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상] 차세대 인터넷 `그리드(GRID)'

인터넷 다음은 무엇일까.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된 인터넷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는 궁금증이다. 차세대 인터넷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그리드(GRID)는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단초를 줄수 있는 기술이다.

진공관의 음극과 양극 중간에서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격자(格子)'에서 유래한 그리드는 인터넷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던 월드와이드웹(www)과 차세대 인터넷을 연결시켜 주는 징검다리이다.

미국 시카고대학 이안 포스터컴퓨터 공학과 교수가 창시했으며 한 번에 한 곳만 연결할 수 있는 웹과 달리 신경 조직처럼 작동하는 인터넷 망 구조를 말한다.

그리드는 컴퓨터에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해 세계 곳곳의 컴퓨터, 데이터베이스(DB), 첨단 장비를 연결해 개인 컴퓨터로 원격 조정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출발했다. 한마디로 전 세계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마치 가상의 슈퍼 컴퓨터 처럼 쓰자는 개념이다.

가상 슈퍼컴퓨터의 핵심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십~수백 만대의 PC를 네트워크로 묶어 제어한다는 것.

현재 전세계에는 약 4억대의 PC가 있다. 그러나 PC 대부분이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 쉬는 때가 훨씬 많다. 가상 슈퍼 컴퓨터는 전 세계에 널려 있는 컴퓨터의 쉬는 시간을 이용하자는 원리이다.

이 때문에 가상 수퍼 컴퓨터는 지금의 슈퍼컴 보다 수천~수만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휴 자원을 이용해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대량의 데이터를 뚝딱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드는 인터넷으로 잘 알려진 월드 와이드 웹과 크게 다르다. 지금의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담은 서버에서 인터넷 이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받아 보는 수직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사이트에서 저 사이트로 쉽게 옮겨 다니며 여러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여러 사이트와 연결해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드는 인터넷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와 수평적으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 곳에 연결할 수 있다. 인근 지역의 동료는 물론 지구 반대쪽 컴퓨터와 연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컴퓨터에서 찾은 정보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면서 한 사람의 설명을 듣거나 함께 설계 도면을 그리는 일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한 컴퓨터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를 원격 조정해 복잡한 계산을 쪼개서 시킨 뒤에 다시 합쳐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리드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사회간접자본이라고 불린다. 전문가들은 ‘웹이 정보기술(IT)의 맛을 보여 줬다면 그리드는 비전을 보여 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실제로 그리드 네트워크가 완성되면 기존 컴퓨터로는 어려웠던 고속 연산과 대량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 생명공학(BT), 환경공학(ET),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분야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리드 구축 계획은 1998년 처음 등장했다. 미국·유럽·일본등의 선진국은 2004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슈퍼컴퓨터센터와 정부출연 연구소를중심으로 98년부터 인간게놈지도 프로젝트, 항공기 통합 설계 작업, 지진 예측분석 사업 등 다양한 그리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 각국의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연구 시험망인 ‘TEN-155’ 기반의 유로피언 데이터 그리드(기초과학 연구), 유로 그리드(산업기술 연구) 등을 99년부터 활발하게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도오는 9월 그리드 포럼이 발족해 본격적인 연구 개발에 착수한다. 그리드 컴퓨팅을 이용한 프로젝트로 ‘과학네트워크(www.griphyn.org)', 유럽데이터(grid.web.cern.ch/grid), '입자물리(www.ppdg.net)','지진 시뮬레이션(www.neesgrid.org)' 등이 진행 중이다.

강병준 전자신문 인터넷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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