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잃은 삼바, 축구제국 붕괴위기

브라질 '종이 호랑이'로 전락, 돌파구 못찾고 허둥지둥

여전히 가정형이지만 내년 월드컵축구대회가 사상 처음으로 브라질이 없는 대회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짓말’이 현실화 할지도 모른다.

월드컵 본선에 개근한 나라, 월드컵 4회 우승국으로 줄리메컵의 영구주인이 된 브라질은 요즘 ‘종이 호랑이’ ‘만만한 상대’정도로 전락했다.

◁ 브라질의 세계적 축구스타 히바우도(가운데)가 2002 월드컵남미예선 우루과이와의 어웨이 경기서 3명의 집중 마크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브라질은 현재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6승 3무 4패(승점 21)로 우루과이에 골 득실에서 앞서 간신히 4위를 유지하고 있다. 10개국이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를 하는 지역예선에서 4위까지는 월드컵 본선에 곧장 진출한다.

브라질이 5위로 추락하면 오세아니아 지역 1위 호주와 티켓 한 장을 놓고 ‘자존심 상하는’ 플레이오프를 벌어야 하며, 그 이하로 떨어지면 본선진출은 물 건너간다.

한때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42경기 무패기록을 자랑하기도 했던 브라질이 예선통과를 걱정하다니….축구제국 브라질은 지난 5월, 신흥세력 프랑스의 ‘혁명’으로 7년간 지켜온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 1위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난국에 처해있는 브라질 축구, 무엇이 문제인가.


정예멤버 가세 불구 부진 거듭

올해 브라질의 전적은 2승4무4패, 최근 3연패(連敗)다. 지난 해 브라질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초반 부진을 거듭할 때만 해도 ‘정예들이 가세하면 반전은 시간문제’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브라질은 최근 루이스 필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영입과 함께 골키퍼 디다를 제외한 대표선수 대부분을 교체하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히바우두, 호마리우, 에메르손, 카를로스, 카푸 등 호화멤버가 가세했으나 이번에도 돌파구를 찾지는 못했다.

브라질은 지난 2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우루과이에 0 대1로 무너졌다. 이날 덜미를 잡힘으로써 올해 3차례 지역예선서 브라질은 1무2패로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선수들의 세대교체로 인한 후유증이 컸다. 세계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의 부상으로 지역예선에서 10명이 넘는 신예 공격수를 실험했으나 누구 하나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스콜라리 신임감독은 급한 대로 호마리우(35) 등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대표진용을 갖췄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진행돼 온 브라질 축구의 구조조정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유보된 상태다.

공격력도 무뎌져 99년과 2000년 경기당 2.5골에 달했던 득점력은 올해 간신히 1골을 유지하고 있다.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브라질은 공격과 수비의 손발이 맞지 않았고, 문전에서의 세밀한 플레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요 선수들 대부분이 유럽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대표팀 구성이 쉽지가 않다는 점도 전력약화의 요인이다. 호흡 맞출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조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

대표급 선수들이 유럽스타일에 동화하면서 개인기와 창의력을 앞세운 브라질 특유의 팀 컬러가 퇴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기에서는 아프리카세에 밀리고 전술면에서는 유럽에 미치지 못하는, 샌드위치 상태에 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브라질은 불과 1년이 못 되는 사이 잦은 감독교체를 경험했다. 시드니올림픽 8강 탈락으로 달걀세례까지 받았던 룩셈부르고 감독과 칸딩요 감독 대행, 레앙 감독에 이어 스콜라리 감독까지. 성적부진에 따른 문책성 경질이었지만 잇단 감독교체는 혼란을 부채질 했다.


전력난ㆍ재정난등 엎친데 덮친 축구계

브라질 축구의 위기는 단순히 경기력약화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 5월 극심한 전력난을 이유로 야간경기를 금지시켰다.

로이터 통신은 ‘야간경기 금지령은 위용을 상실한 브라질 축구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자 마지막 카운터 펀치’라고 평가했다.

