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HE5·HE6 (上)

한국적 록아티스트 자부심으로 똘똘

서유석 양희은이 모던포크시대를 활짝 열었다면 HE5, 6은 그룹사운드시대를 주도했다. 에드훠를 제외한 대부분의 초기 록그룹들이 외국곡만을 고집했다면 HE5, 6은 <초원> <당신은 몰라> <메아리> <초원의 사랑> <초원의 빛> 으로 이어지는 주옥같은 히트 창작가요들을 발표해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인기와 돈만을 위해 활동하기보다는 음악발전을 위해 수입의 상당부분을 그룹전용 최첨단 PA(음향장비)에 아낌없이 투자할 줄 알았던 의식있는 아티스트들이었다.

유명 여가수 장세정의 아들인 포 가이스의 리더 한웅, 신중현과 조커스의 조용남은 HE5 창립1등공신. 이들은 1967년 화양에이젠시소속 미8군 빅밴드들의 예비오디션때 악기별로 뛰어난 각팀의 연주자들만을 선발하여 새로운 록그룹 창립을 꿈꿨다.

이때 선발된 멤버는 후에 영사운드의 리더가 되는 실버코인스의 보컬 유영춘, 드럼 김용호, 베이스 한광수. 촉망받던 세션들의 이탈로 인해 미8군 빅밴드들은 평지풍파로 휘청거렸을 정도.

하지만 멤버전원이 신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팀 리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인기정상의 키보이스 리드기타 김홍탁은 영입하고 싶은 1순위대상.

때마침 키보이스의 음악노선에 갈등을 느끼고 있던 김홍탁은 지미 헨드릭스, 산타나 처럼 비트 강한 음악들을 시도해보고 싶어 HE5 창립멤버들의 연습에 동참했다. 멤버들은 깁슨기타를 선물로 주는등 세심한 정성을 들였다.

김홍탁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멤버 전원이 합숙훈련을 해야 한다’는 까탈스런 조건을 내걸고 그룹에 합류했다.

새로운 리더 김홍탁은 인천출신. 미국에 사는 삼촌이 중학교 입학선물로 보내온 최고급 펜더기타는 늘 음악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사설 기타강습소에서 기초를 익히던중 동산고 1학년때 친구집 2층에 살던 미8군악대 기타리스트 척(CHUCK)을 졸라 본격적인 부기스타일의 기타주법을 배웠다.

그의 연주가 본토의 ‘버터냄새가 난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 내친김에 밴드부원인 학교동창생 장동선, 이백선 등을 모아 5인조 그룹 캑터스(선인장)를 결성했다.

고2때는 미8군 하우스밴드 오디션에 합격, 부평 미군하우스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대담성과 더불어 천재성을 보였다. 김홍탁은 이때의 뛰어난 활동으로 키보이스에 스카웃되었던 기타 신동이었다.

김홍탁이 HE5에 합류했을 때 멤버의 변동이 있었다. 준시스터즈의 오영숙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베이스 한광수는 군기피자였다. 자수하여 참전한 월남에서 그는 애인의 변심소식에 울화병으로 숨지는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HE5는 리드기타에 김홍탁, 리드기타였던 조용남이 베이스로 자리를 옮겼다.

새롭게 의기투합한 이들은 이태원 미군전용 세븐클럽을 주무대로 오복여관에서 합숙을 하며 낮에는 음악연구, 밤에는 피나는 연습 끝에 데뷔앨범 <초원-신세기.68년 추정>을 발표하며 대중들속으로 다가섰다.

데뷔곡 ‘초원’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연이어 발표한 12분15초의 사이키델릭 롱버전 연주곡 ‘징글벨’이 수록된 <메리크리스마스 사이키데릭사운드-유니버샬, THL8016, 69년> 과 번안곡 음반.

그리고 더블자켓으로 이승재의 ‘눈동자’가 함께 수록된 . 이중 캐롤연주음반은 마니아들 사이에 150만원에 거래된 기록이 있는 초희귀판이다.

멤버들도 이 음반을 다시보고 감격했을 정도로 한정된 수량이 발매됐던 실험적 음반. 그룹전체의 하모니를 중시한 이들의 경쾌하고 시원한 사운드의 노래가락은 68년 동양라디오를 통해 생방송된 덕수궁 야외공연을 기점으로 69년 1회 플레이보이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키보이스에 이어 은상을 차지하며 단숨에 인기그룹의 반열에 올랐다.

숨겨진 일화하나. 68년 HE5는 서울대 미대생들로부터 ‘설악산등반과 함께 대청봉에서 공연을 하자’는 엉뚱한 제의를 받았다.

특히 비슷한 연배인 대학생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던 터라 젊은 멤버들은 기꺼이 엄청난 장비를 짊어지고 2년이나 대청봉 등반길에 동행했다. 업소의 만류에도 불구 이들은 돈 한푼도 받지않고 고행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나섰다.

‘전설적인 포크가수로 등극할 김민기와도 함께 가슴을 열고 노래를 불렀던 당시는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팀 리더였던 김홍탁은 회고한다. 당시 서울대 미대는 이때의 감사함을 ‘명예졸업장수여’로 대신했다.

HE5, 6멤버들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멤버 모두에게 강력하게 심어져 있었다. 이들은 수많은 멤버교체 끝에 해체 일보직전의 아픔을 딛고 더욱 탄탄한 팀웍으로 사상 최고의 인기그룹 HE6로 거듭났다.

입력시간 2001/07/1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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