양각색이다. 대체로 외교관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경쟁체제 도입과 객관적인 평가방식의 도입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지금껏 지켜져왔던 관행이 일거에 무너지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과 불공정성을 우려하는 눈치들이다.

먼저 냉온탕을 왔다 갔다하면서 고생을 할 만큼 한 고참 외교관들은 현재 인기 보직에 있는 인사들이 향후에도 인기보직으로 올라갈 기회가 많다는 점을 염려한다.

즉 현재 선망하는 포스트에 있는 이들이 향후에도 잘나갈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참외교관들은 또 64세에서 60세로 정년이 낮아진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높다. 정년 단축으로 인해 공관장을 역임할 기회가 많아야 2번 정도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또 소장 그룹들은 직위공모제에 해당하지 않는 과장이하 직위에서 불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가능성을 지적한다.

인기부서에 배치되지 않고서는 인기 과장에 갈 가능성이 적어짐에 따라 사무관들의 인기 부서지원 열기가 높아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연고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아울러 경쟁자들간의 우열이 너무 일찍 드러나 부처내 화합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이 같은 인사방식변화에 맞춰 외교관들의 전문성을 위해서는 지역담당제를 도입해 초년병시절부터 적어도 10년이상 한 지역을 담당하는 방안도 도입됐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온정주의ㆍ연고주의 타파 기대

이번 외교부의 인사 방식 변모는 1994년 영국 공직사회가 도입한 제도를 상당히 모방한 것이다.

외교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에서 계급제가 살아있는 우리 공직사회 현실에서 이 제도도입은 분명히 ‘실험’ 이다.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온정주의적 평가 분위기가 만연하고, 학연 지연 혈연 등에 의해 인사가 좌우됐던 우리 실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외교부 양봉열 인사기획 담당관은 “새인사제는 아직도 계급제적 요소 등이 남아 있는 불완전한 제도”라며 “이번 제도 시행으로 온정주의, 연고주의가 차츰 사라질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섭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07/11 20:12


이영섭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