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65)] 포켓몬 유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너나할 것 없이 포켓몬(포켓몬스트)이나 디지몬(디지털 몬스트) 게임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싶다. ‘폭발적 인기’라는 말이 여기만큼 잘어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미 아이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온갖 낯설고 어려운 이름들을 줄줄 외워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신통하기도하고 방통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러 학부모들 사이에선 포켓몬이나 디지몬이 교육적이라거나, 과학적인 내용이 많아 좋다라는 호평을 하기도 한다.

그 중에 특히 ‘진화’라는 어려운 단어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일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듯 하다.

“포켓몬 진화 라이츄, 나옹 진화 페르시온..…”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중얼거림을 듣고도 놀라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진화가 뭐냐고 물었보면, “변신하는 거요”라고 제법 걸쭉한 답을 한다. “아, 이거야말로 에듀테인먼트의 표본이구나!” 하는 감탄사를 발하고도 남을 만 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포켓몬 책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중대한 실수를 찾을 수 있다. 모양이 변하는 것이면 무조건 진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진화란, 한 생물이 긴 세월을 거치면서 어떤 기능이나 부위가차이 나게 발달ㆍ변형된다는 좁은 의미와, 한 생물 종이 전혀 다른 생물 종으로 변해 가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포켓몬에서는 이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다음 번데기가 되었다가 나비가 되는 ‘변태(동물이 알에서 부화해서 완전한 성체가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형태의 변화)’ 조차도 진화로 둔갑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씨(이상해씨)가 자라서 풀(이상해풀)이 되고 이 풀에서 꽃(이상해꽃)이 되는 발달(성장)과정도 진화로 둔갑되어 있다. 올챙이(발챙이)가 어린개구리(수룩챙이)가 되었다가 어른 개구리(강챙이)가 되는 개구리의 성장과정도 진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만화요 게임인 것을, 굳이 과학성과 교육의 잣대로 난도질 할 필요가 있는가? 당연히 있다.

왜냐면, 이미 아이들의 의식 속을 깊숙이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보지만, 과학적인 진화의 개념을 이해할 리 없다. 포켓몬 제작자들이 끝까지 진화라는 원래개념을 깨트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보다 많은 몬스트를 만들려니 아이디어가 동이 났겠고, 부득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넘을 선이 없자 이제는 디지털 몬스트라는 반기계ㆍ반인간의 이상야릇한 캐릭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화캐릭터? 게임?.. 다 좋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개념을 비정상적으로 변형시킨 지식정보의 오염은 엄청난 교육적 부작용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뇌에 한 번 잘못 각인된 지식ㆍ정보를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과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나는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왠지 속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오락캐릭터에서 교육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교육적인 양 위장해서 아이들과 부모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라는 과학적 단어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는 현실은 소비자 운동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일본 만화영화 캐릭터인 포켓몬과 디지몬이 오락과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에듀테인먼트(오락+교육)에 이르기에는 실패했다.

미국의 대다수 학교들도 학습분위기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포켓몬 카드를 금지하고 있으며, 런던대학교 데이비드 버킹엄 교수는 ‘포켓몬 현상’에 관한 비판적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2002년 일본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면 일본의 캐릭터 문화는 가히 폭발적인 속도로 우리나라 어린이 문화에 스며들 것이다. 한국의 캐릭터 산업이 경쟁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선 해외의 어린이 오락상품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지혜로운 대책이 그립다.

입력시간 2001/07/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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