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추방 '칼'뽑은 정부 '탁한 국가' 오명 벗을까?

국가청렴도지수 하위, 부패와의 전쟁 선포

‘부패와의 전쟁’이 선포됐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우리사회에 유독 자주 등장하지만 부패와의 전쟁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오래전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어야 할 ‘전쟁’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은 권력형 비리와 관행적 부패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패척결’이란 구호가 요란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핫바지 방귀 새듯 유야무야한 경험을 국민들은 익히 알고 있다.

△ 정부는 부패방지법 제정을 계기로 사회 각 분야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불 밝힌 세종로 정부청사. <고영권/사진부기자>

그리고는‘사정(司正)’이란 단어가 수시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 슬며시 나타났다가 없어졌다.

정부가 7월4일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부패방지법 제정을 계기로 사회 각분야의 부패 일소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부패방지법은 논의 5년여만에 6월28일 국회를 통과했다.

논의 5년여만에 국회를 통과했다는 것은 이 법 제정에 진통이 많았음을 말한다. 진통의 중심에는 일반시민이 아니라 정치인 등 ‘방귀 깨나 뀌는’ 사람들이 있었다. 달리 말하면 논의 과정에서 여야의 입장차나 관련기관의 제몫챙기기 등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뇌물방지협약에 따라 더 이상 미룰수가 없어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협약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부패방지법 등의 제정 지연으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오를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아왔다.


회계ㆍ기업지배구조 투명성 최하위극

그렇다면 국제기구 등이 보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할까.

우리나라는 지난달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별 청렴도지수 발표에서 91개국중 42위로 평가됐다. 이는 작년(90개국중 48위)보다 약간 상승한 것이나 아직도 사회 주변에 일상화된 부패가 적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자료는 TI자료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5대 회계법인 중의 하나인 프라이스워터 하우스 쿠퍼스(PWC)가 최근 지리적 위치와 상대적인 소득정도에 따라 세계 35개국을 선정한뒤 국가별 불투명도를조사한 결과 한국의 총체적 투명도는 31위였다.

특히 회계와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은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총체적인 투명도에는 부패,법적제도의 투명성, 경제정책의 투명성, 회계와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규제의 불투명성 및 자의성 등 5개 요인이 반영됐다.

국가별 투명도는 싱가포르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미국과 영국 등의 순이었으며한국은 인도네시아,루마니아, 터키 등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중국이 가장 낮았다.

특히 한국은 총체적인 투명도를 결정하는 5개 요인중 하나인 ‘회계와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은 최하위였다. ‘규제의 불투명성 및 자의성’은 32위, ‘법적제도의 투명성’은 31위, ‘경제정책의투명성’은 23위, ‘부패’는 19위로 각각 나타났다.

총체적인 불투명도로 인해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국가투명도가 가장높은 싱가포르에 비해 세금을 35%가량 더 부담해야 하고 기채 금리도 싱가포르보다 9.67% 높은 추가적인 위험요소를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반부패국민연대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는 6월27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반부패 실천운동 전개를 밝혔다. <이종철/사진부기자>

경희대 이근수교수(한국회계학회 회장)는 7월3일 열린 ‘경제사회불투명지수의 개선방안’에 대한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경제사회의 불투명도를 개선하는 길은 원론에 충실하면서 사회 각분야의 개혁을 지속적으로추구해 가야 한다”며 “특히 회계의 투명성 확립은 어느 분야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수치가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의 도덕불감증은 총체적인 위험수위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 사회 지도층들이 도덕적 해이의 선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규모 금융사건에는 기업인 뿐만 아니라 정ㆍ관계인사들이 거의 예외없이 관련돼 있었다. 공적 자금은 눈먼 돈으로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풍토가 만연한 것도 우리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부패와의 전쟁’이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정보공개 강화 등으로 국정 투명성 높이기로

정부는 사후 적발 및 처벌보다는 사전예방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부패방지전략의 방향을 잡았다.

또 부패방지 인프라 구축, 행정제도 개혁, 부패친화적 문화 및 의식구조 개혁 등도 병행키로 했다. 이를 위해 반부패방지법 국회통과에 따른 부패방지위원회설치 및 시행령 제정 등 후속조치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금년말까지 공무원행동강령, 내부신고자 보호 및 고발보상제도를 제정ㆍ시행할 계획이다.

특히 ‘청렴도지수’ 모델을 개발해 공직자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로 활용키로 했다.

또 부패소지를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부처별로 과도한 규제의 철폐, 전자정부의구현, 대민접촉 기회의 축소 등 420개 행정개혁과제를 선정해 시행하는 한편, 비리면직 공무원의 취업을 엄격히 제한키로 했다.

아울러 자발적인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등 정부가 가진 행정정보는 물론 행정처리과정을 최대한 공개하고 국민이 인터넷을 이용해 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시스템을 강화,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아와함께 자금세탁방지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대로 부패자금을 은닉ㆍ세탁하는 행위를 엄벌하고 해당 범죄수익을 철저히 추적ㆍ몰수하는 등 부패자금의 조성 및 유통을 근절한다는 계획이다.

이와함께 시민단체 언론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범국가적인 반부패운동을 전개, 민간기업도 정확한 재무제표 작성, 분식회계 근절 등 경영투명성 제고를 꾀하기로 했다.


엄정한 법집행, 용두사미 되지 말아야

정부의 계획들을 보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실행계획들에 대해 그동안 지적된 것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됐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통상적인 업무로 오래전에 자리잡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설명이다.부패와 부정을 막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인데도 그 같은 것들이 광범위하게 저질러져 왔다는 것은 의무를 해태한 것이다.

공적자금의 예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국민들은 혈세가 마구새는 현실에 열을 받고 있다. 그래서 ‘부패와의 전쟁’에 거는 기대가 크다. ‘말로만’으로 끝나면 국민의 실망만 커질 뿐이다.

실천에도 전제가 따른다. 예외를 줄여야 한다. 행정정보공개 등이 대표적인것이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갖은 핑계로 정보공개를 기피해왔다.

또 부정ㆍ부패에는 어떤 예외도 인정되지 않는 엄정한 법집행이다. 그래야 투명성이 확보된다. 특히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내년은 선거의 해다. 본격 시행의 첫해부터 용두사미가 될 소지가 없지 않다.

입력시간 2001/07/1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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