▷ 지난 2일 열린 2002 월드컵 남미예선 브라질-우르과이의 경기. 브라질의 에메르손(왼쪽)이 높이 솟아 올라 볼을 걷어내고 있다. 브라질은 이날 0대1로 패해 월드컵 본선지출 직행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축구의 근간을 이루는 프로팀도 휘청거리고 있다. 2001시즌 리우 데 자네이루 주리그 우승팀 바스코 다가마 등 명문구단조차 선수들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로 재정난이 심각하다.

외신들은 호마리우가 사재를 털어 후배들에게 월급을 나눠줬다는 미담(?)을 전했다. 보타포고 등 일부 팀들은 인건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선수들을 줄이고 있다.

보타포고, 산토스 등 명문구단이 국내리그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한국 월드컵구장 개장경기에 출전한 것도 재정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명문 축구가(家)의 전통에 금이 간데에는 브라질 축구계의 부패문제도 한 몫하고 있다. 축구행정의 수장 등 축구지도자들은 대표팀을 전방위 지원하기는 커녕 부패 문제로 청문회와 법정이나 들락거리느라 바쁘다.

후앙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의사위인 리카르도 테세이라 브라질축구연맹 회장은 탈세와 외화도피, 공금유용 등 13개의 범죄혐의로 사법처리 위기에 놓였다.

축구영웅 펠레, 아벨란제, 룩셈부르고 전 대표팀감독 등도 줄줄이 브라질 하원 조사위원회에 소환됐다. 선수들의 해외이적 및 브라질 축구연맹 스폰서 계약과 관련한 비리 조사를 받기 위해서다.

브라질 축구계의 비리설에는 호나우두, 호마리우 등 선수들도 연루돼 있는데 이들은 탈세혐의 등을 받고 있다.

브라질팀 주장이었던 지코는 “요즘 브라질 선수들은 머리를 쓰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94년 월드컵 우승주역 둥가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 부족이며 조직력을 갖출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지만 시간이 있어도 연습을 하지 않는 게 현재의 브라질 축구”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친선경기에는 스타를 출전시키고, 정작 중요한 월드컵 지역예선에는 신인을 내세우는 한심한 짓을 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펠레는 아르헨티나와 비교하면서 브라질 팀의 결속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감독 선임에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대표팀 감독을 국민투표로 뽑아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풍부한 잠재력“무너지지 않을 것”

몇 년 전만 해도 각국의 친선경기초청대상 1순위로 꼽히며 최소 50만 달러가 넘는 대전료를 받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브라질.

그러나 최근에는 수준 낮은 국가의 초청만 간신히받고 개런티 20만 달러도 감지덕지인 상황에 몰렸다. 스콜라리 감독이 “브라질의 월드컵 본선진출은 의심할 바 없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브라질 축구의 경쟁력은 현재 형편없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브라질 축구의 저력을 믿는 사람들은 삼바축구의 힘이 쉽게 사라질 리 없다고 주장한다.

1만 명이 넘는 프로선수와 800여 개에 이르는 프로구단, 2,000여명에 달하는 해외진출선수 등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브라질 축구. 브라질축구연맹에 따르면 브라질에서는 북한인구보다 많은 3,000만 명이 선수로 뛰고 있다.

맨발로 축구를 시작하는 꼬마들, 즐기는 축구를 통해 창의성을 키우는 어린이 등 잠재력을 지닌 선수들이 널려 있는 나라가 브라질이다.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스콜라리 감독 체제가 뿌리내리고, 새롭게 가세한 베테랑들이 힘을 발휘한다면, 그리고 부상에서 회복한 호나우두까지 복귀한다면 곧바로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브라질 축구가 장기 침체에 빠져들것인가 아니면 부활할 것인가. 21세기 초입, 세계 축구계 최대 화두 중 하나이다.

김정호 체육부기자

입력시간 2001/07/12 17:57


김정호 체육부 azure@hk.co.kr